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돌다리도 조심조심' 日… 새해에는 대변화 바람 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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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입력 2024-01-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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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타 요시히로 교수
[오가타 요시히로 교수]



2024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많이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란다. 신정을 보내는 일본에서 새해 인사는 일반적으로 양력 1월 1일부터 7일까지로 정해져 있는데, 한국에서는 곧 설날이기 때문에 조금 이른 인사로도 받아들일 수 있겠다. 내가 19년의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일본 후쿠오카(福岡)로 온 것이 2022년이니까 어느덧 후쿠오카 생활 3년째에 접어들었다. 이번 칼럼에서는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일본으로 돌아와 생활하며 느끼는 한국과 일본의 생활 속 문화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일본에도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다(石橋を叩いて渡る)'는 말이 있다. 신중하게 일을 진행한다는 의미로, 일본 기업 등에서 일 처리하는 방식을 나타내는 말로 자주 사용된다. 하지만 그러한 신뢰도 높은 일본의 일 처리 방식은 도가 지나치면 '돌다리를 두들겨도 건너가지 않는다'고 하여 야유를 받는 일이 자주 있다. 이에 반해 한국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끼리는 한국의 순발력 있는 일 처리 방식을 '진흙다리라도 건너가 버린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그것이 칭찬의 뜻으로 쓰이는 말이기도 하면서 어떨 때는 무모하게 일 처리하는 방식이 리스크 관리가 부족하다는 의미로 비판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한·일 양쪽 문화를 모두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한·일 양국의 문화를 더해 절반으로 나눈 정도가 적당하지 않겠냐는 결론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다'와 같은 신중함이 왜 그렇게 뿌리내리고 있을까 생각했을 때 종종 일본에서는 자연재해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 자연재해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에서는 어릴 때부터 다음 날 입을 옷을 머리맡에 미리 준비하고 자도록 배운다. 일종의 훈육이고 예절과 같은 것이다. 밤중에 지진이 일어나도 바로 옷을 입고 도망갈 수 있도록 하려는 잠재의식에서 오는 준비성일지도 모른다. 집이나 가게 등 실내에 들어갈 때 신발의 발끝을 밖으로 향하게 벗어 두는 것도 하나의 예절로 여겨지는 것 역시 지진을 대비하는 습관인 것 같다. 서둘러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야 할 상황을 대비하는 의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무엇이든 다음 동작을 상정해 미리 준비하는 것이 어릴 때부터 훈육으로서 실천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한번 자리 잡은 것을 바꾸면서까지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는 신중함이 중요시된다. 예측 가능한 안정감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인 것이다. 자연재해로 인해 언제 그 일상의 평온이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함을 항상 안고 있기에, 예측되는 현재 상태에 안심하는 것일지 모른다.
한국어 '힘들다'에 해당하는 일본어로 '다이헨(大變)다'라는 말이 있다. 뭔가 좋지 않은 상황이 일어나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지는 상황 등을 표현하는 말이다. 한국어 '큰일 났다'는 말에도 해당된다. 정확한 어원까지는 잘 모르고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지만 일본에서는 '다이헨다', 즉 '크게 변하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이다.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상태가 바로 바람직한 상태이며, 뭔가 큰 변화가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자 힘든 일인 것이다.
그런 일본에서 새해 첫날부터 잇따라 큰일이 터졌다. 하나는 1월 1일에 발생한 노토(能登)반도 지진이다. 이시카와(石川)현 노토반도 부근을 진원지로 규모 7.6, 진도 7의 지진이 관측됐다. 당시 나는 300㎞ 이상 떨어진 도쿄 쪽 본가에 있었는데도 흔들림을 느낄 정도였으니 얼마나 큰 지진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일본에서는 신정이 중요한 명절이기 때문에 그때도 가족끼리 집에서 쉬고 있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나도 TV로 신정 특집 방송을 보고 있었는데, 지진이 난 직후 바로 긴급재해정보 프로그램으로 전환되어 진원 근처의 사람들에게 피난을 재촉하는 아나운서의 강한 어조의 목소리가 계속되었다. 진원지 인근의 모습을 담은 영상 속에서는 건물이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쓰러지는 모습도 포착됐다. 바로 '다이헨다(큰일 났다)'라는 걸 알았다. 그로부터 20일이 지난 현시점에서 아직 안부조차 확인이 되지 않은 사람들이 22명이나 되고, 이시카와현 내에서만 232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중경상자는 1170명에 이른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일'이 1월 2일 도쿄국제공항(하네다공항)에서 벌어졌다. 해상보안청 항공기와 일본항공(JAL) 여객기의 충돌 화재 사고다. 노토반도 지진의 이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실어 나르려던 해상보안청 항공기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홋카이도에서 온 JAL 여객기가 착륙하려고 하던 활주로에 진입해 충돌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여객기에 탑승했던 승무원을 포함한 379명은 모두 무사히 탈출했으나 해상보안청 항공기에 탑승했던 6명 중 5명은 숨졌고 생존한 1명(기장)도 중상을 입었다. 해상보안청 항공기가 허가를 받지 않은 활주로에 왜 진입하게 됐는지 아직 그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가족이 모여 평온해야 할 설날 일본의 안방은 단번에 '다이헨'한 뉴스들로 가득 찼다.

새해 첫날부터 굉장한 '큰일'이 벌어진 한편 일본 사회의 나쁘지 않은 변화의 조짐도 보였다. 얼마 전 하네다공항 사고를 겪은 일본항공(JAL)이 마침 차기 사장 인사를 발표했다. 새롭게 사장으로 결정된 사람은 돗토리 미쓰코(鳥取三津子) 전무이사이다. 그는 JAL 사장으로는 첫 여성이자 첫 승무원(CA) 출신이라고 한다. 대기업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항공사의 인사인 만큼 많은 언론이 이 소식을 다뤘다. 일본의 여성 임원 비율은 2021년에 13.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맹국 중에서 최하급이고, 예전부터 OECD는 일본의 그러한 상황을 '인재의 치명적인 배분 실패'가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고 하니, JAL의 이번 인사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도 이해가 된다.
2018년 미국발 ‘#MeToo 운동’이 한국에서도 크게 화제가 된 데 비해 일본에서는 당시 사회 전반의 큰 움직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물론 이후에 한국에서 벌어진 젠더 갈등 양상을 보면 암담하고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양쪽을 경험한 나의 실감으로는 젠더 문제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발전은 분명하고, 한편으로 일본 사회의 양상은 좀처럼 눈에 띄는 변화가 없고 구태의연하기에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말 발간된 주간지 <주간문춘(週刊文春)>에서는 일본을 대표하는 코미디언 콤비 ‘다운타운’의 한 명인 마쓰모토 히토시(松本人志)의 성폭력 가해 의혹을 보도했다. 이 사건은 마쓰모토 본인이 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올해 들어 주간지 출판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제소를 하기로 했다고 하니 그 진위에 대해 내가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그는 이번 사건으로 일시적으로 연예 활동을 쉰다고 발표했고, 당시 현장에 함께 있었다는 후배 코미디언들도 방송 출연을 자숙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에서 지금까지 주간지의 보도 하나만으로 연예계의 대스타가 이렇게 빠른 반응을 보였던 일은 없었는 것 같다. 더구나 본인은 그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의혹이 의혹일 뿐이고,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언론 보도의 문제가 지적될 만한 사건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한 사회 전반의 눈이 엄격해졌다는 사실은 적어도 긍정적으로 볼 만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작년에 큰 화제가 되었던 자니 기타가와(ジャニー喜多川)의 연쇄 성착취 사건이 큰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건이 오랫동안 못 본 척해 온 연예계 성범죄에 대해 세상이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동안 성폭력이나 젠더를 둘러싼 문제에 둔감했던 일본 사회의 분위기에 조금이나마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번에 마쓰모토를 둘러싼 의혹도 단순하게 연예인의 스캔들로 떠들썩하게 호기심의 대상으로 소비하기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예계의 보다 본질적인 문제로 눈을 돌리게 된다면 그것은 '큰일'이자 바로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계에도 '다이헨'한 사건이 벌어졌다. 집권 자유민주당 의원들이 불법 비자금을 조성해 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자민당 내 ‘파벌(派閥)’ 집단은 선거 협력이나 당내 출세 시스템으로서 모종의 공적인 기능을 지니고, 자민당 국회의원들에게는 자신이 속한 파벌에서 힘을 기르는 것이 바로 정치인으로서 출세로 이어진다고 한다. 현재 기시다(岸田) 총리는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의 후원 덕분에 총리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사망한 이후에도 ‘아베파’로 불리는 정치인 집단이 존재하며 영향력을 계속 행사해 온 것도 그만큼 파벌이 수행하는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아베파가 관례적으로 불법 비자금 조성을 해 왔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구속되는 국회의원까지 나온 것이다. 더욱이 관례적인 불법행위는 아베파뿐 아니라 자민당 전체에서 자행돼 온 악습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적어도 여론은 그렇게 보고 있다. 이러한 논란 가운데 기시다 총리는 자신의 ‘기시다파’를 해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악습을 끊겠다는 자세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아직 그 진정성은 불분명하지만 그것이 만약 단순한 보여주기식 퍼포먼스가 아닌 자민당의 개혁으로 이어진다면 일본 정치의 큰 변화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한 해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다'는 일본 사회가 '다이헨'한 각오를 하면서까지 큰 변화를 일으킬까. 자니 기타가와의 성범죄 사건이 주목을 받게 된 것도 본인의 사후였고,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보상과 지원이 이뤄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연예계의 금기가 한 연예인의 스캔들로 끝날지, 그 진위조차 결론이 나지 않은 채 어느새 잊힐지 그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 자민당의 비자금 문제도 어느새 자민당 내 파벌을 해산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왜소화되고, 아베파의 유력 국회의원들이 아닌 그 비서나 회계 담당자만 잡혀가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될 것으로도 보인다.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에서도 주목받은 일본의 서류와 도장을 중시하고 팩스를 사용하는 인터넷 시대에 어긋난 종이문화는 웃음거리가 되고 비판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아무런 합리적인 이유 없이 그저 관습으로 행해지는 일종의 의례와 같다. 합리적인 논의보다 관례에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직장 문화도 건재하다. 무언가를 바꾸는 것은 '다이헨(힘들다)'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도입해도 회사가 문제 없이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고 이제는 재택근무가 특별히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렇듯 도장도 팩스도 남아 있고, 젠더 감수성도 여전히 낮다는 지적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예전에 비하면 일본 사회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대를 품으며 2024년을 시작하고 싶다.



오가타 요시히로(緒方義広)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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