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양호 선생님의 친절에 29년간 의료취약지 지키는 '이양순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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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박종석 기자
입력 2023-03-0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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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건진료소는 마음의 안식처 같은 곳"..."친절은 칭찬받을 일 아냐"

  • 높은 수준의 의료기술. 시골 마을은 그 혜택과 거리가 멀다고 느껴

이양순 강원 화천군 하남면 용암보건진료소장. [사진=박종석 기자]


“고등학교 시절 건강이 안 좋아 수시로 학교 보건실(양호실)을 드나들었어요. 이때 양호 선생님의 변함없는 친절에 감동돼 ‘간호사’라는 직업을 꿈꿔왔고 간호대학에 진학했어요.”
 
‘이쁜 소장님’으로 불리는 강원 화천군 하남면 용암보건진료소 이양순 소장(53)은 지난 5일 아주경제와 인터뷰에서 29년간 의료취약지 진료를 이어온 이유를 묻자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
 
이 소장이 처음 의료취약지 보건기관인 보건진료소와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 시절 ‘공중보건 장학생’에 선발되면서다. 이때 2년간 의무기간을 보내면서 시골 지역 환자들의 의료공백을 마주했다.
 
보건진료소는 간호사 1명이 소장을 맡아 1차 진료 및 상담, 환자 왕진, 보건교육, 예방접종은 물론 가정방문도 도맡는다. 이 소장은 보건진료소에 근무하면서 마을 주민 65세 이상의 고령자 중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리고 “이들이 찾는 약의 종류는 다양한데 보건진료소가 처방할 수 있는 약은 한정돼 있어 마음이 무거웠다”고 회상했다.
 
이 소장이 1994년 11월에 첫 발령을 받아 근무한 지역은 강원도 동해안 최북단마을인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명파보건진료소였다. 오지에서의 보건사업 수행은 20대의 젊은 나이에 쉽지 않았다. 그는 “사회 초년생에게 충분히 마음의 갈등이 생길 수 있는 시기였지만 ‘진료소에 불이 켜있으면 안심이 되고 불이 꺼져 있으면 불안하다’는 주민들 말씀에 자신의 존재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풋내기 소장이지만 주민 건강 지킴이로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아이들의 정서 함양과 창의성 증진을 위해 업무 외에 속초도서관 등에서 후원받은 책으로 진료소에 작은 책방을 마련했다. 또 여름과 겨울방학에는 한문 교실과 영어 교실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덕분에 진료소는 환자보다 아이들로 항상 북적거렸고 주민들의 사랑도 받았다. 그는 “어린 나이지만 깍듯하게 소장님으로 불러주신 어르신들과 호박 한 개, 감자 몇 알, 배추 한 포기 등 각종 농산물을 진료소 문밖에 놓고 가신 마을 분들, 약을 지러 오실 때면 음식이 식을까 봐 보자기를 덮어 오시던 어머니들이 있어 외롭지 않게 최북단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며 첫 근무지였던 고성 명파보건진료소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 소장은 2001년 화천군 화천읍 풍산보건진료소를 거쳐 2016년 3월부터 화천군 하남면 용암보건진료소에서 근무 중이다. 그는 첫 근무지부터 지금의 보건진료소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에게 “진료소가 없으면 어쩔 뻔했을까. 진료소가 마을에 있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 그리고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오래 오래 이 마을에 있으면 좋겠다. 우리와 함께 있어 줘서 고맙다”는 등의 표현을 가장 많이 듣는다고 한다.
 
이러한 주민들의 표현에 대해 이 소장은 “선진국 못지않은 높은 수준의 의료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지만 시골 마을은 그 혜택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골 마을의 보건진료소는 단순히 약을 짓고 상처를 치료하는 1차 진료 기관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며 “의료취약지역에 사는 이들에게 이곳은 바라만 보아도 위안과 평안을 주는 마음의 안식처 같은 곳”이라고 강조했다.
 
양호 선생님의 친절에 감동해 간호사가 된 그는 진료소장의 친절은 당연한 자세로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보건진료소의 주인은 주민이며, 보건진료소는 주민들의 것”이라며 “소장은 지역주민과 환자를 잘 치료하고 돌보며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기에 친절은 대단한 미담이 아니라 당연한 모습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는 보건기관에 발령받은 공무원과 지역주민의 관계는 평범한 관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주민 중에 아프거나 어떤 일이 벌어지면 가정 방문은 물론 가족들과 같이 의논하고 고민하는 자연스러운 가족으로 느껴진다”면서 “마을의 애경사에 되도록 참여하는 이유도 지역주민이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 이모, 고모, 조카와 같은 가족 공동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장의 용암보건진료소 관할구역은 거례리, 위라리, 삼화리, 용암리이다. 모두 760가구에 인구수는 1700명이 넘는다. 65세 이상은 364명이지만 1인 가구 수는 310가구로 독거노인이 40.8%로 매우 높다. 이 같은 현실에 그는 “앞으로 농촌 지역 주민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마을 경로당을 수시로 방문한다. 그에게 경로당은 참새의 방앗간 같은 곳이다. 이곳을 방문하면 어르신들이 모여있어 보건교육, 혈압 및 혈당 체크 등 건강관리를 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독거노인, 의료급여대상자, 장애인, 재가 환자 등 대부분의 취약계층이 가정방문 대상자이다. “이분들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반복적인 약 복용 교육을 한다. 또 약 복용을 규칙적으로 하는 모습은 나를 기쁘게 보람되게 한다”며 흐뭇해했다.
 
취약계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질 순 있지만, 이들과 함께하며 진료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여자로서 진료소장의 업무가 웬만한 각오 없이는 어려웠을 것 같다고 묻자 “어린아이처럼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경우가 자주 있지만, 몸이 불편한 사람을 진료하고 도와주는 일은 고생보다 간호사인 저를 성장시켜준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경험이 부족했을 때는 어르신들의 부탁으로 일상을 도와 드렸다. 이제는 알아서 도와 드린다”며 “내가 착해서가 아니라 보건진료소에서 쌓인 경험과 연륜으로 갖게 된 소신이다”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어르신들이 진료소를 통해 웃음이 많아지고 건강해 보이실 때 보람을 느낀다”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 지역주민을 위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더욱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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