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 614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우리은행 직원 전 모씨가 6일 오전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은행권 내 ‘신뢰’라는 공든 탑이 또 한번 흔들리고 있다. 금융자산 규모 등에 있어서는 선진국을 향해가고 있는 현 시점에 수백억 대 횡령사건이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시중은행에서 발생한 것이다. 우리 모두를 더욱 충격에 빠트린 것은 실무자급 직원이 주도한 횡령 범죄가 첫 시도된 후 10년이 지나도록 해당 은행이나 금융당국, 회계기관 등 어느 누구도 이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의 주범인 은행 직원 전 모씨와 그의 동생, 또다른 공범(전 전산담당자)까지 구속·체포된 상태지만 사건의 전말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당장 빼돌린 그 많은 돈이 어디에 있는지, 은행이 이를 회수할 수 있을지부터가 '물음표'다. 이 사건이 드러나기 전까지 무려 4년여 간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해당 은행으로 출근하던 전 씨는 횡령한 600억원 중 500억원 상당을 파생상품과 선물에 투자했다 날렸다고 진술했으나 이를 온전히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불과 수 개월 전 자체적으로 내부통제체계를 강화해 금융사고를 막겠다고 나섰던 은행권 입장에서 이번 사건은 더욱 뼈아프다. 지난해 9월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협회는 금융당국에 "내부통제가 금융회사 자율규제인 점을 감안해 개선 방향 제시 등 원칙 중심으로 감독하고 내부통제를 유인하는 규제환경을 조성해줄 것을 제안한다"고 요청했다. 당국의 내부통제 감독 대신 자율규제 기능 강화를 통해 내부 단속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금융권의 이같은 요구를 두고 '고양이 앞 생선'이라는 비판 어린 시선이 적지 않았던 상황에서 우려가 곧 현실이 된 셈이다. 일각에선 작정하고 범행에 나선 사기범을 당해낼 재간은 없었을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지만 이를 시스템적으로 방지하도록 요구되는 것이 바로 금융기관의 내부통제라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번 사건만 하더라도 특정 직원이 한 업무를 오랜 기간 맡아온 데다 그에 대한 별다른 감시기능이 부재해 사건을 키운 측면이 있다. 

세간의 의구심은 이미 특정 은행을 넘어 여타 은행들로까지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신뢰'를 먹고사는 1금융권에서 어느 곳보다 철저하고 까다로울 것으로 여겨졌던 내부통제에 '구멍'이 확인된 만큼 타 금융회사들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지 말란 법이 없다는 측면에서다. 실제 지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5년간 국내 20개 은행에서 177건의 금융사고로 1540억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 탕' 크게 하고 몇 년만 몸으로 때우면 이득'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현행법체계 상 금융사기범에 대한 물방망이식 처벌도 문제지만 수 년간 이를 감지 못한 금융감독당국 역시 이번 사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금감원은 한정적 범위에서 검사를 하다보니 사건을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내부통제 사각지대를 미리 인지하고 현재 진행 중인 은행권 자체점검 등을 통해 사건을 조기에 발견했더라면, 일찌감치 은행원이길 포기한 전 씨의 고의적 범죄를 막고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정은보 금감원장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진상 파악 및 금융사의 내부통제 감독 강화, 제도개선과 더불어 "감독당국이 왜 횡령을 밝혀내지 못했는지도 함께 조사하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매번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반복됐던 금융권과 감독당국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과연 이번에는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까. 지켜볼 일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우리은행

실시간 인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페이지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