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물가가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경기 둔화 전망까지 확산하며 당국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말미암은 공급망 차질이 물가를 한 차례 끌어올린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발발하며 에너지와 식품을 중심으로 세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세)은 급등했다. 같은 이유로 경제 성장률 역시 둔화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유엔(UN) 산하 노동분야 전문국제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는 3월 세계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9.2% 상승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3월 기록한 3.7%에서 두 배 이상 뛰어오른 수치다. 세계 경제 정책을 좌우하는 미국도 인플레이션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 11일 미국 노동부는 4월 CPI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3% 급등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기록한 1981년 12월 이후 최고치 8.5% 상승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에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물가를 잡기 위해 단호한 긴축 기조를 이어나가고 있다. 앞서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제로 금리에서 벗어나 0.25%p 인상을 단행한 후, 이달 초에는 금리를 0.5%p 추가 인상하는 '빅 스텝'까지 밟았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금리 인상을 이어나갈 것이라고도 공표했다. 이에 13일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에서 시장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연방기금(FF) 금리 선물 시장에서 올해 12월 기준금리가 연말에 3.25∼3.50%까지 오를 확률을 52.4%로, 3.50~3.75%까지 도달할 확률을 35.7%로 집계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연준의 공격적인 긴축 정책의 시기가 좋지 않다며 우려하고 있다. 지난 2월 이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어지며 대외 불확실성에 경제 활동이 침체한 가운데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주장하며 봉쇄 조치를 시행하고 있어 경기 침체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전망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광범위하게 확산할 수 있다며 올해와 내년 세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3.6%로 전망했다. 1월 발표한 전망치에서 각각 0.8%p, 0.2%p 하락한 수준이다. 세계은행(WB) 역시 올해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4.1%에서 3.2%로 거의 1%p 하향 조정했다. 국제금융연구소(IIF)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2.2%에 그칠 것이라며 비관적인 전망을 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흐름 속에서 선제적인 금리 인상을 통해 대응해야 하는 신흥국들의 시름은 더욱 깊다. 대내외 불확실성 속에서 안전한 달러로 돈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해야 하지만, 급작스럽게 금리가 올라가면 코로나 이후 가까스로 회복한 경제를 다시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코로나 부양책을 위해 빌린 부채 상환 비용을 높일 수 있다는 것도 부담이다. 존 립스키 전 IMF 수석부총재는 타격을 입은 실물 경제와 긴축에 들어간 금융시장이 신흥국들의 부채 위기를 부를 수 있다며 "거대한 열차 사고가 다가오고 있다"고 블룸버그에 밝혔다.

그간 경기 침체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물가 상승을 부추기지 않는 '연착륙'에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해 온 파월 연준 의장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역시 시장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12일 파월 의장은 마켓플레이스와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을 연준의 목표치인 2% 수준까지 낮추는 것은 “약간의 고통”을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용시장과 경제에 타격을 입히지 않으며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달성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사진=EPA·연합뉴스]



그럼에도 파월 의장은 계속해서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긴축 정책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2%로 낮추는 과정에는 약간의 고통이 따르겠지만, 궁극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가 물가 상승에 대처하지 못해 높은 인플레이션이 경제에 뿌리를 내리게 되는 것”이라며 "경제가 예상대로 움직인다면 다음 두 회의에서 추가로 0.5%p 인상을 단행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내다봤다.

투자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연준의 긴축, 높은 인플레이션과 낮은 경제 성장률이 다시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장조사업체 코어데이터가 200명의 기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20%는 2008년보다 더 심각한 경제 위기가 나타날 것으로, 50%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밝혔다.

토비아스 애드리안 IMF 통화·자본시장부문 국장은 "코로나로 인한 금융 시장이 회복되려던 차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며 금융 시스템에 큰 스트레스를 줬다"며 "금융 위기가 돌아올 수 있다"고 CNBC와의 인터뷰에서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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