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중국보다 더 싸고, 더 좋게"…SK넥실리스 말레이 동박 공장에 내려진 특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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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타키나발루=김혜란 기자
입력 2023-11-0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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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사바주 코타키나발루 산업단지(KKIP) 근처의 모습. [사진=김혜란 기자]
지난 1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사바주 코타키나발루공항에서 3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코타키나발루 산업단지(KKIP). 공항 근처 화려한 리조트와 골프장을 지나 버스로 30여 분을 달리자 관광지에서 볼 수 없는 생경한 모습이 나타났다. 석유화학 공장의 굴뚝이 우뚝 솟아있었고, 머스크(Maersk) 등 글로벌 물류차량이 줄을 지어있었다.
말레이 코타키나
 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 동박공장의 전경. 총 2개 공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첫 번째 공장(아래 건물)은 지난달 말 상업생산을 시작했다. 2공장은 내년 상반기 상업생산을 시작한다. [사진=SKC]
KKIP에서도 IZ(Industry Zone)9에 위치한 SK넥실리스 동박 공장은 2공장 건설에 한창이었다. 완공 시 단일규모로는 세계 최고의 동박 생산량(연 5만7000t)을 자랑할 SK넥실리스의 최초 글로벌 생산거점이다.

이날 신동환 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 법인장은 기자들과 만나 경쟁국인 중국을 겨냥하는 발언을 수차례 했다. 저가 중국산 동박의 공급과잉이 모회사인 SKC의 올 3분기 적자에 영향을 준 탓이다. 

그는 중국의 저가 수주를 물리칠 핵심 병기로 말레이시아 공장을 꼽았다. 중국마저 압도하는 원가경쟁력과 혁신 공정으로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다지겠다는 목표다. 현재 말레이시아 평균 최저 시급은 1500원으로 동박 공장이 들어선 중국의 간쑤성(3420원)보다 낮다. 

얇고, 길고, 넓은 고품질의 동박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지만 만드는 과정 자체는 간단하다. 축구장 23개 크기(연면적 16만2700㎡)의 1공장에는 제박(동박 제조)-슬리팅(동박 자르기)-검사&출하 등 3개의 공정이 이뤄지고 있었다.
지난달 말 상업생산을 시작한 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 동박공장에서 직원이 동박 제품을 검수하고 있다 사진SKC
지난달 말 상업생산을 시작한 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 동박공장에서 직원이 마더롤을 검수하고 있다. [사진=SKC]
성인 키의 1.5배에 가까운 큰 드럼(제박기)은 구리 용액 속에서 머리카락 25분의1 수준으로 얇은 5마이크로미터(㎛) 두께의 동박을 뽑아내고 있었다. 직접 만져보니 초콜릿 은박지만큼이나 얇았지만, 더 매끈했다.

한 라인당 1~2명의 작업자만 있었을 뿐 대부분의 공정은 자동화가 돼 있었다. 그 덕에 60여 대의 드럼이 분주히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정적을 깬 건 자동 크레인과 무인운반차였다. 사이렌이 울리더니 주황색의 크레인이 6톤짜리 마더롤(동박을 돌돌 감은 최종 판매 형태)을 번쩍 들었다. 이후 무인운반차인 AVGE에 인계했고, AVGE는 3번 슬리팅 기기 앞으로 다가갔다.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5년 전까지만 해도 동박을 나르고 옮기는 과정이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이날 라인공정 설명을 맡은 김대중 품질보증 팀장은 "중국 업체도 얇게는 만들 수 있지만 이를 길고 넓게 만들기는 쉽지 않다"며 "또 얇을수록 자르기도 어렵고, 주름이 지거나 찢어지기 쉽기 때문에 각 공정마다 상당한 기술이 집약돼 있다"고 말했다. 현재 SK넥실리스는 전 세계 동박 업체 중 가장 얇고(4㎛), 가장 길고(77km), 가장 넓은 동박(140cm)을 만든 업체로 알려져 있다. 

배터리를 만들 때 동박 위에 음극재를 바르는데, 이때 동박은 음극집전체 역할을 한다. 집전체란 흑연 등으로 이뤄진 활물질에 전기를 전달하며, 활물질은 배터리에서 전기를 일으키는 반응을 담당한다.

같은 공간에 활물질이 최대한 많이 들어가야 배터리의 용량을 높일 수 있다. 동박이 얇으면 얇을수록 그만큼 활물질을 늘려 용량을 높일 수 있다. 또 동박을 얇게 만들면, 전체 무게도 가벼워져 전기차가 더 멀리 갈 수 있다. 

또 고객사 입장에서 길이가 길면 길수록 마더롤 교체 주기가 늘어나 관련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너비도 크면 클수록 같은 시간에 생산할 수 있는 배터리 수도 증가한다.

SK넥실리스에 따르면 그간 정읍 공장에서 축적한 머신러닝 등 생산성 향상 기술을 말레이시아 공장에 모두 적용해 당초 계획했던 5만톤에서 5만7000톤 규모로 늘어난 생산능력을 확보했다. 

AI(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해 인력을 줄이고, 생산 시간을 절감했다고 하지만 대규모 장치산업인 동박 사업이 원가를 대폭 줄이기엔 한계가 있다. 주요 원료인 구리가 원가의 60%를 차지하는 데다, 나머지 상당수는 전력비로 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SK넥실리스 공장은 한 달에만 80메가와트(MW) 규모의 전력을 사용하는데, 이는 사바주 전체 전력 사용량의 절반일 정도다.

이에 대해 장지철 경영지원실장은 "구리는 폐전선에서 뽑아내기 때문에 조달 비용 이슈는 적은 편"이라며 "말레이시아 전력비는 기존 대비 절반 이하, 타 동남아 국가와 비교해도 70%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신동환 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 법인장이 지난 1일현지시간공장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SKC
신동환 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 법인장이 지난 1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1공장에서 생산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SKC]
현재 동박은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내 인센티브 혜택 대상이 아니다. 역으로 말하면 보조금이 없기 때문에 전 세계 60여 개 동박 회사와 철저히 원가로 대결해야 한단 얘기다. 동박은 배터리 생산 원가에서 7%를 차지하는 등 절대 작지 않은 비중이다.

신 법인장은 "향후 IRA 내에서 동박이 (인센티브를 받는) 부품이나 핵심광물이 되는 것과 상관없이 중국과 비교해도 원가 경쟁력이 우수한 제품으로 승부할 자신이 있다"며 "말레이산 동박은 아시아로 수출하고, 한국산 동박은 북미로 보내는 등 여러 경영 전략을 세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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