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고도의 계산인가, 무능인가...논란만 남긴 재건축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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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입력 2022-09-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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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남자는 프로포즈를 했고, 여자는 받아들였다. 장밋빛 미래에 들뜬 여자가 결혼식 날짜를 잡자고 하니 남자가 뜬금없이 결혼은 신중한 거라며 사랑에 대한 진정성 있는 논의가 먼저라고 한다. 처음부터 '뒤늦게 생각해보니 조건이 안 맞는 결혼은 불행할 것 같다'고 말하면 될 일을 알맹이는 쏙 빼고 포장하려니 설득이 불가능하다. 1기 신도시 재건축 특별법 논란 얘기다.
 
정부가 지난달 16일 발표한 '국민 주거안정 실현 방안'의 후폭풍이 거세다. 5년간 270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고, 국민의 대다수가 살고 있는 공동주택의 질을 높이겠다는 중장기 플랜을 담았다. 나름 내실 있는 준비를 위해 대통령 인수위에서도,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취임 100일까지 미루고 미루다 발표했다. 그러나 실망을 넘어 절망스럽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특히 1기 신도시 재건축 마스터플랜이 2024년 이후로 밀리면서 해당 지역민들은 집단행동도 불사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분당, 평촌, 일산 등 1기 신도시 집값이 수억원씩 하락한 게 기름을 부었다. 해당 주민들은 "빨라야 2024년 마스터플랜 수립이면 현 정부 임기인 2027년까지는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라고 실망감을 보이고 있다. 
 
사실 1기 신도시 용적률은 지금도 200% 이상으로 재건축을 통해 수익성을 올리기가 어렵다. 특별법에 준하는 조치 없이는 재건축 추진이 어렵다는 의미다. 인근에 조성되는 신도시에 비해 낙후된 주거환경, 낡은 인프라, 상대적 박탈감 등 주민들의 절박한 마음을 건드린 건 현 정부다. 용적률 최대 500%, 안전진단 규제 완화 등을 약속했고, 주민들은 프로포즈를 받아들여 그날(정책 발표일)만 기다렸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분노와 허탈감, 배신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물론 집값 상승 우려와 인근 지역과의 형평성, 투기수요, 이주 대책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아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정부 말도 맞다. 그러나 정부는 출범 후 100일이 지나도록 장밋빛 비전만 발표하고 구체적 실행방안은 뒤로 미루는 '떠보기'식 정책 발표를 계속하고 있다. 원 장관은 1기 신도시 주민들의 반응이 격양되자 "장관직을 걸고 약속하겠다"고 했다. 직을 걸겠다는 그의 결연함이 미래를 위한 굳은 다짐이기보다는 뒷수습을 위해 또다시 무리한 약속을 하는 어리석음이 아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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