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도 넘는 '바가지' 상술 …시장경제 정성화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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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3-07-1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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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교수]



 
"이 가격에는 세금과 전통차값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스탄불 그랜드바자 부근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받아 든 계산서가 메뉴판에 표시된 가격과 차이가 있어 이의를 제기하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오래전 경험에 비추어 예상했던 바이기는 했고, 그렇게 바가지를 써도 관광객을 주로 상대하는 업소에 비해서는 상당히 저렴했기 때문에 감수할 수 있겠다는 위안도 했다. 그래도 2002년 한·일월드컵을 멋지게 장식했던 형제국 3, 4위전의 열기가 남아있던 2007년 잠시 튀르키예를 방문했을 때 겪었던 모습과 달라지지 않은 시장행태는 아쉬움을 남겼다.

사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바가지 상혼은 외국인 상대 관광업의 원조 격인 로마가 더 악명 높을 것이다. 이러 저런 기회로 로마를 방문할 때마다 겪었던 소소한 바가지는 로마에 가서는 유적만을 보겠다는 결심 아닌 결심을 하도록 만들었다. 한 상점에서 종업원이 부르는 값과 주인이 부르는 값이 다르던 우유, 거스름돈을 주지 않으려고 손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서 피해 다니다가 결국 ‘팁’이라 우기던 피자가게 종업원, 손님이 승차하기도 전에 미터기를 켜놓고 기다리다가 손님이 가리키며 지적하자 '돈 터치, 펑!'을 외치는 택시기사 등등, 마치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바가지가 ‘국민스포츠’인 것처럼 보였다. 몇 해 전에는 독일 TV에서 교황청 주변에서 불법 거래되는 명품짝퉁을 구매하지 않도록 계몽하는 다큐를 방영한 적도 있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단속하는 이탈리아 경찰이 구매하는 관광객에게는 3천유로(450만원가량)를 부과하면서 판매하는 불법체류 난민은 훈방하는 이중잣대를 적용한다는 사실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은 같은 시기에 독일에서 튀르키예인이나 이탈리아인이 운영하는 케밥집이나 피자가게에서 바가지 상혼에 불쾌한 적은 없었으며 그에 관한 소문도 듣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다른 자영업자들과 마찬가지로 메뉴에 적시된 가격에 따라 정확하게 주문을 받았고 값을 청구했으며 손님이 정해서 지불하는 팁에 대해서는 그것이 얼마이든 고맙게 받았다. 주문하지 않은 빵을 마치 서비스인 것처럼 올려주고 값을 청구한다거나 식후 드링크를 무료인 것처럼 제공한 다음 바가지를 씌운다거나. 메뉴판의 가격과 달리 높은 가격을 청구하는 등 모국에서 흔히 벌어지는 바가지 행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에서 유추할 수 있는 가설은 인간은 대부분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적용되는 규칙하에서 자신의 효용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들이 자국에서처럼 바가지를 씌운다면 국가의 제재를 받을 뿐만 아니라 시장과 사회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 따라서 행동양식을 바꾸려면 규칙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일부 상인의 바가지 상혼이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하지만 피서철에 행락객이 몰리거나 지역 축제로 손님이 일시적으로 많아지면 바가지 상혼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바가지 상혼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현상으로 이해하고 대응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수출주도 성장을 뒷받침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재벌 대기업을 육성하면서 국내시장에서는 독점가격이 허용되었기 때문에 소비자 후생의 감소 내지 소멸까지도 감수되었다. 전자상거래의 발전과 함께 국내 소비자들의 ‘직구’가 증가하면서 많은 수입품 폭리는 상당 부분 해소되었지만 맥주처럼 소량 수입이 불가능한 상품의 경우에는 최근까지도 정부가 대기업의 부당이익을 방관함으로써 국내 소비자를 봉으로 만드는 관행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나아가 아파트 선분양제처럼 시장경제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거래방식이 기업의 이익을 이해 고수되고 있다. 현 정부 들어서는 미분양 아파트까지 정부가 매입해줌으로써 결국 기업 중심의 경제질서는 시장경제의 근간인 소비자주권을 무너뜨리는 전도된 시장경제, 유사(類似) 시장경제를 낳았다. 소비자 후생을 보장하는 한에서 기업의 이익도 정당화된다는 시장경제의 기본논리가 한국 경제에서는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는 소비자 후생이 희생될 수도 있다는 암묵적인 양해로 대체되었다. 여기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사회 전반적으로 팽배한 약자에 대한 온정주의적 시각에 더하여 정부 역시 “보호‧육성”(헌법 제123조 ⓷항)해야 할 대상이라는 이유로 정부의 규제에서는 물론 각종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관대하게 묵과되는 관행이 뿌리를 내렸다. 게다가 자영업자를 보호하면서 누구로부터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의 정립에서 공급사슬 내에서의 강자인 대기업으로부터 보호하기보다 소비자 주권으로부터 보호하는 상황을 낳았다. 대리점이나 체인점에서 자주 나타나는 점주와 본사 사이의 불공정 거래는 불식되지 않고 있다. 최근 소비자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양쪽에서 압력을 받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한국 경제가 정상적인 시장경제로 발전하려면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포함하는 모든 판매자가 모든 거래에서 가격은 물론 품질, 납기, 중량 등의 모든 면에서 투명성을 높여 소비자가 필요한 모든 정보를 가질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반하는 행위를 거래에서 배제하기 위한 노력은 모든 주체가 동시에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국가에 의한 감독이 필수적이다. 시장거래가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거나 국가권력에 뒷받침되어 성장한 경제권력을 시장에서 방치할 경우 시장질서는 무너지고 권력의 오남용이 만연해질 것이다. 경제권력은 재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시장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가지면 어떤 공급자든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거래를 시장참여자들의 자율규제에 맡길 경우 부당이익을 노리는 이탈자가 생기는 것은 어느 경제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므로 구성원 모두의 이름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은 당연하고 합리적이며 결국 소비자뿐만 아니라 판매자 모두에게도 이익이 된다. 정부는 경제 주체의 “자유와 창의”(제119조 ⓶항)에 기반하는 실적을 촉진하기 위해서도 “규제와 조정”을 해야 한다. 막연하고 맹목적인 지역상인 보호는 결국 지역상인의 일시적인 시장지배력에 기초하는 초단기 초과이익을 가져다주는 데 그칠 것이다. 한국 경제가 정상적인 시장경제로 발전하려면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균형이 지속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재벌 대기업의 독과점적 행태에 대한 규제를 포함하여 국가의 “질서 잡는 권력”(발터 오이켄)으로서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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