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민철의 권주가] 日 원조 '기업 밸류업'은 어떻게 성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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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철 기자
입력 2024-02-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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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년 전부터 순차 발표된 日 증시 부양책

  • 韓정부 정책발표 예고에 시장 기대 과도

  • "올해 주도주 저PBR·고PBR 판단 변곡점"

  • 장기 추진된 '기업 지배구조 개선' 중요

  • "투자자, 펀더멘털 업종·기업 선별할 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주식(株式) 거래와 채권(債券)을 비롯한 증권 투자가 대중화하고 있습니다. 거래소에는 나날이 새로운 종목이 상장하고 수많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이들 종목이나 지수와 관련한 상품을 끝없이 쏟아냅니다. '채권·주식 가치 탐구(권주가·券株價)'는 자본시장에 이제 입문한 기자가 종목, 시장, 산업을 공부하고 관점을 세워 가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편집자 주>

오는 26일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세부 사항을 발표한다고 합니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미만으로 저평가된 국내 상장사 중심으로 기업 가치 향상, 주주와 소통 및 투자자 보상 강화, PBR과 같은 지표의 개선 목표 제시, 이를 독려하기 위한 새 주가지수 개발 등이 그간 알려진 이 정책의 골격입니다. 이는 일본에서 증시 부흥을 이끈 것으로 평가되는 일련의 시장 관련 조치를 벤치마킹한 걸로 알려졌죠.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올해 1월 윤석열 대통령 주재 민생토론회에서 처음 거론됐고, 이후 최상목 경제부총리,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 등의 추진 선언이 뒤따랐습니다. 저마다 글로벌 자본 시장 내 고질적 문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를 극복하고 동시에 '개인 투자자를 위한 증시 선진화'라는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이행 의지를 피력했어요.

우리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저평가된 기업의 주가를 높이고 국내 증시에 투자가 활발히 일어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을까요? 주가지수를 반짝 끌어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다양한 기업이 주가 부양을 통해 성장과 투자를 지속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할 수 있을까요? 이 점을 가늠할 수 있도록, 그간 이행된 일본의 원조 밸류업 프로그램이 무슨 내용을 담았고 어떻게 추진됐는지 소개해 드립니다.
 
◆막상 뚜껑 열어 보면 실망할 수도… "2년치 정책에 과한 기대감 형성돼"
 
일본 증시부양정책은 2022년부터 2023년까지 2년간 여러 정책 당국의 논의와 조율을 거쳐 추진됐다 자료KB증권
일본 증시부양정책은 2022년부터 2023년까지 2년간 여러 정책 당국의 논의와 조율을 거쳐 추진됐다. [자료=KB증권]

일본의 원조 밸류업 프로그램은 2023년 1월 '일본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NISA)' 제도 시행에 따른 개인투자자 유입, 엔저 현상, 미국 경기 호황에 따른 수출기업 실적 개선과 맞물려 작동했습니다. 결과적으로 2023년 이후 올 초까지 '닛케이225' 지수와 같은 주가지수가 연중 신고가를 경신해 1990년대 '부동산 거품기' 최고치에 근접하고 있는 점을 염두에 두면, 증시 부양에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겠네요.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우리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예고 이후 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증시 부양책은 약 2년에 걸쳐 하나씩 순차적으로 발표됐는데 한국 시장에서는 이 사례를 핵심 내용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이러한 인지 문제는 정책 발표에 대한 '과한 기대감'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어요.

그는 "(한국 정부의 정책이 시장의) 기대를 상회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며 기대를 충족하는 것도 쉽지 않을 수 있다"면서 "지금은 2024년 한국 증시가 일본의 2023년 4월 이후처럼 저PBR 주도 시장이 될 것이냐, 10월 이후처럼 고PBR 주도 시장으로 회귀할 것이냐를 판단하는 중요한 변곡점"이라고 덧붙였어요.

일본의 증시 부양 정책은 2022년 4월 도쿄증권거래소(TSE) 시장 개편 이후 올해 1월까지 14차례에 이르는 후속 조치 위원회 회의를 통해 2년 동안 전개됐어요. 위원회 6·7차 회의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투자자 소통 등을 중시한 '중장기 기업 가치 증진을 위한 방안' 초안이 마련됐고 3월 말 열린 9차 회의에서 상장사 3300개사에 앞서 예시된 '저평가 요인 분석과 개선 방안 요구안'이 나왔죠.

그중 2023년 1월 후속 조치 위원회 6차 회의부터 10월 12차 회의를 통해 추진한 정책들이 우리에게 '일본판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불릴 만한 내용일 거예요. 하지만 후속 조치 위원회 활동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1월에도 14차 회의가 열렸죠. 일본판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완성됐거나 어느 시점에 종결됐다고 볼 수 있는 정책 사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부터 따지자면 10년 전 시작… 목표 제시는 계기일 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하나증권, 삼성증권 등의 분석에 따르면 일본의 증시 개혁은 10년 전 아베 전 총리 시절까지도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4년 금융청 주도로 '일본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정했고 공적기금이 투자기업 대상으로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기 시작했으며 2015년에 '기업지배구조 코드'를 시행해 기반을 닦았다는 거죠. 또 2021년 초 글로벌 금리 상승기를 거쳐서 2023년 일련의 정책을 펴 시너지 효과를 냈다는 관점입니다.

미공개 상태인 우리 정책과 비교 대상인 원조 밸류업 프로그램의 세부 내용을 좀 살펴볼까요? TSE 최고경영자가 2023년 3월 일본 기업에 공개한 'TSE 일본 거래소 그룹(JPX) 정보공개 가이드라인'과 다음 다섯 가지 메시지로 구체화했습니다.

"첫째, 기업은 주주들과 건설적인 대화를 나눠라. 둘째, 경영진은 손익계산서상 매출, 이익, 시장점유율에 집착하지 말고 투자자가 관심 있는 자본비용과 주가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라. 셋째, 독립된 이사회가 PBR이 낮은 이유를 제대로 분석해 구체적인 개선책을 발표하고 개선사항을 정기 공유해라. 넷째, 단기적 미봉책보다 '배당과 자사주 대(對) 투자와 연구개발', 비핵심 자산 매각 등 장기적 주주가치 제고에 주목해라. 다섯째, 자기자본이익률(ROE) 개선 계획은 최소 1년에 한 번 업데이트해 공유해라."

또 JPX는 상장사 대상으로 'PBR 1배, ROE 8%'라는 구체적인 목표치까지 제시했어요. 이후 ROE 10% 이상 상장사가 25%에서 33%로 늘었고 지배구조 코드에 따른 수익성 개선 기대로 해외투자자 매수세가 늘었죠. 이러한 JPX의 PBR 개선 정책 시행 이후 일본 은행의 주주환원율이 높아지고 PBR 0.5~0.6배 수준이던 은행주들이 평균 0.75배를 웃돌았고요. 총주주환원율은 평균 40%에서 50~60%대 수준으로 올랐어요.
 
◆대표 기업 모아 새 주가지수도 만들어… 초기 수익률은 기존 지수 대비 부진
 
일본 구조 개혁 행보와 닛케이225 지수 추이 자료삼성증권
일본 구조 개혁 행보와 닛케이225 지수 추이 [자료=삼성증권]

키움증권에 따르면 TSE는 당국 정책 방향성을 반영해 2023년 7월 'JPX 프라임(Prime) 150' 지수도 발표했어요. 지수는 ROE가 자기자본비용보다 높고 PBR 1을 초과하는 시가총액 상위, 즉 일본 경제 대표 기업들을 모았죠. 다만 대형 은행주와 자동차주 등이 제외돼 수익률은 TOPIX, 닛케이 대비 부진했어요. 이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iFreeETF JPX Prime 150 ETF(2017 JP))는 올해 1월 출시돼 늦은 감도 있고요.

하지만 TSE은 JPX 프라임 150 지수를 만들면서 나머지 기업의 자발적인 주주가치 제고 개선 노력을 끌어내려고 했던 건데요. 일본 심플렉스자산운용이 좀 다른 접근 방식을 적용한 상장지수펀드 3종목을 2023년 9월에 내놓아 관심을 모았어요. 각 종목은 저(低) PBR, 보유 주식 효율화 추구, 경영자-주주 목표 등을 개선해 기업 가치를 제고해 달라는 '행동주의 펀드' 관점의 상장지수펀드였죠.

특히 PBR 1배 미만의 저PBR 기업만 모아서 살 수 있는 종목(Simplex PBR Improvement over 1x ETF)에 상당한 자금이 쏠렸어요. 삼성증권에 따르면 그 순자산총액은 지난 19일 기준 13조6390억엔(약 121조원), 3개월 수익률은 9.1%입니다. 이는 TSE와 정부가 정책적으로 상장 기업 주가 향상을 위한 개혁 조치를 지속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일본 기업 거버넌스 개혁에 투자하는 테마형 상장지수펀드로 평가돼요.

KB증권은 일본에서 정책 발표 극초기에 저PBR 기업이 일시적으로 급등했는데, 이 시기에 대해 1월 말 한국 증시와 유사한 상황으로 평가했어요. 이후 2개월간 일본 증시는 고PBR 기업으로 투자 열기가 확산할 가능성과 저PBR 기업의 흥행세가 지속할 가능성이 혼재했습니다. 2개월이 지난 뒤엔 전반적인 조정기를 맞이했죠.

다음 주 정부 발표를 앞둔 한국 시장에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투자자 관점으로 보면 자신의 투자 성향에 따라 차별성을 띠는 전략을 취해야 할 때입니다. 장기 투자자는 고PBR 기업을 매도해야 할 이유가 없고, 중단기 투자자는 저PBR 기업에 우선 관심을 가진 다음 조정기가 왔을 때 펀더멘털이 받쳐주는 업종과 기업을 선별하는 전략 변화가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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