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기준 모호한 '불법파견', MZ세대는 납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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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우 기자
입력 2022-10-3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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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붉은 깃발법’으로 불리는 영국의 적기조례법은 규제혁신을 논할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1860년대 제정된 이 법은 세계 최초의 자동차 교통법이지만 감정에 떠밀린 규제방식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준 사례다. 증기자동차 등장에 위기를 느낀 마부들과 마차업자들이 관련 법을 주도했고, 대영제국을 이끈 빅토리아 여왕이 이를 승인했다.

조례 내용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1대의 자동차에 무려 세 사람의 운전수가 타야만 했고, 기수 역할을 맡은 운전사는 수시로 붉은 깃발을 들어 마차에 위험신호를 보내야 했다. 말과 마주친 자동차는 무조건 정지하고, 말을 놀라게 하는 증기를 내뿜지 말아야 한다. 교외는 시속 6km, 시가지는 3km라는 거북이걸음으로 제한했다. 산업혁명 본산으로 세계를 호령하던 영국은 해당법이 30년 넘게 이어지자 독일과 프랑스 등 자동차 후발주자들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만다.

최근 법원이 현대자동차·기아에 사내하청 직원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도 붉은 깃발법과 대동소이한 모습이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는 시기에 완성차 제조사들마다 수천억원의 직고용 비용을 떠안게 생겼다. 

해당 사건의 배경인 ‘파견법’을 살펴보면 파견법이 과연 지금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1998년 2월 국회를 통과한 파견법은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는 상황에서 노동시장의 냉기를 없애버릴 묘수로 채택됐다. 간접고용의 범위를 크게 확대하는 법안이라 곳곳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정부는 어쩔 수 없는 외통수라며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이후 시장 혼란은 불 보듯 뻔했다. 부작용을 막으려 수시로 보완책이 등장했지만 뿌리가 바뀌지 않는 나무에 다른 열매가 맺힐 리 만무하다. 특히 사내하청과 불법파견 간의 애매모호한 경계는 해결과제 1순위로 꼽힘에도 마치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처럼 눈치게임만 벌였다. 이번 현대차‧기아의 직고용 문제에 법원이 무려 12년이나 할애한 것도 이러한 법 해석의 어려움을 대변한다.

만약 제조업 대기업들이 사내하청 직원들을 전부 직고용하면 어떻게 될까? 대기업은 단숨에 고비용과 저효율의 수렁에 빠질 것이며, 중소협력사들은 원청에 직원들을 내어주면서 파산 수순을 밟아야 한다. 사내하청이 불가피한 제조업 특성을 애써 외면하려다 국내 제조업 전체가 회생 불가능한 최악의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최근 현대제철과 현대모비스 등이 자회사를 설립해 불법 파견 위험성을 해소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막대한 비용부담을 떠안고 똑같이 조치할 수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미래차 패권 경쟁이 이제 막 시작된 터라 노동 유연성 확보는 미래차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대세가 된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부품이 절반 이상 적어 인력 운용의 효율성이 관건이다.

이제는 관련 법에 칼을 댈 시기다. 한편으로 고용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공정한 가치에 무게를 두는 MZ세대의 업무 가치관이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난달 미국 노동통계국(BLS) 조사에 따르면 MZ세대의 평균 근속연수는 2.8년으로 나타났다. 직장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이 될지언정 삶 자체가 아니라는 무언의 답을 제시하고 있다. 과거 ‘인국공 사태’로 나타난 MZ세대의 분노도 이러한 가치관을 잘 대변하고 있다. 기성세대의 이기심이 오랫동안 미래세대의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닐까. 사회 구성원들의 차가운 머리가 모아져야 할 때다.
 

[김상우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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