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한국도 국격에 걸맞은 '식량 유전자원 다양성 보존'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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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택윤 농촌진흥청 기술협력국장·글로벌작물다양성재단 기부위원회 의장
입력 2022-05-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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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택윤 농촌진흥청 기술협력국장·글로벌작물다양성재단 기부위원회 의장 [사진=농촌진흥청]


평소처럼 무심하게 밥과 김치를 먹다가 문득 우리 민족 주식인 쌀·배추·고추 원산지에 관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늘 먹어 오면서 물과 공기처럼 주변에 있기에 잘 몰랐지만 사실 쌀과 배추, 고추 원산지는 우리 땅이 아니다.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인 벼는 청동기 이전에 도입돼 3000년 이상 우리 민족 주식으로 이용되고 있다.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인 배추는 13세기에, 중미가 원산지인 고추는 임진왜란 전후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어쩌면 우리는 쌀·배추·고추 원산지 토착민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빚이 있다면 국제 사회 일원으로서 그 빚에 대한 책무도 생각해야 한다.

국제 사회는 인류 공동 자산인 생물자원 보존과 활용을 위한 각별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1993년 작물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다양성 보존과 활용에 관한 국제적 규범을 마련하기 위한 '생물다양성협약'을 맺었다. 이후 2004년 인류 식량안보와 직결된 유전자원 보존과 활용에 관한 특별 규범인 '식량농업유전자원국제조약'을 체결했다.

이들 협약에 따라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와 국제농업연구기관은 식량 유전자원 보존과 활용 강화를 위해 2004년 '글로벌작물다양성재단(Crop Trust·크롭 트러스트)'을 설립하고 특별기금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이 재단은 전 세계 작물의 다양성 보존과 활용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인류 미래를 위해 노르웨이의 얼어붙은 땅 지하에 세운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에 전 세계 생물자원을 안전하게 보존하면서, 국제농업연구기관이 보유한 식량 유전자원 활용을 위한 연구 지원과 유전자원의 정보 공유에 이바지하고 있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스발바르 종자저장고에는 65개국에서 의뢰한 98만 자원이 수십 년 동안 장기 보존되고 있다. 우리나라 유전자원도 2만6880개가 있고, 유전자원도 나란히 보존되고 있다. 최근 재단은 우크라이나 유전자원이 전쟁으로 소실 위험이 커지자 긴급 이송 저장을 지원하기도 했다.

또 다른 중요 활동은 국제농업연구기관이 보유한 식량 유전자원 활용을 위한 연구 지원과 유전자원의 정보 관리이다.

크롭 트러스트는 약 5000억원 규모 기금을 회원국과 기관 기부로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부액은 2017년 5억원으로 0.1%에 불과하다. 국가 경제력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2021년 재단 요청으로 우리나라 전문가가 재단 기부위원회 의장을 맡게 되면서 그 역할이 커졌다.

국제 사회 기부를 유도하려면 우리가 앞장서서 기부 규모를 확대하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이런 노력은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육성한 작물 품종의 60% 이상을 국외 자원을 활용해 왔을 정도로 주요한 자원 이용국이다. 이제는 국제 사회 공동의 재산인 생물자원 활용에 대한 책무를 고민해야 할 때다.
 
지난 22일은 2000년 국제연합(유엔)이 제정한 '세계 생물 다양성의 날'이었다. 그동안 전 세계 다양한 유전자원 활용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글로벌 농업생물 다양성 보존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더 큰 관심과 투자의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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