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외교는 줄타기가 아니라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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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객원 논설위원
입력 2023-08-23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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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교수
[임병식 교수]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이후 대중국 관계가 또다시 냉각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한·미·일 정상회의를 “난폭한 내정 간섭”으로 규정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이다. 중국 정부는 앞서 18일 ‘유커(중국인 단체 관광객)’ 해외 여행지에 한국을 포함시킨다고 발표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중국인 관광객은 급감했다. 이 때문에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상대로 한 항공·관광·숙박업계는 된서리를 맞았다. 중국 정부 발표로 유커 귀환에 따른 재기를 기대하는 국내 여행과 숙박업계는 최악을 우려하고 있다. 대결 구도가 형성되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반복하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상황이 재연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미·일·한 3국 정상은 대만·해양 관련 문제에서 중국을 먹칠·공격하고 중국 내정을 난폭하게 간섭했다”며 “중국과 주변 국가의 관계를 고의로 이간질했기에 중국은 강력한 불만과 단호한 반대를 표하며 이미 엄정한 교섭(외교 채널 통한 항의)을 제출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미·일·한 동반자 관계가 특정 국가를 겨냥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중국은 미국이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고, 동맹 관계를 강화해 중국에 반대하는 태도를 보이지 말라”고 압박했다. 또 “중국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것을 멈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먹칠, 난폭, 간섭, 단호와 같은 용어를 동원할 만큼 중국은 격앙돼 있다.

중국 정부가 한·미·일 정상회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다름 아니다. 아시아·태평양에서 미국과 한국, 일본이 손을 잡고 중국을 견제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끼리 협력하는 협의체라고 강조한다. 반면 미·영·호주(AUKUS)와 미·일·한, 미·일·인도·호주(Quad) 협의체는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패거리 짓기라며 불편한 시각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력 규합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과 나머지 아시아 국가 사이에 분열을 조장하고 대결을 선동한다는 것이다. 한·미·일 정상회의도 이 같은 선상에서 보고 있다.

국제 외교안보 전문가들 평가는 엇갈린다. 미·일 전문가들은 정상회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중국 전문가들은 비판 일색이다. 미국 외교안보 연구기관 마라톤이니셔티브 엘브리지 콜비 대표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중요한 이정표”라며 “3국 정상 모임 연례화는 물론 외교·국방·산업·재무장관 회담 정례화, 지역 안보·첨단기술 협력 제도화 등으로 3국 협력의 골격을 짰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제정치학자 이와마 요코(岩問陽子) 교수 또한 “한·미·일이 위기 상황에 대비해 핫라인을 설치하고 평소에도 이해할 수 있는 정기적인 소통 시스템을 만든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중국 입장은 전혀 딴판이다.

한셴둥(韓獻棟) 중국 정법대 교수는 한·미·일 정상회의 내용과 형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미국의 궁극적 목적은 3국 메커니즘을 구축해 한국과 일본을 장기적으로 결박하려는 데 있다”고 상반된 해석을 내놓았다. 또 “중국과 관련된 내용은 사실과 위배되고 용어 또한 악렬(惡劣·매우 나쁘다)하다”면서 “특히 모호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대만 문제에 계속 개입할 여지를 남겨 놨다”고 평가절하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한 교수는 “한국 보수 정치인들이 계속 반중 정서를 선동하면서 중·한 관계를 개선할 환경을 악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향후 한국에 대한 압박을 예시하는 대목이다.

이달 초 중국 쓰촨성을 다녀왔다. 중국 현지에서 확인한 대중국 관계로 인한 여파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중국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한국 기업과 기업인들은 한·중 관계가 출렁일 때마다 몸살을 앓는다. 그들은 미국, 일본과 관계 개선이 자칫 중국을 견제하는 것으로 해석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사실 대중국 관계는 박근혜 정부에서 사드 배치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일시적으로 호전됐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는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중국은 의도적인 외교 행보라며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한·미·일 3국 정상회의는 이러한 의구심에 불을 질렀다.

윤 대통령과 정부가 ‘중국 배제론’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혀 그나마 다행이다. 물론 “중국을 적대할 뜻이 없다”고 했어도 그들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윤 대통령은 21일 국무회의에서 “한·미·일은 중국을 배제하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회의를 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도 “우리는 중국과 성숙하고 건강한 관계를 가져가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과 장관이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성격을 밝힌 건 대중국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중국 측 공세는 다소 누그러졌다. 왕원빈 대변인은 “한국이 중국과 관계를 발전시키길 희망한다는 뜻을 중시하고 있다. 중국과 함께 아시아·태평양 협력‧번영‧발전의 새 전망을 열기 바란다”고 했다.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현실에서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 발언은 현명하다. 중국 눈치를 보는 것으로, 자존심 문제로 연결하면 곤란하다. 나비 날갯짓은 태평양을 건너면 태풍이 된다. 중국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 대중국 관계는 목숨 줄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열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우리 기업들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는지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드 보복 조치로 롯데백화점은 막대한 손실을 입고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일부러 불협화음을 조장할 필요는 없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는 2020년 25.9%에서 올해 1분기 19.5%로 낮아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중국은 우리의 수출 상대국 1위이며 비중 또한 높다.

우리에겐 미국 못지않게 중국도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쪽으로 저울추가 기울면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게 정치다. 전 정부가 밉다고 외교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하거나 지지층을 의식한 반중 정서 자극은 어리석다. 외교는 줄타기가 아니라 균형이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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