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영의 NK어프로치] 대북정책, 왜 실패하나? 새정부 '이것'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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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영 前뉴시스 도쿄특파원·日와세다대 국제관계학 박사
입력 2022-04-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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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질범이 베푸는 '노예적 평화' 대신 '한반도 평화 결정권' 회복이 먼저

조윤영 前뉴시스 도쿄특파원·日와세다대 국제관계학 박사



북한의 대남 전략에 정통한 한 고위급 전문가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보자.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였다. 한국에서 김대중-노무현의 10년 진보정권이 무너지고 보수정권이 들어서자 북한도 바짝 긴장했다. 그래도 이명박 대통령이 기업인 출신이니 실용적이고 전향적인 대북정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래서 중국에서 대남 교류 사업에 종사하던 북한 요원들은 그대로 대기하라는 평양의 지시가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북정책인 ‘비핵·개방 3000’을 내놓자 전원 평양으로 돌아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한다. 이후 천안함 폭침(2010년 3월)과 연평도 포격(2010년 11월) 사건 등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나 한국에서 다시 진보정권에서 보수정권으로의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북한은 무슨 생각과 계산을 하고 있을까.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북한의 행동은 한국의 대통령 선거 이후 두 차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 올렸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선언한 핵과 미사일의 모라토리엄(유예)을 파기하고, 4년여 만에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단거리 미사일까지 합하면 올해만 13차례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한국의 대선과 정권교체만을 겨냥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한이 하필이면 이 시기에 미사일 시험발사를 집중시키는 데는 남쪽을 의식한 측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은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 인수위 기간에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에는 ICBM급 화성-14형을 발사했다. 이러니 북한이 한국에서 새 정권이 들어설 때면 핵·미사일 도발로 ‘길들이기’를 시도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발사 할 때는 세 가지가 고려된다고 한다. 우선은 북한 나름의 미사일 개발 계획이다. 북한은 2021년 1월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제시한 ‘전략무기 부문 최우선 5대 과제’에 따라 고체연료 ICBM, 극초음속 미사일 등의 개발을 추진해왔다. 이 계획에 따라 무기 개발을 착착 진행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검증하고 실험할 단계가 왔을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보통 신형 미사일을 개발할 때는 20번 정도의 시험발사를 한다고 한다. 비용이 많이 들어서 우리도 3~4번 정도 하고 성능이 확인되면 배치하지만, 북한도 최소한의 성능 테스트를 위한 시험발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시기가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미사일 발사가 대남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해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분석한다고 한다. 여기서는 군사적 필요에 따라 미사일을 쏘되 발사 시기 등이 조정될 수 있을 것이다. 대미 관계 측면은 외무성에서 보고서를 만든다고 한다. 북한의 대미 협상력은 핵과 미사일의 보유량, 생산 능력 및 기술적 수준에 비례하게 마련이다. 또 비핵화 과정에서 축소 신고해서 은닉할 수 있는 핵·미사일도 전체 분량이 많을수록 늘어날 것이다. 때문에,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대미 협상력을 높이는 차원에서 더 수준 높은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결심했을 것이고, 그 계획에 따라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2016년 이후 핵실험과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에 속도를 내다가 갑자기 중단하고 협상으로 돌아섰는데 이때가 2017년 12월 12일 김정은이 국가 핵무력을 완성했다면서 핵강국이라고 선언할 때다. 수소폭탄 실험과 화성-15형 ICBM의 성공으로 미사일 개발의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이제 다시 ICBM을 쏘고 핵실험장을 손보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 기간에는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다. 올해는 김일성 탄생 110주년으로 북한으로서는 대단한 정치 행사 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이날 한밤 무도회와 대형 불꽃놀이도 했다. 북한에서 미사일을 쏘는 것은 대내적으로는 주민들의 사기를 고취하는 효과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정치·군사적으로 긴장을 고조하기도 해 축제 기간에는 나름 자제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태양절 이튿날인 16일 다시 두 발의 미사일을 동해로 쏘았다. ICBM을 쏘거나 핵실험까지 할지 모른다는 예측도 나온다. 시기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출범을 전후한 때다. 문재인 정부의 종착점이자 윤석열 정부의 시발점에서 북한이 보이는 행동들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문 정부는 5년 내내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을 외교·안보 정책의 지상 과제로 삼아 온갖 수모를 견뎠다. 김정은 동생 김여정이 문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며 비아냥대고 모욕을 줘도 그저 꾹 참았다. 그녀가 대북 전단 배포를 막으라고 요구하자 즉각 관련법도 만들었다.

우리 국민 세금으로 만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우리 눈앞에서 폭파하는데도 제대로 항변 한번 하지 못했다. 오히려 탈북자를 체포해 즉각 북한에 보내주는가 하면, 북한군이 해상에서 한국의 공무원을 사살했는데도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북한이 유엔 대북 제재 대상인 탄도미사일을 쏘아도 그저 ‘불상의 발사체’라고 얼버무렸다. 북한의 핵무장이 강화되는데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 나가서는 거꾸로 대북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고 북한 대변인 역할에 충실했고, 아무런 실효도 없고 북한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종전선언을 유엔 총회 연설에서만 세 번씩 외쳤다. 남북 정상회담 세 번에, 두 번의 미·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져 외견상 화해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결국은 북한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주고 핵무력을 키우는 시간만 벌어준 셈이 됐다.

이제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새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선 기간의 윤 당선인 발언과 선거 공약 등에서 윤곽이 드러나 있다. 그 추진 방향과 지향점은 문 정부와는 상당히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선거를 의식해 내놓은 발언이나 공약만으로 새 정부 대북정책의 기본 철학이나 구체적인 정책 수단이 완비됐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그것을 채우고 구체적으로 다듬어 나가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은 우선 전 정부의 대북정책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철저히 따져보고, 그것이 남긴 부(負)의 유산을 청산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새 정부의 대북정책 입안자와 실행자, 관찰자들이 반드시 일독하고 참고했으면 하는 좋은 책이 시의적절하게 우리 앞에 나타났다. 노무현 정부에서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하고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 등을 역임하면서 남북 간의 대화와 대결의 양면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고 전략을 지휘했던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이 최근 <대통령의 외교안보 어젠다>라는 역저를 내놓은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미리 원고를 정독해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원고를 넘길 때마다 저자의 정확한 분석과 통찰력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대북정책 참모들이 이 책을 보면 뒤늦게 어떤 회한을 느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의 이념과 소신이 워낙 강해 아무리 정확한 비판을 받아도 꿈쩍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말이다.

이 책은 북핵 문제의 해법, 국방전략, 대북정책의 목표와 방향, 통일정책, 미·중관계와 외교전략 등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숙지해야 할 5개 주제를 다룬다. 그러면서 ‘대북정책은 왜 실패하는가’와 같은 물음에 실증적인 대답을 제시하고 있다. 대북정책은 이념과 신앙의 영역이 아니라 국가의 안위와 사활이 걸린 실사구시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희망적 사고와 확증편향이 대북정책의 헛발질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대다수가 윤석열 정부에 바라는 대북정책의 핵심은 아마도 이 책의 다음과 같은 구절에 담겨 있을 것이다.
“대북정책의 최우선 당면 목표는 북한의 핵 인질 상태에서 벗어나 한반도의 평화 결정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북한이 조건을 결정하는 굴욕적 평화, 인질범이 베푸는 노예적 평화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북한의 평화 파괴 능력을 축소하고 평화 파괴를 거부할 능력으로 담보되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이러한 평화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하면 정권의 존속이 더 어려워지고 핵을 포기하면 생존과 발전의 활로를 찾을 수 있게 북한의 전략적 손익구조를 바꾸어야 비핵화의 가능성을 살릴 수 있다.”


(미니박스)
 
“북한은 이럴 때 한국에 대화를 구걸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대한 지원을 비핵화 진도와 연계하는 정책을 추진하자 북한은 온갖 악담과 비난을 퍼부었다. 이명박 정부와는 상종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폭침에 대한 응징으로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대북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재개하자 북한은 막후에서 대화를 집요하게 구걸했고, 실제로 비공개 회담이 여러 차례 열리기도 했다. 군사적 협박으로는 대북 전단 살포 등을 막을 수가 없게 되자 유일한 방법은 대화뿐이라고 판단해 한국과의 대화에 매달린 것이다.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었던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이 같은 일화를 최근에 저서 <대통령의 외교안보 어젠다>에서 공개했다.

북한이 천안함 폭침에 대한 책임 인정을 거부해 회담은 진전되지 못했지만, 북한이 그때처럼 저자세로 나온 적은 없었다고 한다. 당시 한국 정부는 전단 살포가 개인의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이라 정부가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자 북한은 군이 관할하는 민통선 이내에서의 전단 살포라도 막아달라고 읍소했다고 한다. 북한이 전단 살포 중단의 숙원을 이룬 것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난 후인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과 2020년 12월 ‘대북전단살포금지법’ 덕분이었다. 문재인 정부 기간 북한은 한국 정부가 스스로 알아서 자신들의 요구를 다 챙겨주니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닐까.
 

 
조윤영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북한학 석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박사 △뉴시스 도쿄특파원 △<北朝鮮のリアル(북한의 현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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