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소프트 파워는 국경을 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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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원 국제경제팀 팀장
입력 2023-04-2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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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장성원 국제경제팀장]

"한국이 개발할 수 있는 어떠한 미사일보다도 강력한 음악과 행동주의를 통해서 하드 파워에 맞먹는 힘을 형성할 수 있다." 미국 외교 전문 매체 디플로맷이 한국의 소프트 파워에 대해 내린 평가다.

영화, 드라마, 가요, 패션, 스포츠 등을 아우르는 한국의 문화 콘텐츠, 이른바 'K-콘텐츠'가 전 세계를 누비는 것은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방탄소년단(BTS), 오징어게임, 기생충, 손흥민, 블랙핑크 등 이름만 대면 세계 어디서나 알 법한 대표적인 K-콘텐츠들이다. 2022년 글로벌 컨설팅업체 브랜드파이낸스의 국가별 소프트파워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아시아 3위, 전 세계 12위에 올랐고 작년 말 열린 카타르월드컵 소프트 파워 순위에서는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단적인 예로 BTS가 UN, 백악관에 드나드는 것만 봐도 K팝의 위상이 어떤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은 '한한령'으로 통칭되는 한국 제품·서비스 제재 조치를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K-콘텐츠는 여러 통로로 스며들어 중국민들에게까지 전해졌다. 얼마 전 상하이에 사는 중국인 린(林)씨는 아주경제 기자에게 "한국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시청하기 위해 중국 당국이 금지한 가상사설망(VPN)을 설치했다"고 전했다. 장시성에 사는 또 다른 중국인 자오(赵)씨는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앱을 이용해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다면서 "일반적으로 드라마가 끝나면 10분 안으로 업데이트돼 바로바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소프트 파워의 힘이다. 말 그대로 국경을 뚫고 들어간다. 지구상에서 가장 통제된 사회라는 북한에서도 한국 드라마를 시청했다는 주민 비율이 96%에 달한다는 통계 조사(국민통일방송·데일리NK 발표)가 이를 증명한다. 각국 정부들 간에는 각자 이익에 따라 편이 나뉘면서 각종 제재와 경쟁이 난무하고 있는 반면 민간층에서는 부담감 없이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가요를 부르며, 한국 음식을 즐기고 있다. 소프트 파워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좋은 예시다.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 등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이 충분히 활용해야 할 수단이 소프트 파워이기도 하다. 김민성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교수는 '한국 소프트 파워의 성장과 그 지정학적 영향'이라는 제하의 논문에서 "자국 이익 보호를 위한 국가들 간 경쟁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소프트 파워는 상황을 개선하는 기회를 창출해낼 수 있다"며 "예를 들면 민간 부문 교류는 한국과 인접국들 간 양자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K-콘텐츠의 힘은 이미 수치로도 증명되고 있다. 2021년 콘텐츠 수출액은 124억 달러(약 14조3000억원, 2021년 환율 기준)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데 이어 2022년에는 130억 달러에 달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규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오랜 기간 우리 수출의 첨병 역할을 해왔던 반도체 수출이 급감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또한 5억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한 언어 학습 앱 듀오링고에 따르면 한국어는 지난해 사용자들이 7번째로 많이 학습한 언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려의 목소리들이 많다. 대통령실은 지난주 브리핑에서 미국의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관련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언급했다. 이를 둘러싸고 이번 정상회담에서 해당 안건들이 주요 의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이 노골적으로 보호 무역 기조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도체, 전기차 등과 관련해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안 그래도 어려운 국내 산업계에 부담이 가중될 것임은 자명하다.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도 위태위태하다. 중국은 윤 대통령의 대만 문제 언급에 높은 수위의 표현을 사용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고, 러시아 역시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것에 강한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이미 한국을 교전국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향후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변할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의 위치, 우리가 가진 무기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강력한 무기 중 하나는 바로 소프트 파워이다. 소프트 파워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한 국가의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가 균형을 이루어야 성장과 번영의 기회가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소프트 파워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반도체, 전기차 및 안보 문제 등 이른바 하드 파워 관련 문제들에 대해서는 정부를 비롯해 관계자들이 합심해 실사구시적 자세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외교·경제적 불확실성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보유한 분명한 강점인 소프트 파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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