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있는데 고아로 꾸며"…법원, 입양기관에 '불법 해외입양' 책임 첫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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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언 기자
입력 2023-05-1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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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2023.04.05[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친부모가 있는데도 고아로 만들어 해외로 입양 보내진 '불법 해외입양' 피해자에게 입양기관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다만 법원은 정부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박준민 부장판사)는 16일 신송혁씨가 홀트아동복지회(홀트)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홀트는 신씨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다만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기각했다.

신씨는 3살에 미국으로 입양됐다. 입양된 이후 양부모의 학대와 두 번의 파양을 겪었던 신씨는 16살에 노숙 생활을 해야만 했고 성인이 된 후 시민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신씨는 결국 37년 만인 지난 2016년 미국에서 추방됐다.

신씨는 홀트가 자신에게 친부모가 있는데도 입양 과정에서 '기아호적(고아호적)'을 만들어 불법적으로 해외로 보냈다고 주장했다. 고아는 부모의 동의를 받을 필요 없이 홀트 등 입양알선기관의 동의만 있으면 쉽게 입양할 수 있는 등 절차가 간단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신씨는 본명인 '신성혁'이 아닌 '신송혁'으로 기재됐다.

신씨는 "홀트가 고액의 입양 수수료를 챙기면서도 입양 아동의 현지 국적 취득 여부는 확인하지 않는 등 국적취득 확인의무와 사후관리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국가에도 "정부가 국적 취득 확인 등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입양알선기관의 부당한 재정적 이득을 허용했다"며 책임을 물었다. 신씨가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2억 100원이었다.

이번 사건은 해외 입양인이 입양 과정의 위법성을 지적하며 국가와 입양기관을 상대로 낸 첫 손해배상 소송으로 이목을 끌었다. 신씨가 승소할 경우 신씨처럼 불법으로 해외입양된 다른 피해자들의 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법원이 입양알선기관의 불법행위만 인정함에 따라 이들이 국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어려워졌다. 

판결 직후 신씨의 법률대리인인 김수정 변호사는 "홀트의 불법책임을 인정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불법 해외입양을 관리하고 주도·기획 및 용인해온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는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금전적 배상 액수는 중요하지 않은 소송이었고 그래서 민사합의부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최저 금액을 상징적으로 설정해 소를 제기했다"며 "불법 해외입양 피해자들의 인권이 어떻게 침해됐고 이들이 얼마나 고통 받고 있는지를 알리고 (정부와 입양알선기관이) 책임지도록 하고 싶어서 낸 소송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정부가 불법 해외입양과 아동 인권침해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를 용인했다는 점을 충분히 입증했는데도 국가에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국회 회의록 등을 바탕으로 해외입양 아동들이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하고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부가 대책을 수립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했다"며 "그럼에도 (정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가) 기각된 것은 상당히 납득하기 어렵다. 판결과 무관하게 국가가 먼저 나서서 이 문제에 대해 사과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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