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 실적을 보면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정도를 제외하면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대부분의 업종이 침체 국면이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듯 보이는 자동차·반도체·조선 등도 향후 경영 여건이 불투명하다 보니 중장기 전략 수립·보완에 애를 먹고 있다.
시계(視界)가 좁아지면 신경질적이 된다. 나부터 살고 보자는 각자도생의 조짐이 산업계 곳곳에서 엿보인다. 중국산 저가 강재(鋼材) 범람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를 놓고 철강업계와 조선업계가 신경전을 벌이는 게 대표적이다.
조선사들은 어렵게 찾아온 수주 호황기에 철강업계가 재를 뿌리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반덤핑 관세 여파로 선박용 후판 가격이 올라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기업 간 공방도 거칠어지고 있다.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해양 방산), LS전선·대한전선(해저 케이블), 한화세미텍·한미반도체(반도체 장비) 등의 도 넘은 과열 경쟁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 앞서가는 SK하이닉스와 사활을 걸고 추격 중인 삼성전자 간의 점잖은 신경전도 한 겹 더 들춰 보면 피 튀기는 전장에 가깝다.
정면에서 몰려오는 관세 쓰나미와 등에 진 바윗덩이 같은 중국 첨단산업 굴기의 파급력을 떠올리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안방에서 우리끼리 벌이는 치열한 경쟁을 성장과 발전의 자양으로만 치부할 계제가 아니다.
중국 춘추시대 병략가인 손무는 직접 지은 손자병법에서 상산에 사는 큰 뱀 솔연(率然)을 언급한다. 이 뱀을 잡으려 머리를 때리면 꼬리가 날아오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덤빈다. 이를 피해 몸통을 공격할라치면 머리와 꼬리가 함께 달려들어 당할 자가 없다. 위기 극복을 위한 '원 팀'의 전범(典範)이다.
미·중 패권 경쟁 속 한국을 향한 양국의 압박과 회유는 우리가 일궈 낸 산업 경쟁력의 가치를 증명한다. 머리를 맞대고 수를 고민하면 얼마든지 지렛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최근 국내 자동차·철강업계 1위인 현대차와 포스코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파고를 넘기 위해 동맹을 맺기로 했다. 삼성도 CJ·현대차 등과 전략적 협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미증유의 복합 위기에 무너지지 않으려면 동종·이종 업계 간 협업이 더 확대돼야 한다.
손무는 솔연지세(率然之勢)에 대한 설명에 이어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이 한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 강풍이 불어 배가 뒤집히려 하면 평소의 적개심을 접고 서로 필사적으로 돕는다'고도 했다. 적의를 품고도 한자리에 있는 걸 넘어 단합하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오월동주(吳越同舟) 고사의 요체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쉬이 가실 리 없다. 국내 산업계는 때론 경쟁하되 먼 길을 동행하는 심정으로 상생의 도를 구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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