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노고단까지 가는 길은 완만한 편이다. [사진=기수정 기자]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워진다는 '지리산'에 올랐다. 다음에 이곳을 찾으면 주봉인 '천왕봉'에 오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노고단'으로 향했다. 따스한 봄 기운이 온몸에 휘감기는 노고단 정상에서 싱그러운 봄 내음을 가슴 깊이 머금었다. 마스크를 벗고 크게 숨을 들이마신 게 얼마 만이던가. 청량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드니 그간의 시름이 단번에 녹아내렸다. 

◆생태복원 통해 훼손의 아픔 극복한 노고단

'노고단'은 훼손과 복원의 역사를 품은 곳이다. 아픔,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까지 오랜 세월을 견뎌야만 했다. 

1925년부터 외국인 선교사들은 노고단의 서늘한 기후와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돼 휴양촌을 지었다. 풍토병을 피하고 휴양을 즐기기 위함이었다. 산자락까지 자재를 나르는 것은 마을 주민이 도왔다. 자재를 한 번 나르면 쌀 한 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한때 52동이나 들어서며 휴양촌을 형성했고 호텔과 공회당, 교회당을 비롯해 발전소, 영화관, 간이 풀장 등 편의시설까지 두루 조성됐지만 1948년 여순반란 사건이 발생해 이곳이 격전지가 되면서 거의 모든 시설이 파괴됐다.

이후 1950년 6·25전쟁을 거치면서 빨치산과 국군토벌대 간 격전으로 또다시 노고단은 초토화됐다. 주변 수목도 그때 모두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광복 후에는 완만한 경사지가 스키 슬로프로 활용되기도 했다. 전국 스키대회도 이곳에서 열렸다. 

어디 그뿐인가. 1960~1970년대에는 벌목과 희귀 수목 반출이 성행해 빼곡히 자리했던 주목과 구상나무 군락이 사라져버렸고, 1980년대에는 등산 인구와 야영객이 늘며 노고단은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든 황폐지로 전락하며 몸살을 앓았다. 

환경부는 1989년 노고단에서 반야봉에 이르는 지역 20.2㎢를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심하게 훼손된 노고단의 자연 복원은 기대할 수 없었다.

1991년 국립공원공단은 노고단에 대해 탐방객 출입 금지령을 내렸다. 그리고 생태복원사업에 돌입했다.

노고단 생태복원사업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고산 지역 훼손지 복원사업이었다.

공단은 노고단 주변에 다시 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먼저 토질을 강화하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비가 많이 오면 토양이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돌과 자갈, 모래를 깔고 개량한 흙을 그 위에 또 한 번 덮어주었다. 그다음엔 씨앗을 뿌리고 야생풀을 이식한 뒤 볏짚이나 황마그물을 씌웠다. 이 밖에 노고단 야영장도 폐쇄했다. 

기상 여건으로 인해 토양 안정과 식생 활착이 지연되는 등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결국 공단은 생태계 복원에 성공했다. 그리고 2001년 8월부로 노고단 탐방 예약제를 도입해 탐방 인원을 적정 인원으로 제한해 운영 중이다.

외면이든 내면이든 생채기가 깊으면 회복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리지만 회복 후에는 한층 단단해진다고 했던가. 극심한 고통을 딛고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돌아온 지리산의 모습도 무척 단단한 듯 느껴졌다. 
 

날이 화창할 때는 무넹기에서 화엄사 계곡 물줄기가 한눈에 보인다. [사진=기수정 기자]

◆지리산 노고단 생태탐방에 나서다 

사실 노고단에 오르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그곳이 지닌 아픈 역사를 보듬기 위해서였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지리산이 품은 봉우리 정상에 좀 더 수월하게 닿기 위함이었다. 집 앞에 자리한 '언덕' 수준인 산조차 때론 버겁게 느껴지는 이도 해발고도 1500m를 웃도는 봉우리에 쉽게 닿을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성삼재 주차장에서 시작해 노고단 고개로 향했다. 노고단 코스는 노고단 정상에 이르는 '가장 완만한' 길이다. 등산이라기보다는 산책에 가깝다. 특히 성삼재 주차장까지 차로 이동해 주차장에서부터 노고단 정상까지 편도 2.5㎞ 길을 그저 천천히 걸으면 된다. 

주차장에 내려 노고단 고개까지 편도 2.5㎞. 길게 펼쳐진 데크길은 퍽 완만했지만 오르면 오를수록 눈에 들어오는 장쾌한 풍광,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희귀 야생식물을 눈과 마음에 오롯이 담을 수 있었기에 지루하진 않았다. 

사실 노고단은 야생화의 보고다. 고산지대의 화원이라고도 불린다. 전국 산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종들이지만 생태계 복원 작업이 없었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꽃들이니 마주치는 풀잎, 꽃망울 하나하나가 소중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노고단 부근 계곡물 일부를 화엄사 계곡으로 돌려 '물을 넘긴다'는 뜻의 이름이 붙은 '무넹기'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천천히 걸었다. 노고단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 자리한 선교사 휴양촌 건물 일부가 산자락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곳에 자리한 건물 터와 벽면 일부가 퍽 생경했다. 

지리산 영봉 노고단에 선선한 바람이 스몄다. 높고 낮은 산봉우리 수십 개가 굽이굽이 이어지며 부드럽게 펼쳐내는 지리산 자락의 자태를 오롯이 눈과 마음에 담았다.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고 내일을 준비하는 순수한 자연 앞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지리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껏 느낄 수 있어 사시사철 많은 이의 발길이 닿는 이곳 노고단은 탐방 예약제로 운영된다. 운영 시간은 오전 5시부터 오후 5시까지며 마지막 입장은 오후 4시다. 예약 시 카카오 알림톡을 통해 입장 QR코드(정보 무늬)가 전송되는데, 이를 현장에서 인식한 후 입장하면 된다. 
 

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에서는 반달가슴곰이 활동하는 모습을 지척에서 관찰할 수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골라서 즐기는 지리산 탐방 프로그램

산자락마다 세월의 흔적들이 담긴 지리산은 반달가슴곰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들을 품어 키워낸다. 광대하게 펼쳐진 자연, 그 안에 무궁무진한 탐방 거리를 품은 지리산국립공원의 속살을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꼼꼼한 계획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저 지리산의 겉만 훑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럴 땐 국립공원공단이 운영하는 생태탐방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생태 복원에 성공한 공단은 탐방 프로그램 구축에 꽤 공을 들였다. 국립공원마다 생태탐방원을 조성하고 그 안에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기획했다.

공단은 지리산 국립공원을 찾은 여행객들이 자연과 교감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지리산생태탐방원은 무장애 디자인을 적용해 누구나 이용하기 편한 친환경 건축으로 조성됐다. 이곳에는 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 화엄사 등 지리산권 역사·문화·생태자원을 활용한 탐방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다. 

크게 △상시 생태관광 프로그램 △자연 속 힐링을 위한 기획 프로그램 △대상별 특성을 고려한 특화프로그램으로 구분된다.

공단 직원에게 설명을 들으며 천년고찰 화엄사를 탐방하고, 노고단과 사성암 등을 둘러보고, 환경성질환 환아 가족이나 직장인 스트레스 극복을 위한 특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다.

국립공원공단 종복원기술원에 있는 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은 아이가 있는 가족 단위 탐방객에게 인기다. 이곳은 멸종 위기종인 반달가슴곰 생태를 체험하는 곳으로, 매일 5회(오전 10시·11시, 오후 2시·3시·4시) 탐방 해설이 진행된다.

반달가슴곰 영상을 본 후 반달가슴곰이 사는 생태체험장으로 나가 반달가슴곰을 직접 보고, 반달가슴곰 생태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출입이 전면 금지된 선교사 휴양촌 터. [사진=기수정 기자]

 

노고단 정상. [사진=기수정 기자]

노고단 가는 길에 만난 쥐오줌풀. [사진=기수정 기자]

연분홍빛 철쭉. [사진=기수정 기자]

노고단 정상에 자리한 돌탑. [사진=기수정 기자]

지리산 노고단을 찾은 탐방객이 주변 경관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화엄사 대웅전. 지리산생태탐방원 프로그램 중에는 화엄사 탐방도 있다.[사진=기수정 기자]

화엄사 전경 [사진=기수정 기자]

노고단 정상까지 데크가 길게 이어져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노고단 정상까지 데크가 길게 이어져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꽃망울이 맺힌 할리아나 꽃사과 나무. [사진=기수정 기자]

 

호랑버들[사진=기수정 기자]

 

철쭉[사진=기수정 기자]

 

꽃을 피운 복주머니란. [사진=국립공원공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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