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언론, 習 부자 이야기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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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중앙방송총국(CMG) -
입력 2022-05-2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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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중앙방송총국(CMG) 보도

"부친은 늙은 황소처럼 중국 인민을 위해 묵묵히 일해왔습니다. 이는 나를 격려해줬습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부친의 생신을 축하하는 서한에서 그의 부친 시중쉰(習仲勛)을 이렇게 묘사했다고 중국 중앙방송총국(CMG)은 24일 보도했다.

시 주석은 "아버지로부터 많은 고귀한 품성을 본받고 싶다"고 하면서 그중에서도 '나라 사랑'을 특히나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시중쉰. 1946년 중국 산시성 북부. [사진=CMG]

CMG에 따르면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은 늘 자신은 농민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시중쉰의 영향으로 시진핑도 자신을 '황토의 아들'이라고 피력해왔다. 

1969년 시진핑은 산시성 량자허(梁家河)로 이사갔다. 산시성에서 지식청년, 농민으로 지낸 2400여일 동안 그는 황토고원의 순박한 농민들과 함께 지내면서 현지인들과 깊은 정을 쌓았고 중국의 농촌이 어떠한지, 서민들의 희로애락이 무엇인지, 중국의 기본 국정이 무엇인지를 깊이 알게 되었다고 CMG가 전했다. '인민에게서 비롯돼 인민 속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시진핑 부자의 두 세대 공산당인의 변치 않는 초심을 보여준다고 했다. 

CMG는 시중쉰의 업적을 나열하기도 했다. 지난 1943년 시중쉰은 수이더 지방위원회 당서기로 취임한 후 곧바로 '52만 대중을 위한 봉사'를 제기하면서 이를 실천하기 위해 솔선수범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시중쉰은 각급 간부에 대중을 위해 생각하고 실질적인 일을 할 것을 요구했다.

시중쉰이 광둥성 개혁개방을 이끌기도 했다고 CMG가 짚었다. 시중쉰은 광둥성에서 적극적으로 국유기업 개혁의 길을 모색했으며 기업의 자주권을 늘리고 기업의 생산효율을 높였다.

또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50주년 기념행사 때 시중쉰은 천안문 성루에서 축제를 관람하면서 "우리는 영원히 강산이 바로 인민이고 인민이 바로 강산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었는데 시 주석도 부친을 본받아 "강산이 바로 인민이고 인민이 바로 강산"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었다고 CMG가 전했다.  

 

2021년 9월 14일, 수이더(绥德)지방위원회 옛터를 찾은 시진핑.[사진=C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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