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휘의 좌고우면]'반국가 세력'과 매카시즘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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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휘 기자
입력 2023-07-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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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주경제
사진=아주경제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에 대항해 손을 잡았던 자본주의 국가 미국과 공산주의 국가 소련(현 러시아)의 협력 관계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체제 경쟁 구도로 전환됐고, 치열한 냉전(Cold War)으로 치달았다.
 
1948년 6월 소련의 베를린 봉쇄, 1949년 8월 소련의 핵실험 성공, 같은 해 12월 중국 국공내전에서 공산당 승리, 1950년 6‧25 전쟁 발발 등 공산주의 진영의 위협이 커지고 구체화되자, 미국 내 공포와 위기감은 극도로 팽창했고, 이른바 '빨갱이 색출'이 본격화됐다.
 
1950년 2월 공화당 초선 상원의원이었던 조지프 매카시는 당 집회에서 정체모를 문건을 흔들며 "중국을 공산당에게 빼앗긴 것은 미국 내부의 공산주의자들 때문"이라며 "미국에서 활동하는 205명의 공산주의자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고 발언해 미국민들의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이른바 '매카시즘(McCarthyism)'의 시작이다.
 
대중의 지지를 업은 매카시는 수시로 의회 청문회를 열어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의심이 가는 정치인과 문화예술인 등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했다. 주로 당시 미국 사회에 부정적이거나 매카시에게 비판적인 인사들이 많았다.
 
그중 실제 간첩도 나왔지만 무고한 피해자는 수만명에 이른 것으로 전해진다. 유명한 감독이자 배우인 찰리 채플린,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을 지휘했던 과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도 수모를 겪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와 미국 의회 연설 등에 수시로 인용한 '반(反)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라는 단어도 사실 매카시즘 광풍 현상을 분석하면서 나왔다. 슬프게도 대중들을 움직인 것은 진실과 공감이 아닌 선동과 증오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 28일 한국자유총연맹 창립기념행사 축사에서 "조직적으로 지속적으로 허위 선동과 조작 그리고 가짜뉴스와 괴담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흔들고 위협하며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비판했다. 종전선언 등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했던 전임 문재인 정부를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아울러 "북한이 다시 침략해 오면 유엔사와 그 전력이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것을 막기 위한 종전선언 합창이었으며, 우리를 침략하려는 적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는 허황된 가짜평화 주장이었다"고 강조했다. 종전선언을 추진한 것 자체가 우리의 군사상 이익을 해하거나 적국(북한)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하는 범죄행위, 이적(利敵)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지난 정부나 특정 정치 세력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또 "메시지는 시간과 장소, 상황(TPO)에 따라 뉘앙스는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보수단체 자유총연맹에서 나온 발언이기에 다소 수위가 높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보수정당에 기반을 둔 윤 대통령이 국가 보위를 위해 '반국가 세력'을 경계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다만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이 목표로 제시했고, 미국 정부도 동의한 '종전선언'을 추진했다고 '반국가 세력'으로 매도하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종전선언은 70년 넘게 전쟁상태(War)에서 고통받는 한반도를 평시상태(Normal)로 전환하고, 이를 다시 평화체제(Peace)로 바꾸기 위한 일종의 시작점이다. 전쟁 없는 한반도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s)'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69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윤 대통령과 용산의 핵심 참모진들이 현행 헌법에는 대통령에게 국가 보위 의무와 함께 '평화적 통일' 노력 의무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해줬으면 한다. 또 누군지 알 수가 없는 '반국가 세력'이 있다면 대상을 확실히 적시하고, 구체적인 증거와 확실한 사실을 기반으로 조속히 근절해줬으면 한다. 종기를 만지작거리면 커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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