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 프리뷰] "8대 0을 위해 기다렸다"…尹 탄핵 선고 지연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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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은 헌정사상 세 번째 대통령 탄핵이자, 전원 일치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결정까지 38일이라는 ‘역대 최장 평의’ 기간이 소요된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던 가운데, 당시 권한대행이었던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이 입을 열었다.

그는 지난 3일, 학창시절 은사이자 장학 후원자인 김장하 선생을 만난 자리에서 “시간이 조금 늦더라도 만장일치가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8대 0으로 설득력을 갖춰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관련 발언은 4일 MBC경남 유튜브 채널 ‘엠키타카’를 통해 공개됐다.

38일 걸린 배경은 ‘합의의 시간’
문 전 권한대행은 “몇 대 몇으로 결론이 나면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을 공격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며 “그런 주제로는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사법적 판단이 아니라 사실상 정치적 책임을 묻는 탄핵 결정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국민적 수용 가능성과 결정의 권위를 위해선 ‘8대 0’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그는 이어 “소수의견도 다수의견 안에 담아보자고 했다”며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을 택한 것은 그러한 의견 조율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헌재는 지난달 4일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한다고 전원일치 의견으로 결정했다.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난 12월 15일부터 따지면 정확히 111일만이며, 평의 종결일인 2월 26일부터는 38일이 소요됐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63일), 박근혜 전 대통령(91일) 때보다도 길었다.

“빠른 사람이 느린 사람을 기다렸다”
문 전 권한대행은 “사건을 보자마자 결론이 선 사람도 있고, 모든 것을 검토해야 결론을 내리는 사람도 있다”며 “빠른 사람이 느린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 게 당연하다. 인내가 결과적으로 좋게 작용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판결문 작성 과정도 전례 없이 치열했다고 소개했다. “보통 주심이 초안을 작성하고 나머지가 의견을 보태는 방식이지만, 이번엔 8명 모두가 고쳤다”며 “그래서 문장이 더 다듬어졌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탄핵 결정은 그 자체로 ‘헌재 내부의 완전한 합의’이자, 사회적 후폭풍을 최소화하기 위한 절충과 설득의 산물이었다.

8대 0의 의미
헌재는 판결문에서 “피청구인은 국회 권한 행사를 다수의 횡포로 보았으나,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으로 대응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탄핵사유는 ‘위헌적 국정운영’이었고, 결정의 정당성은 재판관 8인의 일치된 판단에 의해 뒷받침됐다.

법조계 안팎에선 “헌재가 법리뿐 아니라 국민적 수용성과 사회적 안정까지 고려했다”는 평가가 많다. 문 전 권한대행의 말처럼 “탄핵 결정의 후유증이 적었던 것은 헌재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내게 갚지 말고 사회에 갚아라”
한편 이날 발언이 공개된 계기는 문 전 권한대행의 은인 김장하 선생과의 만남이었다. 김 선생은 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1천 명 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준 인물이다. 문 전 권한대행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 졸업까지 장학금을 받고 공부했으며, “내게 갚지 말고 사회에 갚으라”는 김 선생의 말을 평생의 원칙으로 삼았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2019년 인사청문회에선 “가구 평균 재산을 넘어선 게 부끄럽다”고 고백한 소탈한 답변으로 화제가 됐던 그다. 당시에도 그는 “헌법적 가치 실현이 곧 사회에 갚는 길”이라며 사법시험 합격 이후부터 지방 법관의 길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대통령 탄핵, 그 뒤엔 조율과 합의
결국, 문 전 권한대행이 공개한 탄핵심판 뒷이야기는 헌재 내부의 갈등이 아닌 ‘합의의 시간’이었음을 보여준다. 결과는 만장일치였지만, 그 이면엔 의견 차이를 극복하려는 반복된 토론과 상호 존중의 과정이 있었다.

문 전 권한대행은 “그런 조율이 있었기에 후유증이 적었고, 헌재가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서 벗어나 헌법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는 단순히 법리 판단을 넘어, ‘국민 전체에 대한 설득의 문장’을 만들어내려 했던 사법부의 기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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