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상고심은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행됐다. 항소심 판결 선고 36일 만에 상고심 판결이 내려졌고, 이 중 대법원 심리와 합의, 선고까지는 불과 열흘 남짓한 시간 만에 마무리됐다.
대법원이 선거법 사건의 신속한 처리 원칙을 강조하며 정치적 중립성과 충실한 심리를 내세웠지만, 일각에서는 사법기관이 선거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이번 사건은 지난 3월 26일 서울고법이 무죄를 선고한 뒤 4월 1일 대법원에 상고된 이후, 같은 달 22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면서 신속 처리의 방향이 정해졌다. 대법원은 그날 바로 첫 합의기일을 열었고, 이틀 뒤 두 번째 합의를 거쳐 일주일 후인 5월 1일 선고를 내렸다. 항소심 선고 후 대법원 판결까지 36일이 걸린 것은 공직선거법 관련 상고심 중에서도 매우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1·2심에서 엇갈린 판단으로 인해 혼란과 사법 불신이 극심했던 사안”이라며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에 관해 축적된 판례와 기록을 바탕으로 치열한 논의를 거쳤다”고 밝혔다. 또 “미국 연방대법원이 2000년 대선 재검표 사건에서 나흘 만에 종국 판결을 내렸던 전례처럼, 신속한 재판은 민주주의 안정에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이 언급한 미국 사례는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 후보 간 접전 끝에 플로리다주의 재검표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던 2000년 미 대선이다. 연방대법원은 불과 며칠 만에 재검표 중단을 명령해 선거 결과를 사실상 확정지었다.
그러나 국내에선 공직선거법 위반 상고심에서 이처럼 신속하게 판결이 내려진 전례는 드물다. 대법원의 상고심 처리 기간은 평균 7~8개월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건의 복잡성이나 사회적 중요도에 따라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
조 대법원장이 취임 직후부터 공직선거법상 ‘6·3·3 규정’, 1심 6개월, 2심 3개월, 대법원 3개월 이내 선고의 준수를 강조할 정도였다. 이번 사건은 그 기준을 넘어선 ‘초신속 선고’로, 조 대법원장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법원 내부에서도 절차 진행 속도를 두고 이견이 노출됐다.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반대의견에서 “신속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대법관 사이의 충분한 검토와 숙고, 설득이 이뤄졌는가에 대한 자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솝우화 ‘해님과 바람’을 인용하며 “설득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지나친 속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반면 서경환·신숙희·박영재·이숙연·마용주 대법관은 보충의견에서 “날짜의 총량이 충실한 심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도 신속하게 처리할 필요성이 있었고, 대다수 대법관들이 이에 공감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번 사건 1심과 2심 절차가 총 2년 6개월에 걸쳐 진행됐다는 점을 언급하며, 더 이상의 지연은 사법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일부 학계에선 신속한 선고가 결과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법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유권자 다수의 지지를 받은 후보에 대해 대법원이 초고속 판결로 피선거권을 제약하는 것은 법이 정치에 개입한 것처럼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에 대해 “충실하면서도 신속한 심리였으며, 법률적 원칙에 따라 처리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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