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뭐할까] 한국적 재료에 불어넣은 생명력...이승택 개인전 '(언)바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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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민 기자
입력 2022-05-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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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묶기(bind)' 연작 등 다양한 변주 담긴 작품...7월 3일까지 갤러리현대

이승택 작가 [사진=갤러리현대]


“1950년~60년대 분위기는 전통도 중요하지만 빨리 서구를 쫓아가 현대화하자는 분위기가 사회에 퍼져 있었다. 이승택 선생님은 독자적으로 전통문화와 민중적인 것에 관심을 뒀다.”
 
미술사학자 조수진의 설명처럼 이승택 화백은 남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그만의 독특한 작품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갤러리현대는 이승택의 개인전 ‘(언)바운드-(Un)Bound’를 오는 7월 3일까지 개최한다. 2020년 작가의 방대한 작품 세계를 재조명한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대규모 회고전 ‘이승택-거꾸로, 비미술’을 마치고, 갤러리현대가 준비한 작가의 네 번째 개인전이다.
 
지난 25일 개막한 이번 전시는 작가의 개념을 물질적으로 시각화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노끈이 주요 매체로 등장하는 ‘묶기(bind)’ 연작, 노끈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매어진 흔적을 간직한 다채로운 작품, 묶기의 개념이 한없이 자유로워진(unbound) 캔버스 작품에 집중해서 기획됐다.
 
갤러리현대는 “이번 전시를 통해 1960~70년대 시대 상황 속에서 미술로 세상을 거꾸로 보고, 거꾸로 사고하고, 거꾸로 살아내며 한국 현대미술의 새 지평을 열고자 했던 이승택 작가의 야심 찬 비전을 엿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승택 개인전 '(Un)Bound' 전시 전경 [사진=갤러리현대]


이 화백은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지속해서 묶는 행위가 강조된 연작을 선보이고 있다.
 
이 작가는 2020년 8월 전기 기획자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묶은 물리적인 힘의 자국을 남기는 일은 반전의 트릭을 즐겨 쓰는 내게 유용한 전략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묶기’라는 행위는 재료의 물성에 대한 착시를 일으키며 생명력에 대한 환영을 불러오는 효과로 연결되어 점점 더 이 작업 과정에 몰두하게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변화해가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묶기’ 작품은 특별하다.
 
이승택 작가는 1932년 함경남도 고원에서 태어났다. 홍익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는 1964년에 전위적 조형성을 추구한 ‘원형회’에 합류하며 조각전의 형식을 혁신한다.
 
1960년대에 이승택은 남다른 크기의 작품을 바닥에 놓거나 벽과 천장에 매다는 형식을 택한 점에서 한국 설치 미술의 기원으로 평가 받기도 한다.
 
이후 1970~80년대에는 일상의 오브제를 비롯한 다양한 재료와 형태의 ‘묶음’, ‘해체’ 시리즈 작품으로 꾸준히 전시에 초대된다. 기성 미술에 대한 작가의 끊임없는 도전과 예술 실험은 1980년에 ‘비조각’이라는 개념으로 정립되고 연기, 바람, 불, 물 등 비물질 재료의 시각화 작업은 가속화된다.  

이승택 '매어진 돌', 1989 [사진=갤러리현대]


그의 작품에서 평범한 돌도 특별해진다. 미대 재학 시절, 작가는 덕수궁 미술관에서 우연히 보게 된 고드랫돌에서 영감을 얻어 돌멩이 가운데를 움푹하게 쪼아서 각목에 노끈으로 묶어 매달아 집 한쪽에 걸어 두게 됐다.
 
딱딱한 돌멩이들이 물렁물렁해 보이는 인상을 개념적으로 접근해 자신의 작품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겠다 싶어 짬이 날 때마다 여러 색깔과 모양의 강 돌을 깎아 뒀다고 한다. 이를 짧은 한 개짜리 각목에도 메어 보고, 두 개를 이어서 매어 보는 등 다양한 형태로 실험하며 ‘물렁물렁한 돌’ 시리즈로 발전시켜 나가게 된다. 항아리 등 한국적인 재료에 아이 같은 상상력을 더해 서구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그의 작품에는 시대상이 담겨있다. 1970년대 머리카락은 한국의 주요 수출품으로 귀하게 여겨졌었다. 가발 수출 산업이 쇠락하면서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 1980년대 초 어느 날, 작가는 “머리카락 파세요”에서 “머리카락 사세요”를 외치는 행상으로부터 한 보따리 머리카락을 구매한다. 이렇게 작가의 수중에 들어 온 한국인의 검은 머리카락을 사용하여 ‘춤’, ‘모(毛) 서예’, ‘털 난 캔버스’로 이어지는 낯선 회화 연작을 완성한다. 작품의 역동성이 인상적이다.
 
2009년 백남준아트센터 미술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재평가 받기 시작한 이승택 화백은 국립현대미술관(2020), 런던 화이트 큐브 갤러리(2018), 뉴욕 레비고비 갤러리(2017), 갤러리현대(2015, 2014) 등 국내외 주요 기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그의 작품은 시드니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 모던, 구겐하임 아부다비, 홍콩 M+,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소마미술관 등 세계의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는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승택 회고전이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면 이번에는 주제를 잡아서 집중하고 싶었다. 작가님과 차근차근 함께하는 저희의 방향성을 보여 드리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승택 '무제', 2018 [사진=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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