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24시간짜리 '단일화' 촌극

김문수왼쪽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 내 카페에서 단일화 회동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왼쪽)와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가 지난 8일 국회 사랑재 내 카페에서 단일화 회동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력도 사상도 다른데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만 목적으로 하고 있다. 단일화는 100% 될 수 없다."

생전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2002년 11월 21일 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의 단일화 시도를 비판하며 한 말이다.

그러나 두 후보는 극적으로 단일화를 이룬다. 단일화 후보로 나선 노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YS의 정치적 판단이 빗나갔다는 평가를 받는 몇 안 되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민주화 이후 대선 때마다 '후보 단일화'는 단골 메뉴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중대 변수로 작용한다. 1987년 13대 대선 땐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와 김대중(DJ) 평화민주당 후보가 단일화를 시도했지만 불발됐다. 이들의 단일화 실패로 표가 분산되면서 여당 후보였던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당선됐다.

1997년 15대 대선에선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와 김종필(JP) 자유민주연합 총재가 손을 잡는다. 이른바 'DJP 연합'이다. 김 후보가 당선되면서 여야 간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2년 18대 대선은 단일화가 파행을 빚으면서 역효과를 낳았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고 안 후보의 중도 사퇴로 시너지 효과가 반감하면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승리로 막을 내린다.

2022년 20대 대선에서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선거 막판 극적으로 단일화를 이뤄 윤 후보가 당선됐다. 개표 결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초박빙 대결을 벌였는데 단일화 승부수가 윤 후보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의견이 많다.

해외에서도 국가 지도자를 뽑는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는 심심찮게 목격된다. 프랑스·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좌파와 우파 간 단일화나 연정이 수시로 이뤄지고 있다. 이웃 일본과 대만 역시 단일화 사례가 적지 않다.

올해 대선에서도 후보 단일화는 주요 변수였다. 공식 선거운동 전부터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범보수 진영에서 '빅텐트론'을 내세워 단일화 이슈를 부각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지도부는 단일화 과정에서 전대미문의 막장극을 연출하며 절차적 정당성은 물론 정당 민주주의를 스스로 훼손했다. '알량한'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조바심 내며 무리수를 둔 게 화근이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후보 간 단일화 협상이 성과 없이 끝나자 임의로 후보 교체 작업에 나선다. 세 차례 경선을 거쳐 뽑힌 대선 후보 선출 취소, 무소속 예비후보의 입당과 후보 등록을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그러나 당원들이 바뀐 후보를 대선 후보로 지명하는 것에 반기를 들면서 지도부에서 통과시킨 후보 교체는 무산됐다. 국민은 24시간 동안 롤러코스터를 타듯 혼돈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민주적 규범'을 무시할 때 무너진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가치와 정책 공유 없이 정권 장악만을 위한 단일화 시도는 아름답지도 않고 감동도 없다. 대한민국 헌정사에 큰 오점을 남긴 한 정당의 표 떨어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6·3 대선까지 앞으로 20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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