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비우호국' 딴지에…오도가도 못하는 한국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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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가림·김수지 기자
입력 2023-01-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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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물·공장·토지 등 매각하려면 절반가격에 팔아야

러시아 정부가 글로벌 기업들의 잇단 철수를 막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비우호국 국가의 기업이 건물, 공장, 토지 등 자산을 매각하려면 자산 규모의 절반 수준에 매각하거나 매각 대금의 최소 10%를 정부에 납입하는 정책 도입을 예고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기업은 1년 가까이 현지 공장 가동을 멈추며 생산, 매출 등에서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러시아 정부의 제재가 현실화되면 철수하지도 생산하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외국 기업이 자산을 매각할 경우 매각 대금의 10%를 러시아 정부에 내는 정책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특히 비우호국 국가의 기업이 현지 기업 등에 자산을 매각하려면 책정된 자산 규모의 50% 수준에 팔아야 한다는 점도 명시돼 있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메르세데스-벤츠와 르노, 도요타, 마쓰다, 닛산 등 주요 기업들이 현지에서 줄줄이 철수하자 이 같은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코트라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러시아에 법인을 둔 국내 기업 수는 166개다. 이 중 현대차그룹은 18개의 법인을 두며 러시아 시장에 많은 투자를 한 기업 중 하나로 지목된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세계 각국이 러시아에 대한 반도체, 각종 원자재 등 수출 통제에 나서면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3월부터 공장 가동 중단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가동률은 29%로 2021년(121.1%) 대비 4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철수 대신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버티기에 돌입했지만 손실은 계속 커져가는 형국이다. 러시아 공장은 지난해 1분기에만 29억3200만원의 순손실을 냈다. 

당초 러시아 공장은 동유럽 공략의 교두보 역할을 해온 곳이다. 현대차 러시아 공장의 생산능력은 연 23만대로 솔라리스와 엑센트, 크레타, 리오 등이 생산된다. 현대차·기아는 2021년 각각 17만1813대, 20만5801대를 판매하며 시장점유율 2~3위를 지켰다. 이 공장에서 생산된 차량들은 러시아뿐 아니라 인구 3억의 거대 내수시장을 보유한 동유럽 독립국가연합(CIS) 지역까지 판매됐다.  

글로벌 경기 악화 속 정기적인 설비 가동, 인건비 등 고정비 지출이 늘어나고 있는 데다 공장 재개 시기가 불투명해지면서 최악의 경우 사업 정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러시아 정부의 조치에 따라 큰 손실을 떠안고 핵심 시장을 정리하게 되는 셈이 된다. 현대차를 따라 공장을 중단한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등 계열사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이 장기화하면 현대차처럼 진퇴양난에 빠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칼루가주 보르시노에 TV·모니터 공장을, LG전자는 모스크바주 루자에 TV·모니터·생활가전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두 회사도 현지 공장을 폐쇄한 상태다. LG전자는 러시아 공장에 7000억원이 넘는 투자비용을 쏟으며 공을 들여왔지만 지난해 3분기 기준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3% 감소했다.

삼성전자도 주변국의 생산요구가 있을 때마다 일부 가동을 하고 있지만 정상화는 가늠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두 회사는 러시아 가전, TV 시장에서 1~2위를 달리고 있지만 자산 규모의 절반을 러시아 정부에 내준 채 울며 겨자먹기로 사업을 정리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러시아에 판매법인을 둔 국내 타이어업계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고객사인 현대차가 가동을 중단하며 신차용 타이어(OE) 물량이 줄었고 글로벌 경기 침체로 내수 수요가 줄어들면서 판매량이 미미한 수준에 그치는 실정이다. 이에 인근 국가로 법인 이전을 고려하는 곳도 있지만 러시아 정부의 조치를 지켜본다는 계획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현대차 생산공장 [사진=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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