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尹정부, 초기 성패는 '생활비 위기' 극복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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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논설위원장
입력 2022-03-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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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4%대 눈앞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 등의 여파로 경기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7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3월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완만한 경기 회복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대외 여건에 대한 우려로 경기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됐다"고 경고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의 한 시장의 모습.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에 의한 경기 악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자원과 곡물 등의 공급 불안으로 물가 상승이 세력을 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각국의 주요 미디어들은 ‘Cost of living crisis생활비 위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연일 내보내고 있다. 물가의 불침번인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 퇴치를 위해 금리 인상에 보조를 맞추고 있지만 그것이 올바른 선택지인지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경제 분석가들은 재정 지원 등이 발동되지 않으면 생활수준에 대한 타격이 적어도 2008년 9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최악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앞으로 경기 불투명감이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퇴치에 금융 완화 철수를 추진한다는 방향성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해 전례 없는 불확실성과 거대한 공급 쇼크에 직면하고 있는데 왜 금융 자극책을 축소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생활비 위기에 중앙은행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이 지금 세계경제에 키워드로 나돌고 있는 것이다.
 
물가 인상에 의한 생활위기는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지만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난 강력한 사례는 우선 미국 금융위기 때를 꼽을 수 있다. 2008년 12월 일본에서 한 경제 저널리스트가 내놓은 ‘생활위기 시대의 돈과 생활의 총점검 노트’라는 책은 당시 선풍을 일으켰다. 서브프라임 문제에서 촉발한 미증유의 ‘세계 동시 금융 대공황’ 도래와 여기에 식료품 가격 급등이 가세해 가계를 직격했던 때다. 미디어들은 2009년 1월에 전기, 가스, 수도 등 라이프라인의 가격 인상도 예정되어 있는 데다 겨울 보너스 감소와 연간 평균 수입이 9년 연속 줄어든 일본의 근로자, 매출 감소에 허덕이던 지영업자와 팍팍해진 부엌 사정을 견뎌야 하는 가정을 부각시키며 이른바 ‘1억 총생활 위기시대’ 도래를 머리 제목으로 달았다. 긴급하게 출판된 이 책은 생활과 가계를 구제하는 필독서로 인기를 끌었다.

이로부터 13년이 흐른 지금 세계는 다시 생활비 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다. 영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올더모어 은행이 영국 성인 4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 중 절반이 가장 큰 걱정거리로 생활비 상승을 꼽았다. 또 3분의 1은 생활비 상승을 완화할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고 응답했으며, 4분의 1 이상은 현재 재정 상황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현재 가계는 다가오는 국가보험기여금 인상, 에너지 가격 상한과 연료비 상승, 식품과 쇼핑 비용 상승, 그리고 인플레이션과 함께 증가하는 다른 요금들로 인해 완벽한 재정 압박에 직면해 있다. 한 조사기관의 추정에 따르면 3만 파운드를 버는 근로자는 4월부터 연간 1128파운드의 추가 비용 부담을 떠안게 된다고 한다. 영국 성인 중 거의 4분의 1은 비상사태에 대비해 저축한 자금이 없다고 한다. 영국인 5명 중 1명은 예상치 못한 지출에 대비해 적절한 긴급자금을 마련하지 못할까 우려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다. 삶의 질을 높일 여력이 없고 은퇴할 돈이 없는 것도 많은 영국인들의 큰 고민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영국 정부는 지난 수요일(23일) 생활비 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조정 예산안을 발표했다. 국가통계국(ONS)이 발표한 수치에 따르면 2월 인플레이션율은 지난 1월 5.5%에 이어 6.2%로 높아져 1992년 3월 이래 거의 30년 만에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리시 수낙 재무장관은 수요일에 이른바 '봄 예산 연설'에서 세계는 많은 점에서 3주 전과 달라졌다며 상황은 이미 심각한 생활비 위기를 한층 악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실질 가처분소득이 연간 최대 감소 폭을 나타냈다. 이미 광열비, 식량, 의료품, 레저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중앙은행인 잉글랜드 은행은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몇 달 새 금리를 세 번 인상했으나 인플레이션율은 계속 상승해 올해는 8%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임금은 코로나19 팬데믹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지만 물가 상승을 밑돌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대세다.

영국 정부는 생활비 상승에 직면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새로운 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다. 계획된 증세를 뒤로 미루고 지방세 인하, 전기요금 추가 지원, 사회빈곤층 최저지원금 인상 등 2월에 발표된 지원 대책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요구한 대규모 자금 투입 이후 재정의 정통성(건전성)을 찾고 싶어하지만 세계적인 충격으로 야기된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어 어려운 정책 결정의 암중모색을 거듭하고 있는 형국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물가 급등 대책을 세우도록 오는 29일 관계 각료에게 지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선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해 고유가, 원자재값 상승 등 고물가에 확실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필요한 재원은 2022년 예산의 예비비로 충당한다. 당면한 가솔린과 식료품 가격 상승에 대한 완화책을 4월 중에 정리하고 여름 참의원 선거 전에 집행한다는 목표다. 2022년도 추경 예산안 편성을 수반하는 추가 경제 대책은 참의원 선거 후에 결정한다는 구상이다.

이날 자문회의에서 한 민간 의원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에너지의 대외 의존에 의한 일본의 취약성을 재차 부각시켰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자문위원은 “일본의 높은 기술력이나 인재력을 모아 탈탄소·에너지 절약의 대처를 단번에 가속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탈탄소 관련 시책은 추가 경제대책의 핵심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민간 의원들은 원자력 발전소에 관해 “안전성을 확보한 다음 재가동을 향한 강한 의지를 보여 기존 전원 시설을 유효하게 활용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소형 원전(SMR) 개발과 실증을 진행해야 한다고도 호소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4일로 한 달째다. 세계 유수 자원 및 곡물 수출국에 대한 군사 침공은 상품 가격을 폭등시키고, 금융시장은 상품 강세에 따른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계감을 높이고 있다. 일부 비자원국은 수입액이 늘어나 경제위기에 빠질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세계경제의 장래에 대한 우려가 한층 강해지고 있다. 일본경제신문은 최근 ‘패러다임 위기의 시대-흔들리는 국제질서와 세계경제’라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작금의 세계 정세를 분석했다.

30년 전 냉전 종식과 궤를 같이하듯 진행된 경제의 세계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냉전 이후 국제질서를 뒤흔드는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공기와 같은 존재로 여겼던 국제 무역·금융 시스템 등 글로벌 경제에 재고를 강요한다. 경제정책, 특히 금융정책은 그 패러다임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냉전 후에 금융의 글로벌화가 진행되는 것과 동시에 물가 정세는 1970~1980년대 인플레이션에서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진정화) 시대에 들어가 선진국에서는 일본을 필두로 디플레이션이 걱정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석유파동 때인 1979년에 등장한 폴 볼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수완을 발휘했고, 후계자인 앨런 그린스펀 의장도 난해한 말로 시장을 휘감는 개인기를 구사했다. 21세기에 들어서자 금융정책은 인플레이션 목표, 포워드 가이던스(선행 지침) 등 경제학자들이 합의로 진행하는 구조가 우세하게 되었지만 그 유효성이 지금 추궁당하기 시작하고 있다.

FRB는 지난 16일 2018년 12월 이후 3년 3개월 만에 처음으로 금리를 인상하고 인플레이션 퇴치에 나섰다. 1년 전 FRB는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고 분석하면서 인플레이션 목표인 2%를 약간 웃돌 수 있지만 문제는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FRB가 중시하는 PCE(가계소비지출) 물가지수 상승률은 1월 6%대로 목표 대비 3배에 달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불쾌할 정도로 높은 인플레이션’이라고 인정했다. 인플레이션은 2년에 이르는 코로나19 재해에서 수요 급회복과 공급 사슬 두절에 의한 공급 제약이라고 하는 수요·공급 쌍방의 특수 요인이라고 해석되어 왔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원유, 희귀금속, 곡물 등 국제 상품 가격 상승과 공급 불안도 겹쳐 국제질서의 요동과 동조하는 복합위기 양상이 심화되고 있다.
 
세계화에 따른 국가 간 경제 상호 의존도 경제 제재 등을 통한 위협의 도구 또는 리스크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일본경제신문은 코로나 재해와 우크라이나 위기 등 지난 2년간 세계의 대변동을 목격해 온 우리는 이러한 질서의 흔들림이 어느 정도 수습될 것인지, 아니면 중장기 혼란의 시대에 돌입할 것인지,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는지를 착실히 주시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세계 정세 변화와 함께 등장한 인플레이션에서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2월 소비자 물가가 다섯 달째 3%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물가가 다섯 달 이상 3%대 상승률을 보인 것은 2010년 9월부터 2012년 2월까지 18개월 연속 3%대 이상 상승률을 기록한 이후 약 10년 만이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석유류 가격이 크게 오르고 수요 회복과 원재료값 상승으로 외식을 비롯한 개인 서비스 가격도 오른 영향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어 향후 물가 오름세는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지금 정권교체기에 있다. 새 정권은 과거 어느 시기보다, 어느 나라 보다 난이도가 높은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 복합위기에 선 대한민국호를 바로 세워서 역동성 있게 운항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민생을 보살피는 일이다. 현 정권이 너무 버티면 글로벌 위기를 극복할 국가의 내구력이 부식된다. 새 정권이 너무 강하게 나서면 새 시대를 끌고 갈 추동력이 떨어진다. 청와대 이전 문제, 이창용 한은 총재 인사 문제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신구 정권 대립은 이 같은 내구력과 추동력을 동시에 떨어뜨린다. 세계 주요국들이 발 빠르게 ‘생활비 위기’ 타개에 나서고 있는 이유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패러다임 위기의 시대에 흔들리는 국제질서와 세계경제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나타난 ‘생활비 위기’를 읽어내는 대국적 시야가 절실한 시점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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