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드림 이뤄질까...국가 운명 건 베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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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원 기자
입력 2022-04-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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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으로 국가 부흥을 이끌겠다는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드림이 미뤄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경제에 불확실성이 급격하게 확대하며 국가 발전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기로 한 비트코인 채권 발행 계획을 연기한 것이다.

알레한드로 셀라야 엘살바도르 재무장관은 지난달 22일(이하 현지시간) 현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비트코인 채권을 발행할 때가 아니라며 적당한 시점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가 보도했다. 적당한 시점이 언제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상반기 중 발행하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라고만 언급했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지난 3월 15~20일 사이에 총 10억 달러(약 1조2205억원) 규모의 비트코인 채권을 발행하기로 했다. 비트코인 채권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절반은 비트코인 구매에 사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화산지대의 지열을 이용해 채굴 작업을 진행하는 비트코인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비트코인 전도사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의 야심찬 계획이다. 채권은 10년 만기물로 예상 금리는 6.5% 수준일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국제 정세가 혼돈에 빠지며 비트코인 가격에 영향을 미치자 정부는 이를 고려해 채권 발행 일정을 조정하기로 했다. 투자정보제공업체 인베스팅닷컴 기준 지난해 11월 6만8925달러까지 올랐던 비트코인은 현재 4만3000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6.2% 하락했다.

일각에서는 비트코인 채권 발행이 아예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많은 국제투자자들이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채권을 두고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는 가운데 채권 수요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엘살바도르 측은 이러한 의혹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트코인 채권 거래를 위한 기술 플랫폼을 담당하는 빗파이넥스의 파올로 아도이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지난달 29일 이미 "약 5억 달러의 수요가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밝혔다.

아직까지 비트코인 채권과 관련해 세부 사항이 발표되지 않아 의사를 타진하지 못했을 뿐, 발표 후에는 곧 채권 매수에 나설 것이라는 설명이다. 셀라야 재무장관 역시 비트코인 채권은 15억 달러에 달하는 잠재 수요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고 암호화폐 전문매체 코인데스크는 보도했다.

또한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전 세계 최초로 국가가 비트코인 관련 채권을 만든다는 사실 역시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한 프로젝트 관계자는 "잠재적인 투자자들은 비트코인 채권이 세계 최초라는 데에 매료되어 있다"며 "획기적인 일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을 것"이라고 FT에 밝혔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사진=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일반적인 채권을 거래해 왔던 금융전문가들은 여전히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채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수익률도 낮고, 안정성도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주요 자산운용사의 신흥시장 펀드매니저들은 현재 엘살바도르의 국가 신뢰도를 고려할 때 6.5% 수준의 예상 금리는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케빈 데일리 에버딘스탠더드인베스트먼트 펀드매니저는 "엘살바도르는 이미 기존의 채권 시장에서 사실상 차단된 상태"라며 "일반적인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그는 "누가 이 채권을 살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엘살바도르의 재정 상황이 크게 악화한 상황에서 일반적인 엘살바도르의 국채 수익률은 비트코인 채권의 수익률을 훨씬 웃돌고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달 비트코인 채권과 비슷한 시기에 만기될 2032년 만기 채권의 수익률이 약 19.5%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비트코인 채권을 발행하는 엘살바도르의 재정 상황에 대한 우려도 크다. 엘살바도르는 내년 1월 8억 달러 규모의 국채 만기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부진한 경제성장률과 높은 물가상승률로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 외부의 도움 없이 수월하게 채무를 갚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비트코인 채권을 통한 자금 조달 계획마저 불확실해진 상황에서 엘살바도르는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를 막기 위해 손을 벌려야 하는 국제통화기금(IMF)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해 9월 엘살바도르가 전 세계 최초로 미국 달러와 함께 암호화폐를 법정 화폐로 채택한 이후 IMF는 꾸준하게 위험성을 경고해 왔다. 

지난 1월 IMF는 엘살바도르와 관련한 이사회 회의 결과를 전하며 "이사들은 금융 안정성·재정 건전성·소비자 보호 등의 측면에서 비트코인을 사용하는 데에는 큰 위험이 있음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사들은 엘살바도르 당국에 비트코인의 법정통화 지위를 없앰으로써 비트코인의 지위를 축소하라고 촉구했다"고 언급했다. 비트코인 채권 발행에도 리스크가 따른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그러나 엘살바도르 정부 측은 비트코인의 법정통화 채택을 취소할 마음은 없다며 단언하고 있다. 셀라야 재무장관은 "어떤 국제기구도 한 국가에 무언가를 강요할 수 없다"며 "국가는 주권을 갖고 있으며 공공 정책에 대한 자주적 결정을 내린다"라고 반박했다.

이에 국제신용평가사들 역시 엘살바도르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강등했다. 무디스는 지난해 상당한 신용 위험이 있다며 엘살바도르의 신용등급을 'Caa1'로 매겼다. 피치 역시 지난 2월 국가신용등급을 종전 'B-'에서 'CCC'로 두 계단 강등했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그러나 아직 희망을 가지고 있는 소수도 있다. 기존 엘살바도르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브래들리 위킨스 브로드리치 설립자는 "비트코인 커뮤니티가 IMF 없이 자금 조달의 길을 제공한다면, 이는 향후 몇 년 동안 엘살바도르의 운명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FT에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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