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위탁계약을 한 학원강사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노동청 판단이 나왔다. 지난해 8월 학원강사 A씨는 처음 노동청에 진정을 낼 당시 위탁계약을 이유로 각하됐으나 재진정 제기 끝에 근로자성을 인정받았다. 노동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계약형식보다 근로제공 실질을 우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용노동부 안양지청은 6일 전직 학원강사 A씨가 지난 3월 2일 근무했던 학원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및 연차휴가미사용수당에 대한 진정에서 근로자성을 인정한다고 판단했다.
안양지청은 A씨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면서 학원 측이 근로자가 퇴직할 경우 사용자가 임금 등 금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는 근로기준법 제36조를 위반했다고 판단하고 시정을 요청했다.
신고사건 처리결과 통지서에서 "학원 측은 연차미사용수당 미지급액 279만2244원을 지급해야 한다"며 "시정지시에 불응하는 경우 법 위반사항에 대해 입건돼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직장내괴롭힘으로 자진퇴사…연차수당 못 받아
A씨는 지난 2021년 3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1년간 경기 광명시 한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다 팀장의 직장내괴롭힘 행위로 자진퇴사했다. A씨는 "팀장이 사실과 다른 소문을 퍼뜨리고 직원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주도했다"며 "학원 측에 직장내괴롭힘 사실을 알리자 다른 지역 학원으로 전출시키겠다며 자진퇴사하도록 압박했다"고 전했다.
A씨는 퇴사 5개월 뒤인 지난해 8월 직장내괴롭힘과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 미지급을 이유로 안양지청에 진정을 제기했다.
당시 안양지청은 A씨가 근로계약 당시 위탁계약서를 체결했다는 이유로 A씨를 근로기준법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위탁계약서를 체결했음에도 사용자 감독을 받으며 사실상 근로자로 일해야 했다는 점이다. A씨는 "근무하는 1년 동안 기본급과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근무일과 휴일도 학원 측에서 정했다"며 "업무지시를 기간 내 이행하지 않으면 압박이 컸다"고 전했다.
안양지청은 최초 진정 당시 A씨를 강사와 학원이 수익을 반으로 나누는 5대5 비율제 강사로 명시하기도 했다. A씨는 "제가 제출한 계약서 어디에도 비율제 강사라는 말이 없다"고 말했다.
노동계 "'위장 프리랜서' 빈번…채용갑질 약 20% 달해"
노동계는 이번 사건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판단하는 기준이 계약 형식보다 근로제공 실질이라는 점이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근로자는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조에 따라 직업 종류에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의미한다. 근로자성을 판단할 때 계약 형식이 아닌 근로자가 사업·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문제는 현재 A씨 같은 학원강사 외에도 미용실 디자이너나 헬스 트레이너 등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업무지시를 받는데도 '위장 프리랜서 계약'으로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적잖다는 점이다. 직장갑질119가 최근 채용·계약과정에서 발생한 갑질 등과 관련한 이메일 637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위장 프리랜서 계약이 전체 20.1%(128건)에 달했다.
대법원은 2006년 '대입종합반 학원강사' 판결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요소를 명시한 바 있다. 도급 여부 같은 계약 형식보다는 업무 과정에서 사용자의 지휘·감독 여부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근로감독관이 위탁계약 등을 이유로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은성 샛별 노무사사무소 공인노무사는 "이럴 경우 재진정·소송으로 비용이 증가하거나 근로자 권리구제 기회조차 상실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송에 비해 당사자가 가장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이 노동청인만큼 고용노동부는 관련 가이드라인·지침을 마련하는 등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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