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우크라이나 사태 속 위험한 외줄타기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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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원 기자
입력 2022-04-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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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태평양 외교 관계에서 인도가 게임 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인도가 역내 여론의 향방을 결정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에 세계 각국은 인도가 과거를 잊고 중국 손을 들어주며 새로운 아시아 세력을 형성할지, 또는 서방 국가들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며 중국 견제에 나설지 주목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비동맹 노선을 이어온 인도를 얻기 위해 가장 열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국가 중 하나는 중국이다. 2020년 국경 분쟁 중인 갈완 계곡에서 유혈 충돌 사태까지 겪은 후 중국은 인도에 냉랭한 태도를 취해 왔다. 지난 2월 폐막한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는 당시 국경 분쟁에 참가했던 군인을 성화 봉송 주자로 내세우며 인도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국은 현격히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25일(현지시간) 뉴델리를 방문해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장관을 만났다. 국경 분쟁이 격화한 후 가장 최고위급 인사가 인도를 방문한 것이다. 

국경 문제가 여전히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은 가시적인 성과를 이뤄내는 데는 실패했다. 2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왕이 부장의 적극적인 구애에도 인도 측 반응이 냉랭했다고 평가했다. 중국 외교부는 양국이 관계 발전을 위한 소통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인도는 이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회의 결과에 대해 의구심을 남겼다. 자이샨카르 장관은 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영토 분쟁이 해결되지 않는 한 인도·중국 관계는 정상으로 돌아올 수 없다고 단언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보도했다. 

그럼에도 인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중국의 노력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냉전 시기 이후 러시아와 끈끈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인도와 손을 잡고 미국을 견제하는 한편 친러시아 행보를 강화하려는 의도다. 인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기 위해 미국이 지원한 유엔긴급총회 결의안에 중국과 나란히 기권표를 행사했으며 러시아산 에너지와 무기 등을 사들이며 서방의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왕이 외교부장은 자이샨카르 장관과 회담한 날 아지트 도발 국가안보보좌관과도 회담하면서 "중국과 인도가 한 목소리를 내면 전 세계가 모두 경청할 것"이라며 양국 관계 강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러한 상황에서 서방 국가들은 중국이 가장 약한 고리로 꼽히는 인도를 공략해 쿼드의 분열을 꾀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이미 인도가 러시아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러시아 제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온 만큼 서방 국가들의 불안감은 크다. 인도가 서방 국가들에서 돌아섰을 때 커질 외교적 부담에 직접적인 비판은 피하고 있지만, 인도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계속해서 묵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쿼드는 미국·인도·일본·호주 등 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비공식 안보회의체다.

인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기 위한 서방 국가들의 제재에도 계속해서 러시아산 물품을 사들이고 있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 CNBC는 지난 27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후인 3월부터 인도로 향하는 러시아산 원유량이 상당히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맷 스미스 케이플러 수석 원유 애널리스트는 3월 초부터 러시아산 원유 약 600만 배럴이 인도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2021년 기준 인도가 수입한 러시아산 원유는 1200만 배럴 수준이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중국과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매입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전망했다.

미국은 인도에 러시아 제재에 동참할 것을 압박하는 한편 양국 간 동맹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1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태평양에는 통일 전선이 있다. 인도가 다소 흔들리고 있지만, 일본과 호주는 강경한 입장”이라며 쿼드 가입국 중 유일하게 인도가 대러시아 제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 이후 빅토리아 눌런드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 역시 하쉬 바르단 슈링라 인도 외교부 차관과 만나 "인도와 러시아의 역사적 관계는 이해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며 "미국이 인도의 국방·안보 파트너"라고 말했다. 눌런드 차관은 인도 현지 언론 인디안익스프레스와 인터뷰하면서 "중국과 러시아 간 긴밀한 동맹은 미국에도 인도에도 좋지 않다"며 "민주주의 국가들 간 동맹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주요 아시아 동맹국인 일본은 인도를 방문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에게 분명한 대응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공동성명에 직접적으로 러시아를 규탄하는 내용을 넣는 데에는 실패했다. 양국 총리는 성명에서 "즉각적인 폭력 중단을 요구하며, 분쟁 해결을 위해 대화와 외교의 길을 가야 한다"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이에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기시다 총리를 "우크라이나에서 인도를 휘두르는 데 실패한 로비스트"라고 지칭했다. 신문은 "기시다 총리는 취임 이후 첫 인도 방문에서 모디 총리에게 러시아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취하도록 압박했지만 나중에 발표된 공동성명은 일본의 로비가 미국과 호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인도가 쉽사리 대러시아 제재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자 쿼드 국가들은 인도의 입장도 이해한다며 상황 수습에 나섰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과 파키스탄을 경계하기 위해 러시아에서 무기를 사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쉽게 러시아를 내칠 수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일라이 라트너 미국 국방부 인도태평양안보차관보는 최근 미국 의회에서 "인도는 복잡한 역사를 갖고 있으며 무기의 대부분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며 인도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도 이달 21일 모디 총리와 화상 회담을 하면서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인도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에도 인도가 현재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주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현재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의 과오를 묵과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잘못을 덮어줄 것인지는 알 수 없다는 설명이다. 

아파르나 판데 허드슨연구소 남아시아 전문가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유럽·아시아 동맹국들은 중국과 장기적인 경쟁을 위해 인도가 필요하다"며 "이에 이들은 인도가 빠진 곤경에 더 많은 인내심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서방 국가들은 인도가 민주주의·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를 지지하는 것을 꺼렸던 것 역시 기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코퍼레이션 연구원 역시 인도가 엄중한 선택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가 원칙을 지키는 국가로 비치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인도 침공에 같은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인도가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계속해서 국익만을 생각하며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기로 결심한다면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이후 인도가 겪는 국경 분쟁에 대해 동정심을 잃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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