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기인] ⑧ 그래픽 제작 꿈꾸던 'SF 영화광', 메타버스에 눈뜨다…박진영 엔닷라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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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정 기자
입력 2022-05-0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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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전자·다음커뮤니케이션 등 거친 IT 전문가...입사 동기들과 엔닷라이트 설립

  • 메타버스 플랫폼 내 콘텐츠 제작 툴 제공...네이버·카카오 공동투자 유치로 성장 기대감↑

박진영 엔닷라이트 대표 [사진=엔닷라이트]

공상과학(SF) 영화에 푹 빠진 한 여학생은 영상 그래픽 제작자를 꿈꿨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2000년 초 생소했던 아주대학교 미디어학부(현 미디어학과)에 입학했다. 포스코 직원인 아버지를 따라 전남 광양에서 학창 시절 대부분을 지낸 그는 꿈을 펼치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코로나19 시기 그는 또 다른 영화 무대인 '메타버스'를 눈여겨봤다. 스크린이 아닌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도 3차원(3D) 그래픽이 쓰였다. 앞으로도 주요 콘텐츠는 3D로 생산될 것으로 보고, 보다 쉽게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다. 메타버스 콘텐츠 툴 개발사 엔닷라이트의 박진영 대표 얘기다.

박 대표는 엔닷라이트 창업 전 삼성전자 무선(스마트폰)사업부, 다음커뮤니케이션(카카오 전신) 사용자경험(UX)팀 등을 거쳤다. 삼성전자 입사 동기들과 함께 2020년 1월 엔닷라이트를 설립했다.
 

엔닷캐드 활용 예시 [사진=엔닷라이트]

앞서 엔닷라이트는 지난 1월 네이버 D2SF와 카카오인베스트먼트의 공동 투자를 유치하며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아주경제는 경기도 분당 네이버 제2사옥 '1784'에 입주한 엔닷라이트 사무실을 지난 6일 방문해 박 대표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아주대 미디어학부를 선택한 이유는?

"'스타워즈', '쥬라기공원' 등 공상과학 영화를 워낙 좋아한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방송부 소속이었는데, 점심·저녁 시간에 밥도 거르고 매일 친구들과 방송실에서 영화를 볼 정도였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아주대에서 겨울방학 캠프를 연다는 포스터를 봤다. 고교 3학년 올라가기 전에 꼭 다녀오고 싶어 별 생각 없이 캠프에 참여 신청을 했다.

캠프에서 미디어학부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아주대 미디어학부는 1998년도에 생긴 신생 과라 (고교 재학 시절) 당시 홍보를 많이 했던 상황이었고, 미디어학부를 졸업하면 컴퓨터로 '스타워즈' 같은 영화의 특수효과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 부분에 완전히 매료됐다. 미국 유명 그래픽 업체인 아이엘엠(ILM)에서 한국인 최초 디렉터로 계셨던 교수님이 캠프 특강을 진행하셨다. 해당 학부에 꼭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처음엔 학교에서 반대가 심했다. 국내 상위권 대학에 갈 성적으로 신생 과를 가겠다고 하니 담임선생님이 추천서를 안 써주려고 했다. 하지만 학교도 부모님도 결국 내 고집을 꺾진 못했다."

Q. 처음부터 컴퓨터를 다루는 데에 능통했나?

"사실 고등학생 때는 컴맹(컴퓨터+문맹,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타자도 칠 줄 몰랐다. 미디어학부 합격 통보를 받은 뒤 일대일 과외로 이메일 계정 만들기부터 배웠다.

아주대 02학번으로 입학해 웹디자인 등 주요 수업을 들으면서 웹페이지 제작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더니 실력이 확 늘었다. 밤새 잠도 안 자고 기숙사 방 안에서 컴퓨터와 씨름했다. 같이 살던 룸메이트 언니는 타자 소리가 시끄럽다고 싫어했던 기억이 난다.(웃음)

그렇게 한 1년 정도 하니까 신입생들 데스크톱을 고쳐주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물론 수학, 물리 등 분야 기본 수업도 열심히 들었다. 학과 선배들을 쫓아다니며 이것저것 묻고 듣는 과정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Q. 그래픽 디자인 공부를 계속할 수도 있었는데?

"대학 2학년 전공 강의 때 3D 모델링을 위한 디자인 툴인 '마야' 활용법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애니메이션 만화 등 제작 시 주로 쓰이는 PC 툴이었는데, 내겐 난도가 높았다. 특히 도트를 하나하나 찍어서 모델링하는 작업은 오래 걸릴뿐더러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재능 있는, 아티스트 기질이 있는 친구들은 벌써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내가 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느꼈다.

휴학계를 내고 방황(?) 아닌 방황을 좀 했다. 게임 업체 리자드 인터렉티브에서 인턴십 프로그램에 들어가 게임 기획도 해보고, 도소매 장사도 했다. 당시 국내 소셜미디어로 주로 쓰이던 싸이월드 있지 않나. 개인 미니룸에 필요한 콘텐츠를 만들어 판매하는 일도 해봤다. 사업자등록증도 있었다. 이런저런 경험을 해보니, 코딩을 할 줄 알아야 뭐든 길이 열릴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코딩은 대학 3학년 때 깨쳤다. 당시 학부에서 제공하는 코딩 학습 프로그램이 있었다. 용인 산속의 한 연수원에서 14명 인원이 한 학기 동안 코딩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하루에 한 시간 남짓 자면서 코딩에 매진했다."

Q. 엔닷라이트 설립 계기와 주력 사업은?

"창업 초기엔 3D 모델링 소프트웨어로 시작했다. 가정 내 종이 프린터를 3D 프린터가 대체한다는 전망이 나오던 시기였고, 건축·제조·설계·기계공학 등 전 산업 분야에서는 이미 3D 모델링이 활발히 쓰이고 있었다. 다만 국내 업체가 개발한 범용 프로그램이 없었다.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3D 모델링 소프트웨어를 제공하자는 목표로 사업을 준비했다.

여러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던 주력 사업을 바꿔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3D 프린터 시장이 예상만큼 활성화되지 않았던 탓이 크다. 이에 작년 5월 그간 사내 조사해오던 '메타버스'로 눈을 돌렸다.

기존 마야 등 전문가를 위한 툴이 아니라 어린아이도 디자인할 수 있도록 돕자는 데 중점을 뒀다.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가 운영하는 게임 제작 시스템 '로블록스 스튜디오'에 게임을 업로드하는 개발자 80%가 10대라는 조사결과도 참고했다.

엣닷라이트는 자체 개발한 3D 엔진을 기반으로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 솔루션 '엔닷캐드'를 서비스하고 있다."

Q. 엔닷라이트가 보는 '메타버스'란?

"메타버스는 하나의 산업 분야라기보다 인터넷, 모바일 같은 하나의 IT 패러다임이다. 그만큼 사용자로부터 생산되는 3D 콘텐츠의 적용·확산의 분위기가 IT 산업 전반에 스며들고 있고, 이 흐름을 최근 사업하면서 많이 느낀다.

콘텐츠 생산의 중심이 텍스트, 2D 중심에서 3D로 넘어갈 거고, 누구나 3D 콘텐츠를 기반으로 나를 표현하고 생각을 전달하는 시대가 온다. 이것이 메타버스의 핵심이다."

Q. 향후 사업 목표는?

"2~3년 뒤 메타버스 콘텐츠의 표준을 만드는 글로벌 선두 업체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다. 현재 해외투자자와 투자유치 관련 논의 중으로, 빠르면 6~7월 시리즈 투자를 오픈할 예정이다. 올해 말에는 미국 법인도 설립하려 한다.

또한 올 초 네이버 클로바 리더 출신의 최고기술책임자(CTO)와 삼성전자 출신 최고창의책임자(CCO) 등 국내 최고의 개발진들을 영입한 것에 이어, 내달 해외파 출신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최고운영책임자(COO)가 합류하기로 하면서 인적 재원도 확보했다."

Q. 개발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조언은?

"지식 습득이 빠른 개발자들이 인정받는 것 같다. 특히 IT분야는 기술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이 흐름을 잘 따라가야 한다. 기본에 충실한 개발자들이 이걸 잘한다.

무엇보다 수학 등 기초 학문을 잘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C언어 등의 원론적인 과목들도 비록 지루하고 재미없지만 나중에는 도움이 많이 될 거다. 컴퓨터 공학의 기본 학문을 잘 공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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