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걸린 '점수보상형' 게임…갈길 먼 국내 P2E 합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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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정 기자
입력 2022-06-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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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에 시범용으로 마련된 '점수보상형 아케이드 게임' 운영장 입구 [사진=최은정 기자]

정부가 오는 2023년까지 '점수보상형 아케이드(리뎀션) 게임' 시설을 시범 운영한다. 이 일환으로 지난달 말 서울 은평구에 첫 사업장이 문을 열었다. 최근 마련된 부산 중구 게임장에 이어 서울과 대구 등의 추가 지역에 총 4개 시범 사업장이 운영될 예정이다. 리뎀션은 오프라인에서 실물 기기로 게임해 쌓은 포인트를 경품으로 교환하는 방식을 말한다.

국내 아케이드 게임 시장은 지난 2004년 발생한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로 급격히 얼어붙었다. 정부가 사행성 우려로 게임 결과물을 현금으로 바꾸지 못하도록 하는 게임산업진흥법을 만들면서다. 사용자가 바다이야기 경품을 돈으로 교환하던 관행을 막기 위한 의도였지만, 이 때문에 건전한 아케이드 게임장에서도 경품 제공이 어려워졌다. 아케이드 게임이 한창 성장세를 보이던 당시 미국·유럽·일본·중국 등 주요 국가들과는 달리 국내는 정반대 걸음을 걸은 셈이다.

문제는 이같은 역행 흐름이 온라인 게임에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암호화폐 기반 '돈버는 게임(P2E)'이 대표 사례다. P2E는 게임 재화를 암호화폐로 바꿔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국내에선 서비스가 불가하다. 게임업체들은 P2E가 금지된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국가 대상으로만 서비스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PC·모바일 온라인 플랫폼 위주의 디지털 분야 게임과 오프라인 아케이드 게임은 서로 다른 산업으로 인식한다"면서도 "다만 게임법에서는 이 둘을 명확하게 나누고 있지 않다. 디지털 게임업계에 P2E 등의 사행성 우려가 계속해서 제기되는 것은 바다이야기의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서울 은평구 '짱구오락실' 건물 1층에서 리뎀션 게임을 즐기고 있는 사용자들 [사진=최은정 기자]

◆ 리뎀션 게임 부활할까…문체부, 게임 시스템 표준화도 계획

해외에선 게임시설을 비롯해 식당가와 놀이공원 등에서 리뎀션 게임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해당 게임과 스포츠, 식음료(F&B)·식당 등이 결합된 '패밀리 엔터테인먼트 센터(FEC)' 형태 사업이 활성화했다.

1982년 설립된 미 대표 운영사 데이브 앤 버스터즈 엔터테인먼트(이하 D&B)는 올 4월 가족 오락 서비스 업체인 '메인 이벤트(Main Event)'를 8억3500만 달러(약 1조500억원)에 인수하며 회사 규모를 키웠다. 현재까지 미국 텍사스·뉴욕, 캐나다 미시소거 등 지역에 총 145개 FEC 시설을 두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아케이드 게임은 PC·모바일 게임 대두로 성장이 둔화되는 추세다. 하지만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한 데다 가상현실(VR) 등 신기술과 결합해 시너지가 예상되는 만큼 성장세가 기대된다. 아직까지 사업이 초기 단계인 아시아태평양 등 지역을 새로 공략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테크나비오에 따르면, 전 세계 아케이드 게임 시장 규모는 올해부터 오는 2025년까지 16억5000만 달러(약 2조원) 증가한다. 같은 기간 연평균성장률(CAGR)은 1.74% 정도다.

우리 정부는 뒤늦게 작년부터 관련 대응에 나섰다. 주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4개 시범 게임사업장 관리와 더불어 연구용역 사업을 통해 해외 주요 사례를 연구할 방침이다. 현금이 아닌 카드 포인트제 기반의 운영 시스템을 표준화하고, 관련 데이터를 지속 모니터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게임장 내 불법적인 행위나 운영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하겠다는 목표다.

문체부 관계자는 "가족 위주의 놀이 공간을 목표로 게임장의 효과성을 조금씩 입증해 가면서 불필요한 규제를 하나씩 덜어내려 한다"며 "관련 제도 개선과 제도권 도입 등을 위해 연구용역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시범 사업장 '짱구오락실' 방문해보니…관련 산업 활성화 기대

지난 4일 주말을 맞아 아주경제는 서울 은평구에 시범 운영 중인 점수보상형 아케이드 게임장 '짱구오락실'을 방문했다. 건물 1층에 120평(약 400㎡) 규모로 마련된 게임장에는 농구공 넣기, 고리 던지기, 사격 등의 총 35대 게임 기기가 설치돼 있다.

안내 데스크에서 포인트 적립 겸 현금 충전 카드를 발급받았다. 일반 신용카드와 같은 크기다. 사용자는 게임을 시작할 때마다 이 카드를 게임기의 카드리더기에 갖다 대면 된다. 게임 플레이에 필요한 현금이 차감되는 동시에 플레이를 통해 쌓은 포인트가 별도로 적립된다. 사용자는 한 게임당 평균 1000원을 지불해야 하며, 10~100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다.
 

한 사용자가 지난 4일 서울 은평구 짱구오락실에서 경품을 고르고 있다. [사진=최은정 기자]

포인트가 어느정도 쌓이면 이를 경품으로 교환할 수 있다. 국내 법상 1만원 이상 경품 제공은 금지돼 있지만, 정부가 이번 시범 사업을 통해 일정 기간 동안 규제를 완화했다. 이에 따라 짱구오락실에서는 고기 굽는 그릴, 믹서기, 족욕기, 머리 드라이기 등의 생활용품부터 드론, 퀵보드, 레고 등 오락 물품까지 게임 포인트와 바꿀 수 있다. 최소 300~2만 포인트까지 교환 물품은 다양하다.

현재는 수익성보다 투자 개념으로 사업장을 운영 중이다. 짱구오락실을 운영하는 ㈜영배의 이달수 총괄본부장은 "현재로선 수익을 논할 단계는 아니다. 소비자들에게 이 공간을 널리 알리고 사용성을 확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 홍보 등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 등 국가에서 아케이드 게임은 전체 게임 시장의 18% 이상 비중을 차지한다. 나머지는 PC·온라인·콘솔 게임으로 이뤄져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이용자가 지난 2020년 아케이드 게임을 이용한 비율은 10%로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모바일 게임(91.1%)은 91.1%로 이용률 1위를 기록했으며, 뒤이어 PC 게임(59.1%), 콘솔 게임(20.8%) 등 순이었다.

이 본부장은 국내 엔터테인먼트 시설이 결국 해외 FEC 모델로 가야 한다고 봤다. 그는 "국내 게임 센터가 필연적으로 가야 할 방향이 FEC다. 게임 산업을 위해서라도 빨리 정착해야 된다"고 했다. 아케이드 게임장이 보편화하면 철물 제조사 등 연관 국내 업체들과 상생할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국내형 복합문화공간을 만드는 것이 영배의 목표다. 리뎀션 게임장과 같은 건물에 있는 당구장, 코인 노래방, PC방에서도 포인트 카드제를 활용 가능하도록 연계하는 식이다. F&B 사업자와 협력을 위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이 본부장은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시범 사업기간을 통해) 보완해야 할 부분은 향후 완료할 예정"이라며 "단순히 게임장이 아닌, 패밀리 엔터테인먼트 센터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 해외에선 P2E 붐인데국내 합법화는 언제

리뎀션 게임장이 시범 운영되기까지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시적으로나마 규제가 풀려 시장 활성화 기대감이 높지만, 다소 뒤늦은 감이 있는 건 사실이다.

미래 먹거리로 꼽힌 P2E도 같은 과정을 밟지 않을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현재 중국과 한국을 제외한 해외 국가에서 P2E 서비스가 허용되고 있다. 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 등의 3N 게임사들과 중소·중견업체들은 모두 관련 서비스에 속도를 내는 상황.

이미 일부 국내 사용자들은 해외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P2E를 즐기고 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과거에 사행성 게임을 규제한 이유는 사회적 부작용 등으로 인한 것이었지, P2E를 염두에 둔 게 아니다. P2E는 성장 가능성이 분명히 있는 분야다. 글로벌 동향에 맞추면서도 국내 상황에 맞는 제도 개선이 필요해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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