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영의 NK어프로치] 두만강변에 서서 역사의 시계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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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영 前뉴시스 도쿄특파원·日와세다대 국제관계학 박사
입력 2023-06-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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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영 前 뉴시스 도쿄특파원·日와세다대 국제관계학 박사




지난 3일과 4일, 7년 만에 다시 찾은 북·중 국경 지대는 시간이 멈춘 곳이었다. 이틀간 중국 쪽에서 두만강 너머로 지켜본 북한 풍경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었다. 산이나 들판은 물론이고 건물이나 일하는 사람들 옷차림 등은 그때의 모습과 지금을 구별해낼 방법이 없었다. 7년 전 이곳을 떠나며 “다음에 올 때는 저 건너편도 무언가 달라져 있겠지”라며 가졌던 막연한 기대는 먹먹한 절망감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한 가지 뚜렷하게 달라진 모습이 시야를 압도한다. 먹먹해진 가슴을 더욱 옥죄는 살벌한 풍경이 두만강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것이다. 북쪽 강변에 사람 키 높이를 훌쩍 넘는 철조망이 마치 제방처럼 세워져 있었다. 중국 쪽에도 철조망이 들어섰다. 물론 7년 전에도 철조망은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띄엄띄엄 있었다. 그것이 지금은 국경선을 따라 한 점 빈틈없는 연속선으로 이어진 것이다. 강변은 물론 들판과 마을 주변에도, 국경선이 지나는 곳이라면 어디든 철책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북한 주민들과 그들 삶이 철조망 속으로 더욱 오그라들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는 듯했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달 27일 미국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와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부터 올해 초까지 북한 국경의 위성 사진을 비교 분석한 결과를 보도했다. 로이터는 북한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국경을 대대적으로 정비했으며 그 결과 적어도 489㎞에 이르는 국경에 철조망, 콘크리트 장벽, 이중 울타리 등이 설치됐고 폐쇄회로(CC) 카메라 등도 포착됐다고 전했다. 그 현장이 내 눈앞에 확연하게 펼쳐진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중국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자 2020년 1월에 국경을 봉쇄하고 인적 왕래와 교역을 전면 중단했다. 작년 1월 단둥∼신의주 간 화물열차 운행이 재개되고 지난 1월부터는 훈춘∼나진·선봉 구간에서 화물트럭이 다시 오가고 있지만 이 밖에 북한 접경지역은 왕래가 여전히 중단된 상태다.
팬데믹으로 인한 봉쇄라고 하지만 현장에서 빈틈없는 철조망을 보게 되면 북한 주민의 탈북을 막기 위한 철의 장벽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하고 김정은 체제가 들어설 때만 해도 10여 년 후 북한이 이토록 더욱 가혹한 체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서구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고, 젊은 지도자라는 사실 때문에 북한에 조금이라도 융통성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이 없지 않았다. 북한이 잠시 그런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북한 역사에서 보더라도 가장 억압적인 체제를 공고하게 다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정은 정권이 현재 취하고 있는 이른바 ‘반(反)사회주의’ 척결 조치는 그 가혹성이 북한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 북한 주민들은 한국 드라마를 보거나 무심결에 연인에게 오빠라고 하는 등 한국식 말투를 쓰다가는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거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북한 정권이 ‘반사회주의’ 행위 중에서도 가장 엄중하게 다루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탈북과 탈북 방조다. 과거 한때 한국에서는 북한 정권이 은근히 주민들의 탈북을 묵인함으로써 불만 세력을 내보내 체제 폭발의 내압(內壓)을 줄이고 한국 사회에 부담을 떠넘기려 하는 것 아니냐는 믿거나 말거나식 관측이 나올 정도로 탈북이 대거 늘어난 적도 있었지만, 말 그대로 옛날 이야기가 됐다.
전 세계가 팬데믹 공포에서 점차 벗어나면서 북한도 국경 봉쇄를 중단하고 곧 북·중 국경이 다시 열릴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악화하는 북한의 경제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봉쇄를 계속 이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뒤따른다. 그러나 아직도 북한은 꽁꽁 닫은 문을 열지 않고 있다. 북한 내부 문건을 살펴보면 올해 초부터 이어진 이러한 짐작성 보도와 전망에 왜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지난 3월 북한 중앙비상방역사령부가 작성한 한 문건을 보자. 제목은 '적들의 코로나 비루스(바이러스) 전파 책동을 분쇄하기 위한 협의회 진행 정형과 대책 보고'다. 여기에는 김정은의 지시가 그대로 담겨 있다. 김정은은 코로나19를 차단하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은 “적들이 강과 하천, 기구를 통해서 들여보내는 적지물(대북전단 등)을 우리 사람들이 손을 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면서 “감염증의 전파 확산이 완전히 꺾일 때까지 지금의 봉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여야 한다”고 했다. 전 세계가 팬데믹에서 엔데믹을 향해 달려갈 때도 북한은 철통같은 국경 봉쇄를 쉽게 완화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진 것이다. 머잖아 무역일꾼 등에 대한 출국이 허용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식 출국 절차를 밟는 경우일 것이고 국경선 철조망이 철거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북한이 이토록 국경을 꽁꽁 틀어막은 것이 코로나19 방역만을 위한 것이 아님은 불문가지다. 이참에 탈북까지 원천 봉쇄하겠다는 나름의 의지가 확연하다. 김정은 정권은 초기부터 탈북을 중대한 체제 위협 범죄로 인식해 단속을 강화해 왔다. 2017년 12월 김정은이 집권한 지 6년 정도 지난 시점에 작성된 '사회주의 조국을 배반하는 반역자들을 엄중히 처벌할 데 대하여'라는 문건을 보자. “하나의 민족으로 살기를 그만두기로 작정하고 남조선 괴뢰들에게로 탈북을 감행한 인간들은 역적 중에 역적”이라고 규정했다. 나아가 탈북을 막기 위해 조선인민군 국경경비대, 국가보위성, 인민보안성(사회안전성, 우리의 경찰) 등이 대대적으로 작전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지시 사항들도 촘촘하다. 그중 몇 가지만 살펴보자. △조선인민군 국경경비대 지휘관들은 초병들에게 초소와 초소 사이 간격을 더 좁혀 한 마리의 쥐새끼들도 빠져나가거나 들어오지 못하게 철통같은 근무 수행을 하도록 해야 한다. △조선인민군 국경경비대 전체 군인들은 실탄을 착용하고 비법월경, 탈북, 간첩행위를 하는 자들에게는 무자비한 징벌을 가해야 한다. △보위일군들은 높은 대적 관념을 가지고 탈북자 가족들을 철저히 감시하며 이들을 통한 이중, 삼중의 탈북이 일어나지 않게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국경선을 틀어막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경 근처 도시들을 평소에 샅샅이 훑고 감시하는 체계도 강화했다. △신의주시, 무산시, 회령시, 혜산시, 만포시 등 국경 지역 보위부에서는 2~3인조로 구성된 탐지 인원을 곳곳에 배치하여 불법 전화를 휴대하였거나 통화를 시도하는 자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동시에 처벌 수위를 한 계단 높여야 한다. △각 도의 인민보안서, 특히 국경 지대 인민보안서에서는 자위 경비체계와 군중 신고체계를 더욱 철저히 세우고 지구반장들과 인민반장들이 직접 짠 경비일람표대로 주민들과 함께 경비도 서고 마을과 강 안쪽에 대한 순찰을 강화해야 한다.
강을 건너 중국으로 가려는 주민을 붙잡는 데 공을 세운 국경경비대원에게는 입당과 대학 입학도 보장됐다. 국경 도시 주민이 볼일이 있어 강가에 가려면 국경경비대에 공민증을 맡겨야 하고 접근 허용 시간도 줄어들었다. 주민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도 더욱 엄격히 제한되었고 국경 방향의 도로마다 검문소도 추가로 설치되었다.
이와 같은 이중, 삼중의 감시망이 탈북자 숫자를 크게 줄이기는 했지만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했다. 대신 탈북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이 늘어났다. 국경경비대의 뇌물 루트가 좁아지면서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탈북 비용은 북한에서 중국 국경을 넘는 비용과 중국에서 동남아 등지로 이동하는 데 드는 비용을 의미하는데,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는 우리 돈으로 총 200만~300만원 정도였다. 그러다가 2013년 이후에는 500만원, 2017년 이후에는 1200만~1500만원으로 갈수록 증가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에는 북·중 국경을 넘는 비용만 1000만원 정도라고 했는데 지금은 몇천만 원에도 나오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정은이 집권하기 직전인 2011년에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민이 2706명이었지만 김정은 집권 초기인 2012년에는 1502명으로 급감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2020년 229명, 2021년 63명, 2022년 67명에 불과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했겠지만 북·중 국경 원천 봉쇄가 가장 큰 직접적인 이유일 것이다.
남북 분단 이후 지금까지 70여 년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탈북 행렬은 북한 내부 사정과 남북 관계를 비춰주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광복과 6·25전쟁을 전후해 남쪽으로 향했던 실향민 행렬은 분단된 조국에서 우리 민족의 절대다수가 어떤 이념 체제를 선택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1960년대 이후 탈북민들은 귀순 용사 또는 귀순자로 불리면서 남북 간 치열한 체제 경쟁의 한 단면을 상징했다. 1990년대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함께 북한 체제가 크게 동요하면서 발생한 대규모 탈북 사태는 남북 체제 경쟁이 사실상 종언을 고했음을 알렸다.
이제 한국 내 탈북민 규모는 약 3만3000명에 이르게 됐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갖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적인 정착 과정을 이루어 가고 있다. 이들은 또 북한 내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떤 형태로든 연락을 유지하면서 바깥세상의 정보와 자금을 보냄으로써 북한 사회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 정부와 사회의 탈북민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갈수록 시들해지고 있는 양상이지만 민족 분단 여정에서 이들이 감당해 나가고 있는 역사적 책무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탈북민 정책이 탈북민의 성격과 규모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이는 또 북한 내부 정세를 흔들 수 있다는 사실도 여전할 것이다.
두만강변에 서서 7년 후를 상상해 본다. 그때 저 철조망은, 또 북한 주민들 표정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멈춰버린, 아니 거꾸로 가는 북한의 시계를 역사의 진행 방향에 맞추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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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영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북한학 석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박사 △뉴시스 도쿄특파원 △<北朝鮮のリアル(북한의 현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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