[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큰 분노' 앞에서 '작은 분노'는 쉽게 잊힌다

  • 국힘, '내란당' 오명을 벗으려면

  • 이준석이 15% 넘긴다면

[이재호 논설고문]
[이재호 논설고문]


21대 대선이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독주체제에 변화는 없어 보인다. 이대로 굳어진다면 우리 정당정치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특히 집권당인 국민의힘이 받게 될 충격이 클 것이다.
 
한국갤럽이 13~15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후보 지지율은 51%, 김문수 국민의힘(이하 국힘) 후보는 29%,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8%였다. 이 후보는 50%를 넘어섰고,김 후보는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보수의 본거지’라는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에선 일부 앞선 것으로 보도됐지만 큰 흐름을 바꿀 정도는 아니다.
 
국힘은 판세를 뒤엎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쉽지 않아 보인다.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의 장본인인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당에서 사실상 축출되기는 했지만 그 시기가 너무 늦었다. 헌법재판소에서 8대0으로 탄핵이 인용됐을 때 즉각 출당시켰어야 했다. 탄핵당한 대통령은 버티고, 소위 ‘친윤’이라는 사람들은 이를 옹호하는 바람에 모든 걸 놓치고 말았다.
 
이들 모두에게 엄중히 책임을 물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친윤의 핵심이자 지난 10일 새벽 이른바 ‘여론조사 쿠데타’로 당에 씻을 수는 오욕을 남긴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에 이어 권성동 원내대표까지도 당에서 내보내야 한다. 그래야 뒤늦게나마 당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다. 이들 중 누구라도 당에 남아 있는 한 국힘은 ‘내란당’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와 동시에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 관계 개선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당내 한 인사는 21일 “이준석 후보에게는 공식·비공식 채널을 통해 이미 ‘사과’라고 할 만한 사과는 다 했다”고 했지만 더 해야 한다.
 
차제에 이 후보에 대한 당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이 후보의 목표는 오직 하나, ‘득표율 15%를 넘기는 거라고 한다. 흔히 선거판에선 득표율 10%를 넘기면 자생력이 있는 정치인으로 주목을 받는다고 한다. 만약 15%를 넘긴다면? 정치의 한 축을 독립적으로 견인할 잠재적 대권 주자로 인정받는다. 이준석은 득표율 10%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한 정치인은 지난 18일 대선 후보자 토론회를 놓고, 토론자 A는 0점, B는 +1점, C와 D는 –1점을 각각 매겼다. 부러 실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유권자들은 알고 있다. 누가 가장 돋보였는지를. 아직 토론회가 2회 더 남아 있다. 갖은 노력과 구애(求愛)에도 이준석 후보가 쉽게 마음을 열지는 않을 게다. 그동안 친정에서 당한 냉대와 서러움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더 중요한 다른 ‘큰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당에선 최근 홍준표 전 의원 마음을 돌려세우기 위해서 홍이 머물고 있는 하와이로 사람을 보냈고, 홍에게서 ‘배신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당 일각에선 “홍과 안철수 전 후보를 통해 이준석을 설득하자”는 얘기들도 나온다. 과연 통할까 싶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다고 ‘당권을 줄게 뭐 다오’ 식의 흥정은 스캔들만 낳는다.

끌어안아야 할 젊은 정치 엘리트가 한 사람 더 있다. 짐작하겠지만 한동훈 전 대표다. 오늘 이 순간, 국힘이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대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된 데에는 한동훈의 힘이 크다. 그가 계엄을 놓고 윤석열과 맞서지 않았다면 조기 대선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가 직장 선배이자 인생 선배인 윤석열에게 맞서 계엄을 반대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한동훈 또한 ‘여론조사 쿠데타’의 희생자다. 경선 중에 이미 ‘친윤들’에 의한 ‘한덕수 낙점설’이 파다했고, 이로 인해 사표(死票) 방지 심정으로 다수 당원들이 한덕수에게 표를 던졌다는 게 정설이고 보면 한동훈도 그만큼의 피해를 본 셈이다. 그럼에도 그는 김문수 후보의 선거운동에 기꺼이 참여했다.
 
한동훈은 물론 3가지 요구조건을 제시하긴 했다. 1)계엄 반대 입장 표명 2)윤석열 전 부부와 당의 절연 3)자유통일당 등 극단세력과 선긋기가 그것이다. 그는 “보수 궤멸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행되어야 할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김문수 후보님이 결단하지 않더라도 이재명 민주당과 힘을 다해 싸울 것”이라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한동훈은 20일 2박 3일 일정으로 부산·대구·청주·원주 등을 방문해 김문수 지원유세에 나섰다.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과 대구 서문시장 유세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그 열기가 뜨거웠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재명 후보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이라면 누구라도 이준석-한동훈 간 경쟁과 연대를 연상했을 법하다. 국민의힘은 그렇게 가야 하고 가야 한다는 믿음 말이다. 아마 필자를 포함해 다수 유권자들은 그 믿음 위에 지친 다리를 내려놓고 편히 쉬고 싶을 게다.

역대 대선 중 가장 많은 표 차이가 난 대선은 이명박-정동영 후보가 맞붙었던 17대 대선으로 표 차이가 532만표였다. 지금 이대로 가면 그때와 비슷한 표 차이가 날 거라는 관측이 많다. 그렇게 되면 보수의 궤멸은 눈앞의 현실이 된다. 지금 수준의 여야 관계에서도 눈만 뜨면 탄핵이고, 특검인데 보수가 궤멸될 정도라면 어떻게 될까. 균형을 잃어버린 여야 관계 아래에서 나라와 국민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모두가 이미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싫든 좋든 정치의 세대교체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아마 국힘이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정치평론가 홍범렬은 정치 변혁을 얘기할 때 ‘분노의 크기’를 기준으로 삼는다. ‘큰 분노’ 앞에서 ‘작은 분노’는 쉽게 잊힌다는 거다. 이재명이라는 흠결 많은 정치인의 출현 앞에서 우리는 마치 ‘큰 분노’라도 만난 듯 기세등등했다. 그 바람에 더 큰 분노가 밀려올 줄 몰랐다. 계엄보다 더 크고, 더 무섭고, 더 무거운 분노, 민생(民生)의 실패 말이다.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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