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언의 베트남 인(人)]개혁의 기수, 보반끼엣(Võ Văn Kiệt)을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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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베트남)=김태언 특파원
입력 2022-11-3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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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반끼엣 전 총리 탄생 100주년 맞아...현지 언론의 대대적 조명

  • 90년대 초인플레이션 극복하고 베트남 경제구조 개선에 주력

  • 남북송전선 연결 등 인프라 구축 통해 경제 발전의 밑바탕 건설

  • 100주년 기념 출판물, 관련 행사 이어져..."숭고한 정신 승계할 것"

고(故) 보반끼엣 전 베트남 총리(1922~2008) [사진=타잉니엔(Thanh Nien) 온라인판 캡처]

‘베트남 개혁의 상징, 프로젝트 창안자, 가장 시장친화적인 총리’

보반끼엣(Võ Văn Kiệt) 전 베트남 총리를 기념하는 현지 언론의 수식어들이다. 지난 11월 23일, 보반끼엣 탄생 100주년과 서거 25주년을 맞아 현지 언론들은 일제히 관련 특집 기사를 게재하고 그를 추모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한 정치인의 탄생까지 추앙하며 이렇게 대대적인 조명을 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사실상 국부로 불리는 호찌민(Hồ Chí Minh·胡志明) 주석과 베트남 전쟁의 영웅으로 불리는 보응우옌지압(Võ Nguyên Giáp·武元甲) 장군 등 일부 인사를 제외하고는 이 정도 차원의 기념 축하 행사는 없다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보반끼엣 전 총리는 우리나라 등 대외적으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베트남 현지에서는 베트남에서 개혁개방(도이머이) 사상을 처음으로 주창하고 총리 시절,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며 어려웠던 1990년대의 베트남 국가 경제를 재건한 영웅으로 통한다.

베트남 정부공보(VGP)는 관련 기사를 통해 그가 경제적인 식견과 통찰력뿐만 아니라 호찌민 주석과 조국의 인도차이나 전쟁, 통일 전쟁에도 참여해 혁혁한 공을 세웠다며 진정한 베트남 당과 혁명의 뛰어난 지도자 중 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현지 일간지 타잉니엔은 '다음 세대를 위한 개척자'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그는 도이머이를 포함해 당시 많은 획기적인 프로젝트의 창안자였으며, 그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우리(베트남)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메커니즘 장벽을 깨는 개혁을 이루는 것”이라고 전했다. 

현지매체 VN익스프레스는 특집 보도를 통해 보반끼엣 동지의 일생과 역사는 당과 우리 민족의 영웅적 혁명투쟁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그는 나라와 민족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남자였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우리는 그의 사상과 행동을 기념하고 향후 활동의 기준과 척도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에서 베트남 행정부 최고 수장으로
보반키엣 전 총리는 1922년 11월 23일 빙롱(Vĩnh Long)성 붕리엠(Vũng Liêm) 현의 빈프엉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소작농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 식민지였던 당시, 인민들이 가혹한 착취와 고통을 당하는 경험을 겪으면서 독립과 자유의 정신을 가지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8년, 그는 불과 16세의 나이에 반체제청년단에 입당해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인 1939년 11월에는 호찌민 주석이 조직한 인도차이나 공산당에 정식으로 입당했다. 1940년 11월에는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발발했고 그는 빙롱성 지역 공산당위원회 비서이자 지역구 대의원으로서 인민을 이끌고 붕리엠 지역과 빙롱성의 일부 지역에서 독립적인 행정조직을 구축했다.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였던 1941년부터 1945년까지 그는 락자(끼엔장)성 당위원회 위원으로 주요 군사기지 보호를 직접 담당하면서 간부 양성과 게릴라 부대 구축에 주력했다. 또한 남서부 혁명 운동의 중심이 됐던 우밍(U Minh) 건설에 기여하고 1945년 남서부 지방에서 ‘8월 혁명의 승리’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이후 1955년 제네바 휴전협정(베트남 독립)이 체결되고 그는 남부 당위원회 위원과 허우장(Hậu Giang)성 당위원회 부비서로 선출됐다. 1959년부터 1970년 말까지 그는 이른바 T4 구역(Saigon-Gia Dinh)으로 불렸던 지역의 당위원회 서기와 상임비서로 활동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그는 호찌민 주석의 지시를 통해 남부 당을 이끌며 활약했다. 특히 미군의 참전이 본격화한 1963년부터 그는 이른바 구찌(CuChi) 터널 전투로 불리는 끈질긴 게릴라전에서 주요 지도자로 공헌했다. 또 1968년 북베트남 구정(뗏)대공세 기간에 사이공 특수부대를 동원해 주요 표적을 섬멸하고 미국대사관, 독립궁을 점령해 사이공 탈환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반끼엣 전 총리의 호찌민시 당서기 시절 [사진=베트남통신사(TTXVN)]

베트남 통일 이후 그는 남부 지역의 주요 요직을 두루 맡았다. 1973년, 그는 남부 중앙당 상임위원으로 임명됐다. 1976년에는 호찌민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1977년에는 사이공에서 호찌민시로 변경된 호찌민시 당위원회 서기직을 다시 맡았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그는 남부의 핵심 지도자로 전쟁 당시 폐허가 된 호찌민시를 다시 베트남 경제 도시로 복원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1982년, 호찌민시 당서기를 사임하고 그는 중앙정치 무대로 자리를 옮긴다. 이미 베트남 중앙당의 정치국원이었던 그는 같은 해 4월부터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겸 장관, 각료회의 제1부위원장직을 맡게 된다. 

1987년부터 1991년까지 그는 전임자인 보응우옌지압 부총리에 이어 부총리 겸 국회 계획출산운영위원장을 역임한다. 1988년부터는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해 이례적으로 총리가 맡는 각료회의 의장 대행으로 임명됐다.
 
◆남북 송전선 프로젝트 과감히 추진...싱가포르 등 투자 확대 물꼬터
1991년 8월, 그는 마침내 베트남 행정부의 최고 위치인 총리직에 오른다. 베트남 제8대 국회 9차회기는 보반끼엣 부총리를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총리 겸 각료회의 의장으로 선출했다. 그의 재임기간은 1991년 8월부터 1997년 9월까지 총 6년 1개월이었다. 

최근 현지 언론들이 주목하는 그의 업적은 대부분 총리 시절에 집중된다. 당시 베트남은 도이머이 개혁개방 이후 극심한 고물가 시대에 직면해 있었다. 오랜 전쟁 이후 베트남은 경제성장이 필요했지만, 초창기 ‘코안경제’로 불리는 경제개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쌀 등 주요 식료품 가격이 급등했다. 1986년 베트남의 인플레이션은 역대 최고인 774%에 달했으며 1991년까지도 인플레이션은 67%에 달했다.

그는 취임 이후 베트남 중앙은행이 더 많은 돈을 발행하는 것을 막고 상업은행이 대출을 제공하기 위해 예금만 사용하도록 허용했다. 또한 가격이 수요와 공급 원칙을 따르도록 허용하고 경제와 시장 시스템을 재구성했다. 

이후 인플레이션은 1992년에 17.5%, 1993년에 5.2%로 떨어졌고 그의 임기 마지막인 1997년에는 3.21%를 유지하며 경제는 안정화를 되찾았다. 대외무역 또한 그가 취임한 1992년부터 다시 증가했고 1997년에는 무역교역액이 1992년 대비 5.2배 늘어난 295억 달러까지 불어났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베트남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약 9%로 고성장을 거듭했다.
 

보반끼엣 전 총리(오른쪽)가 남북송전선 마지막 공사 구간을 방문해 현장을 살피고 있다. [사진=베트남통신사(TTXVN)]

끼엣 전 총리는 베트남의 획기적인 인프라를 추진했던 인물로도 꼽힌다. 그는 재임 시절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특히 송전선 건설이 유명하다. 현지 언론에 밝혀진 유명한 일화에 따르면 그는 남북을 연결하는 500킬로와트(㎾)급 전력선 건설을 ‘혁신의 상징’ 중 하나로 불렀다고 한다. 그는 건설부 장관을 불러 2년 이내에 송전선 건설을 지시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기술력에 비춰볼 때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그는 프로젝트 추진을 강행했고 결국 1500㎞에 이르는 남북 송전선이 하노이와 호찌민을 연결했다. 이 송전선은 지금도 베트남의 전력을 공급하는 주요한 전력망이다.

이외에도 그는 하노이와 호찌민을 잇는 남북도로 연결, 찌안 수력발전소 건설, 쭝꾸앗 석유정제소 건설 등 재임 시절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획했다.

대외적으로 그는 당시 도이머이 이후 주요 투자국이었던 싱가포르와 관계 개선을 도모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당시 리콴유 총리를 수차례 만나 베트남 투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현재 호찌민 인근의 가장 성공적인 공단 모델로 평가받는 VSIP(싱가포르 공단)도 이때 건설이 시작된 것이다. 이 시기 베트남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에도 가입했다. 한국과의 인연으로 보면 1993년에 방한해 김영삼 대통령을 만났다.

가족사로는 두 명의 부인에게서 5명의 자녀를 낳았다. 첫째 부인과 두 자녀는 1966년 베트남 전쟁 당시인 1966년 뚜언퐁 침몰 사건에서 사망했다. 장남이었던 판찌쭝은 1972년 미군과의 속짱 전투에서 사망했다. 이후 결혼한 둘째 부인은 베트남 남부의 여성당기관지의 편집장이었던 호티밍(Hồ Thị Minh) 여사다. 현재 베트남의 최연소 정치국원이자 권력서열 5위인 보반트엉 중앙당 상임서기는 그의 손자로도 알려져 있다.
 
◆퇴임 후 후배 지도자 양성에 힘써...‘100주년 기념식’ 각계인사 추도 이어져
총리 퇴임 이후에도 그는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간 중앙당 상임위원회 고문을 맡아 역할을 했다. 보반끼엣 전 총리의 전기작가인 하딘찬(Ha Dinh Can)에 따르면 그는 국가원로로서 주요 사안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후배 국가 지도자들의 양성을 위해 힘썼다고 한다. 코로나19 기간 베트남 질병통제관리위원회를 사실상 총괄했던 부득담 부총리가 바로 끼엣 총리의 고문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그는 완전한 퇴임 이후에는 막역한 관계를 유지했던 싱가포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 또한 지난 2008년 6월 11일 싱가포르의 마운트 엘리자베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마지막 운명을 맞았다.
 

보반키엣 총리와 리콴유(李光耀) 싱가포르 총리 [사진=베트남통신사(TTXVN)]

그의 장례식은 하노이와 그의 고향인 빙롱에서 동시에 베트남 국가장으로 치러졌으며 베트남 중앙당은 이틀간의 국가 애도기간을 발표했다. 그의 묘지는 처음에는 고향인 빈롱에 안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최종적으로는 베트남 남부 호찌민시 국립묘지(Ho Chi Minh City Cemetery)로 결정됐다.

올해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베트남 전역에서는 다양한 출판물과 기념행사, 전기 프로그램이 제작되고 있다. 지난달 17일에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우표발행식이 열렸으며 베트남 국영방송(VTV)은 보반끼엣 전 총리의 전기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추모 당일이었던 23일 오전에는 호찌민시 국립공원에서 합동분향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팜빙밍 부총리와 응우옌반넨 호찌민시당서기, 응우옌쑤언탕 호찌민정치아카데미 원장 등 주요 베트남 당 지도부와 원로인사들이 참석했다. 23일 오후 빙롱성 보반끼엣 기념관에서 열린 100주년 기념추도식은 팜밍찡 총리, 보반트엉 상임서기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팜밍찡 총리는 이날 추도식에서 “끼엣 전 총리의 삶과 경력은 베트남 국민에게 빛나는 모범”이라며 “그는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사고, 긴밀한 작업 스타일, 항상 탐구하는 정신으로 도이머이를 공식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지금까지도 국가의 강력하고 안정적인 발전의 지표를 안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의 숭고한 정신을 통해 국가 통합을 촉진하며 강하고 번영하는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베트남 국민, 특히 젊은이들은 그의 모범을 따르고 그의 사상을 이어나가야 한다. 조국과 인민을 위한 보반키엣 동지의 헌신과 희생의 모범은 전국의 동포, 동지, 군인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밝혔다.
 

보반끼엣 베트남 전 총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축하공연 [사진=빙롱성 인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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