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통령 집무실 있는 용산서 번호도 안보고 버스 탄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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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래 기자
입력 2022-07-26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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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택시대란...어젯밤도 길거리서 1시간여 발 동동

  • 코로나19에 떠난 택시기사, 윤 정부에 숙제 남겨

 

정부가 지난 4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제하면서 심야에 택시 잡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사진=연합뉴스]


“회식이나 지인들과 술자리가 길어지면 불안하다. 을지로에서 심야에 택시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한번은 사당동까지 택시비로 5만원을 주겠다고 해 겨우 집에 간 적도 있다.”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한 대기업에 근무하는 한모씨(27·여)는 당시 ‘카카오T’ 택시 호출을 5분 간격으로 해봤지만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심지어 일반 택시보다 비싼 ‘카카오T 블랙’을 호출했음에도 실패했다. 길거리에서 1시간가량 발을 굴렀던 한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예약’ 등을 켜고 갓길에 서 있는 택시 기사에게 을지로에서 사당동까지 5만원을 주겠다고 흥정해 겨우 집에 갈 수 있었다.
 
“강남은 택시 잡기 전쟁터의 상징, 심야에는 경기도 주민 아니면 택시 잡지도 못한다.”

강남 역시 을지로와 마찬가지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첫날인 지난 4월 18일 밤 테헤란로에 위치한 한 기업에서 근무하는 이모씨(36)는 강남역 근처에서 친구들과 술자리를 한 후 30분 넘게 걸어서 다시 회사로 돌아와 사무실에서 잠을 잤다. 자정이 넘어 자리는 파했는데 택시가 도저히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택시대란···어젯밤도 길거리서 1시간여 발 동동
 
을지로와 강남뿐만이 아니다. 대통령 집무실과 국방부가 있는 용산 일대도 심야에 택시대란이 펼쳐진다. 기자 역시 택시대란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지난 25일 국방부 후문 인근인 지하철 신용산역 주변은 자정이 가까워지자 ‘빈 차’ 표시등을 켠 택시를 볼 수 없었다.

여러 차례 카카오T를 통해 택시 호출을 시도했으나 신용산역에서 마포구 합정동까지 운행하는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일반 택시가 아닌 가격이 비싼 블랙택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지하철은 운행을 멈춘 상황. 하염없이 택시를 기다리던 중 버스 한 대가 눈앞에서 휙 지나갔다. 문득 버스도 곧 끊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도 타지 않으면 집에 못 갈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곧바로 중앙차로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한 뒤 처음으로 정류장에 도착한 파란색 버스를 번호도 보지 않고 탔다. 무작정 오른 버스는 당연히 목적지로 가지 않았다. 버스 운전기사에게 “노선에 있는 지하철역 중에 택시가 가장 잘 잡히는 곳이 어디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버스 승객이 뜬금없이 택시 타는 곳을 물어 황당할 만도 한데 버스 기사는 익숙한 듯이 “어디를 가느냐”고 무심히 반문했다. “마포구 합정동”이라고 말하자 버스 기사는 “몇 정류장 지나면 상도동”이라며 “그나마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조언해 줬다. 그렇게 상도동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기자는 다행히 얼마 기다리지 않고 손님을 내려주는 택시를 잡아 집에 갈 수 있었다. 
 
코로나19에 떠난 택시기사···"법인택시 운행률 30% 불과" 
 
정부가 지난 4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제하면서 심야에 택시 잡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주원인은 공급 부족이다. 지난 2년간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에 따라 승객이 줄고 수입이 급감하면서 많은 택시기사들이 업계를 떠났다. 그런데 택시총량제 등으로 개인택시 면허 값이 많이 오르면서 신규 기사 유입은 원활하지 못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내 법인택시 기사는 지난 3월 기준 2만640명으로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20년 1월 2만9922명 대비 31% 감소했다. 법인택시 가동률도 지난해 1~9월 기준 34.47%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1600여 개 법인택시 대표를 맡고 있는 박복규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회장은 “코로나19 2년과 LPG 가격 폭등, 현실과 동떨어진 택시요금까지 삼중고를 겪고 있다”며 “전국 법인 회원사들 평균을 내보면 현재 100대 중 30대 정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택시대란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국토교통부는 심야시간대 택시대란을 해소하기 위해 ‘플랫폼 택시 탄력요금제’ 도입을 예고했다. 탄력요금제는 택시 수급에 따라 요금 할증률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요금제다.
 
국토부는 탄력요금제 도입으로 공급 증가를 우선 유도한 뒤 효과가 미미하면 강제 배차제 도입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강제 배차제는 목적지에 상관없이 승객을 배차하는 것을 말한다. 심야 시간대 장거리 승객만 골라 태우는 행태를 막기 위한 방편이다. 여기에 개인택시 3부제(2일 근무 후 1일 휴무)를 전면 완화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택시업계 "요금 현실화" vs 정부 "이용자가 납득해야"

관건은 정부와 택시업계 간 이견 조율이다. 강신표 전국택시노조연맹 위원장은 “국토부가 제시한 탄력요금제가 임시방편은 될 수 있겠지만 승차난 해소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택시요금 현실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택시요금과 근무 형태를 정부가 통제하지 말고 시장에 자율적으로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택시업계는 할증률 상한을 일반 요금 대비 두 배 정도로 판단하고 있다.
 
반면 국토부는 할증률에 상한을 두겠다는 방침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본인 소셜미디어에 “지난주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강남역 사거리 인근에서 택시를 잡는 게 하늘의 별 따기임을 실감했다”며 “30분 넘게 택시를 못 잡아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시민이 한두 분이 아니었다”고 심야 택시대란에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할증률) 두 배는 너무 많다고 보고 있다”며 “이용자들이 수용하고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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