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30주년 특별 기고] 만절필동(萬折必東)의 한중의회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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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전 국회의장
입력 2022-08-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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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올해는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중 양국 관계의 우호와 협력을 다져야 하는 시기가 됐습니다. 한국과 중국 수교 30주년을 맞아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뜻을 함께하자는 취지로 각계 저명인사의 깊이 있는 견해가 담긴 글을 본지에 싣게 되었습니다. 지난 30년은 한·중 양국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나가고 경제 파트너로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는 등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 적지 않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한국과 중국은 함께 많은 역경을 이겨왔습니다. 한·중 관계는 이제 새로운 기점에 서 있습니다. 

이번 기고 릴레이에는 한·중 수교 과정의 경험담부터 한·중 교류를 위해 현장에서 땀 흘린 여러분들의 이야기까지, 양국 수교 30주년의 역사가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가오는 30년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가득히 담겨있습니다. ​한국의 북방외교와 중국의 개혁개방 그리고 세계사의 변화에 순응하는 한·중 수교는 우리들의 소중한 역사이기에 독자들에게 이 글이 한·중 관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 [사진=한·중수교 3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

공자는 "황하가 일만 번을 굽이쳐 흘러도 반드시 동쪽으로 향한다(黃河其萬折也必東)"고 했다. 이를 줄여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고 한다. 만사는 난관 속에서도 역사의 흐름을 이루고 굽이치며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필자는 '만절필동'이라는 명언을 내 평생 가슴에 새기고 있다.
 
한·중 관계도 황하처럼 굽이치며 30년의 세월을 흘러오고 있다. 최근의 한·중 관계를 보면서 '만절필동'의 뜻을 다시 꺼내어본다. 미시적으로는 작금의 상황이 ‘디커플링’으로 향하는 것 같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결국 한·중 양국의 관계는 기존의 양적 발전에서 질적 발전으로 점차 성숙해지는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미국 주도의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한·중·일 공동의 동북아 지역평화의 두 굴레 속에서 우리의 평화와 국익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미·중 양쪽 다 끌어안는 외교를 지켜나가야 한다. 중국을 중시했던 이유도 미·중 양자택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만절필동’의 길을 지키기 위함이다.

필자는 정치인으로서 의회 외교를 통해 한·중 양국의 이견을 좁히고자 했다. 필자는 2005년 9월 열린우리당 의장으로서, 2019년 5월 대한민국 국회의장으로서 공식 방중한 것도 이런 의회 외교의 일환이었다.
 
◆2005년 9월 열린우리당 의장으로서 방중
 
2005년 9월 22일부터 24일까지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중국 베이징에 방문했다.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으로서 중국 공산당의 초청을 받아 베이징 땅을 밟았다. 필자는 베이징 조어대에서 당시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선전부장과 함께 한국 열린우리당-중국 공산당 간의 합의각서를 교환했다. 상이한 정치체제에서 의회외교의 공간을 확장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다.
 
23일, 중국인민대회당에서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의 환대를 받았다. 중국은 당시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서 9·19공동성명 타결을 위해 노력해주었다. 필자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감사의 뜻을 후진타오 국가주석에게 전달했고,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해 계속 협력하자는 원칙을 제시했다.
 
돌이켜보면, 2005년 그 시기가 한·중 관계에 있어 황금기였다. 필자의 방중 일정은 환대의 연속이었다. 한·중 정당교류 확대, 한반도 이슈 진전, 동북아 지역협력도 모두 순조로울 것만 같았다. 사건은 쌓이고 시간은 흐르며 역사라는 흐름은 굽이치고 굽이쳤다. 그 간에 난제들은 산적했지만 한·중 관계는 만절필동하고 있었다.
 
◆2019년 5월 대한민국 국회의장으로서 방중
 
2019년 5월 6일부터 8일까지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중국 베이징에 방문했다. 필자는 국회의장으로서 중국에 공식 방문했다. 이번 일정은 개인적으로 쉽지 않았다. 심혈관계 긴급시술을 받아 정상의 컨디션이 아니었지만, 중국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방중을 강행했다.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 당시 대화 나눴던 것이 기억난다. 중국 서열 3위인 리잔수 위원장은 좋지 않은 상태로 방중한 필자에게 ‘고맙다’, ‘감동이다’라는 말로 환대의 말을 덧붙였다. 필자는 현재의 시점이 중요해서 왔다는 것을 강조하며 한·중 의회외교의 복구,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의 중국 역할, 사드문제 해결, 미세먼지 분야에 대해 일일이 제안 및 논의했다.
 
2019년의 방중일정은 2005년 때와 비교해 어려움이 많았다. 베이징 정계의 공기가 달라졌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많은 난관 속에서도 국회의장으로서 리잔수 위원장과의 회담을 통한 의회외교를 진행하며 협력의 공간을 창출해냈다.
 
2005년 열린우리당 의장, 2019년 대한민국 국회의장으로서 중국에 공식방문해 의회외교를 전개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필자와 중국의 관계를 설명해보았다.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모든 관계에서의 핵심은 결국 ‘신뢰’라는 것이다. 신뢰는 결국 만절필동의 중요한 동력이다. 몇 개의 지엽적인 사건에 매몰되지 말고 서로 신뢰하며 한·중 교류의 역사적 흐름을 이어나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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