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정치인과 기득권층의 보호막 '검수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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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입력 2022-04-2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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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다소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10여 년 전,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주체는 누구였을까. 국민이 아닌 정치인, 구체적으로는 입법부 ‘국회의원’들이다. 추가하자면 대통령 친·인척, 재벌, 고위공직자 등 이른바 권력형 범죄 대상자들이다.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모든 대형 비리 사건 뒤에는 거대한 기득권층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국회 사법개혁특위는 2011년 6월 3일 ‘중수부’ 해체에 합의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는 중수부 폐지와 검사장 숫자를 줄였다. 그러면 ‘중수부’ 폐지로 우려했던 정치검찰 문제는 해소됐나. 또 기형적으로 비대해진 검찰 권력은 효율적으로 통제되고 있나.

아쉽게도 ‘중수부’ 폐지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문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검찰 권력은 막강하고 검찰은 ‘정치검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를 활용해 적폐수사를 진행했다. 검찰이란 잘 드는 칼로 이전 정권을 단죄하고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닮았다. 결국 ‘중수부’ 폐지로 우리 사회 기득권인 권력형 범죄자들만 웃을 일이 많아졌다. ‘중수부’를 옹호하는 게 아니다. 어떤 제도든 새로 만들거나 없앨 때 본질을 보자는 것이다. 결국 ‘중수부’ 폐지는 기득권층에게 거추장스러운 울타리를 제거해 준 셈이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된다.

다시 질문해보자. 일반인들이 평생 검사실에서 검사와 마주할 기회는 몇 번이나 있을까. 아마 대부분 성실한 사람들이라면 한 번도 없다. 검사는커녕 변호사조차 만날 일이 없어야 정상적인 삶이다. 검찰은 기득권을 향한 칼이다. 지난해 ‘검수완박’ 논란에서 이런 논리를 펴면 돌아오는 말이 있다. “당신은 검찰 수사를 안 받아봐서 그렇게 말한다.” 이 말에 담긴 함축적 의미를 모르는 게 아니다. 그만큼 검찰은 그동안 인권을 함부로 다뤘다. 수사 도중 굴욕감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극단적 선택한 경우도 허다하다. 지난주 전국 고검장 회의에서도 “국민 신뢰가 낮은 걸 반성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만큼 검찰은 무소불위였다.

시대 변화에 맞게 검찰 권력을 합리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지 오래다. 중수부 폐지는 이런 흐름 속에 단행됐다. 한데 최근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검수완박’은 전혀 결이 다른 문제다. 일부 의사들의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겠다며 병원을 폐쇄한다면, 또 일부 교사들의 자질을 문제 삼아 학교 문을 닫는다면 공감할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학생, 학부모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검수완박’ 또한 마찬가지다. 정치검찰을 견제하고, 수사 관행을 바로잡고, 비대한 검찰 권력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게 합리적이지 아예 기능을 못하게 무력화하는 건 다른 문제다.

여야가 지난주 합의한 ‘검수완박’ 중재안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검찰은 “애초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검수완박’을 시기만 늦췄을 뿐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는 본질은 그대로다”며 집단 반발하고 있다. 검찰총장과 고검장 총사퇴에 이어 검사장급으로 사퇴는 확산될 전망이다. 문홍성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중재안대로라면 4개월 뒤에는 산업자원부 블랙리스트,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을 비롯한 모든 권력형 사건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 거악이 판칠 수밖에 없는 중재안에 공감할 국민은 몇이나 될지 묻고 싶다”며 “국회에 형사사법제도개선특위를 설치해 폭넓은 의견 수렴과 합리적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론도 ‘정치적 야합’이라며 중재안에 대해 분노와 실망을 쏟아내고 있다.

중재안에 따르면 검찰에 직접 수사권이 있는 6대 범죄 중 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 참사 범죄는 4개월 유예한 뒤 없앤다. 또 부패‧경제는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하면 폐지하기로 했다. 이대로라면 오는 9월부터 검찰은 선거사범과 공직자 수사를 할 수 없다. 선거사범과 공직자 수사는 국회의원과 청와대 참모, 행정부 고위직을 대상으로 한다. 중재안이 ‘정치적 야합’이라는 비판을 듣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여야 국회의원이 한 목소리로 자신들에게 불편한 검찰 수사를 못하도록 족쇄를 채운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검찰 수사를 없앤다면 가장 박수 칠 집단은 바로 이들이다.

그런데 국민을 앞세워 눈을 흐리고 있다. 국민들이 정확히 봐야 할 지점이다.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선동이지 사법 개혁이 아니다. 국민 인권 보호와 검찰 견제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본질은 기득권층에 보호막을 씌운다는 점에서 오히려 분노해야 한다. ‘중수부’ 폐지에 이은 ‘검수완박’은 비대해진 ‘입법 권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지금도 ‘입법 권력’은 한국 사회 정점에 있다. 이들에 대한 마지막 견제장치라면 언론과 검찰이 유일하다. 그런데 언론 개혁과 검찰 개혁이란 명분 아래 언론과 검찰마저 자신들 입맛에 길들이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견제와 균형이 사라지면 독주와 부패가 싹트는 건 당연한 결과다.

혹자는 ‘검수완박’ 강행 처리를 위해 탈당한 민형배를 적벽대전에서 승리를 견인한 ‘황개’에 비유하기도 한다. 자신을 희생한 의인이라며 치켜세운다. 전형적인 진영논리이자 단견이다. 지지층 결집과 새 정부 출범 이후 사정 태풍을 차단하기 위한 노림수라는 비판에는 어떻게 설명할 건가. 자신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국민을 위하고 섬기는 ‘검수완박’인지 냉정하게 자문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검수완박’ 중재안은 정치권과 기득권층에는 선물이다. 검찰에 내재된 문제점은 보완하고 견제할 일이지, 기능 자체를 없애는 건 신중해야 한다. 사법부마저 ‘검수완박’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강행 처리로 인한 부작용은 불문가지다.

‘검수완박’이 목적지여서는 안 된다. 검찰을 권력형 범죄 비리에 특화된 기관으로 재정립하고 인권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 나아가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서로 견제함으로써 조직 기득권을 차단해야 한다. 만일 ‘검수완박’으로 권력형 범죄 수사가 무력화한다면 우리 사회는 정글이 된다. 권력과 돈으로 어떤 잘못을 해도 제대로 심판하지 않는다면 정의가 아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고 했다. “쥐 잡다 독 깬다”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쓴소리도 경청하길 바란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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