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4명이 잇달아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전세사기 피해가 전국적인 사회 문제가 되면서 임대차 제도 개편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전세제도뿐 아니라 '깡통전세'를 양산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이전 정부의 '임대차 3법'도 손질 대상이다.
당초 "전세는 이제 수명이 다했다"며 '전세폐지론'에 불을 댕긴 원희룡 장관이 최근 "전세를 제거하려는 접근은 하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정책 방향이 전세 폐지가 아닌 수정·보완이라는 점이 명확해진 분위기다. 임대차 3법의 경우 축소 또는 폐지의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으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부동산 정책이 이전 정부가 틀어막은 규제 등을 정상화하는 데 방점이 찍힌 데다 윤석열 정부가 대선 당시 공약으로 전면 재검토를 강조한 만큼 큰 폭의 개편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전세가 비록 사기의 온상으로 전락했지만, 현재도 서민 주거 사다리의 주요 축인 만큼 인위적인 통제보다는 시장 논리에 맡기는 등 임대차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최소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25일 전문가들은 임대차 시장 제도 개선에 대해서 대체로 시장 논리에 자연스럽게 맡기되 전세사기에 영향을 줬던 부분들을 수정 보완하는 식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고준석 제이에듀 투자자문 대표는 "정부는 공급에 치중하면서 시장 논리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면서도 "과도한 갭투자를 막기 위해서 일정 비율 캡을 씌워 몇 천만원 이상은 전세 계약을 못 하게 하는 등의 전세 상한제 같은 것을 도입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준환 서울디지털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수요와 공급에 따라 맡겨야 한다"며 "정부가 정책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원 장관이 에스크로제도 도입에 선을 긋긴 했지만 임차인 보호를 위해 검토해볼 만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함영진 직방 데이터랩장은 "총액 중 일정 금액을 에스크로 제도로 묶는다든지 아니면 전세금 반환 위험을 미리 임차인들이 검토할 수 있도록 보증금 반환 능력이 없는 임대인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든지 등의 전세사기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부분들이 검토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세제도 내 시세가 불투명해 나타나는 비대칭 정보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기술을 적극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성환 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빌라의 경우가 대표적인 비대칭 정보 문제가 발생하는 사례"며 "AI 등을 활용해 추정 가치를 산출하는 모델들이 상당히 많은 나온 상황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전세제도 내에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 상한제·전월세 신고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전셋값 상승에 일정 부분 영향을 준 것에 대해선 대부분 공감했지만, 전면폐지나 일부 수정 등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고준석 대표는 "임대차 3법은 그동안 주택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격을 폭등시킨 주원인 중의 하나였다"며 "시행 결과 부작용이 나타난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폐지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김준환 교수는 "임대차 3법 시행으로 가격이 일시적으로 상승한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계약갱신청구권으로 전세계약이 2년에서 4년으로 늘어나는 등 임대차 3법이 오히려 전세 가격 안정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며 임대차 3법을 그대로 둘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원희룡 장관이 지난 23일 폴란드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전세 제도 개편 방안으로 언급한 무제한 갭투자 금지 또는 제한이나 선순위 보증금 또는 근저당이나 기존 채무가 있으면 보증금을 제한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실효성은 있지만 객관적 기준 등을 명확히 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우병탁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 부동산팀장은 "무제한 갭투자를 제한한다고 하면 결국 아파트나 빌라 등 집값이 명확히 정해져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며 "정부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져도 계속 방법을 강구해야 하겠지만 실무적으로 어떻게 평가하고 그 수치를 뽑아낼 것인지가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성환 부연구위원도 "집을 몇 채 보유했는지는 통계적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몇 채를 소유한 것부터 무제한이라고 할 수 있는지 정확한 기준을 내리기가 어렵다"며 "실무적인 어려움이 많이 따를 듯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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