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블랙기업과 공정무역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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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희 부장
입력 2024-01-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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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2000년대 중후반 무렵이었을 것이다.

    이들 기업의 실명을 굳이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이들의 만행은 개도국의 어린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제공하지 않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블랙기업이라는 용어가 태동된 일본에서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후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부조리한 일이 벌어졌다면 국내의 상황은 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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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희 산업2부장
유현희 산업2부장
아마 2000년대 중후반 무렵이었을 것이다. 매일 아침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식후 습관처럼 커피를 마셨지만 생산 과정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경기 북부에 소재한 한 로스터리 카페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30평 남짓한 카페에는 원두를 함께 판매하고 있었다. 포장된 원두의 패키지에는 ‘공정무역’ 문구가 담겨 있었다. 사장은 ‘공정무역’이라는 문구를 가리키며 ‘귀한’ 커피라고 운을 뗐다. 귀한 커피라는 말에 고가 커피인 ‘르왁’을 떠올렸다. 딱 거기까지가 내 한계였으리라. 카페 사장은 개발도상국의 어린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가치를 지불하는 것이 공정무역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의 가치를 마땅히 치르는 ‘착한 소비’는 이후 곳곳에서 비슷하게 또는 다른 형태로 목격됐다.

지방의 특산물을 단순히 구매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관련 특산물을 원료로 한 제품을 생산해 농가와 윈윈하는 기업이 늘었다. 상품성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던 우박 맞은 사과는 ‘보조개 사과’라는 예쁜 이름을 얻고 팔려나간다. 그러나 여전히 공정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존재한다. 노동의 가치를 소모성 부품쯤으로 여기는 블랙기업도 늘어간다.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업무강도를 높이고 연차나 휴가에 자율성을 부여하지 않거나 초과근무에 대한 수당을 법정기준보다 낮은 수준 또는 지급하지 않는 기업이 대표적인 블랙기업이다. 근로자 역시 블랙기업인지 미리 인지하고 입사를 결정하기 어렵다. 옥석 가리기는 실제로 기업보다 근로자에게 더 큰 난제다. 4~5년 전쯤 인터넷 상에 블랙기업 리스트가 등장해 일부 매체에서 기사화된 적이 있다. 이들 기업의 실명을 굳이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이들의 만행은 개도국의 어린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제공하지 않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블랙기업이라는 용어가 태동된 일본에서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후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부조리한 일이 벌어졌다면 국내의 상황은 좀 다르다.

의무 영업 목표를 할당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시말서를 제출하고 정신교육을 받는다. 주말 근무를 강요하고 대체휴가를 쓸 수 있도록 명시해놨지만 실제는 사용할 수 없게 한다. 협력사나 파견직원에게 폭언을 일삼고 운수업계에서 도착시간을 정한 후 지정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하면 벌금을 부과한다. 국내에서 블랙기업으로 지목된 기업들이 보인 행태다. 블라인드에 회사에 부정적인 글이 올라오면 진위 파악보다 관련 글 삭제와 작성자 발본색원에 열을 올리는 것도 블랙기업의 전형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를 기억하는가. 상사의 커피 심부름은 당연하고 24시간 상사의 전화를 받아야 한다. 사생활을 보장받고 싶으면 사표를 써야 한다. 영화 개봉 18년이 지난 지금 조금은 다른 형태로 블랙기업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상사가 존재한다. 얼마 전 선배 하나가 소위 “요즘 애들은”으로 시작하는 푸념을 늘어놓으며 전화를 걸어왔다. 20대 후배가 “열심히 일했으니 쉬고 싶다”는 이유로 사표를 던졌단다. “근성이 없어서, 애사심이 없어서”라는 본인의 해석이 뒤따른 건 당연한 수순이다. 블랙기업이 근로자를 착취하고 불법을 가장한 사규를 들이대는 상황에서 근성과 애사심으로 애써 포장하려는 그가 안쓰럽다. 마지막 선택은 근로자 본인의 몫이다. 거기에 남은 이의 해석이 과연 필요할까. 선배답게 떠나는 후배의 미래를 응원하자. 그 회사가 블랙기업이든 아니든 떠나는 이가 적어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동료'라는 가치를 얻을 수 있도록. 나는 오늘 공정무역 커피 한잔이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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