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 문향 의향 대나무숲 담양을 거닐다(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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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2-03-1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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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학과 기행문을 합성한 '읽는 재미'
2021년 1월 어느 날, 우리는 담양을 찾았다. 담양에 관한 글을 구상하고 기본적인 준비를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그날 죽녹원을 둘러보고 한옥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대나무 숲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천지간에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눈 내리는 죽녹원은 온통 초록빛과 흰빛이었다. 인터넷과 지면에 동시에 연재된 담양 역사문화기행은 이렇게 죽녹원 대나무 숲의 설경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담양을 계속 만날 때마다 담양의 역사와 문화의 넓이와 깊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담양은 평범한 지방의 군(郡)이 아니었다. 담양에는 대나무와 가사(歌辭)문학과 누정(樓亭) 원림(園林)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대나무와 가사와 누정 원림도 그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담양은 우리의 통념을 압도해버리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담양을 잘 모르던 외지인인 우리는 담양을 만나고 나서 숨은 보배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담양을 공부하고 취재하느라 곳곳을 누비면서 담양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담양은 영산강이 발원한 곳이고, 무등산 자락이 힘차게 달려와 멈춘 곳이다. 영산강과 무등산이 남도(南道)의 상징일지니, 담양은 그 중심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에 걸맞게 담양 사람들은 예로부터 당당하고 매력적인 역사와 문화를 이끌어 왔다. 담양은 문향(文鄕)이다. 멋진 누정과 원림을 조성하고 그곳에서 위대한 한글문학 가사를 빚어냈다. 그것도 평범한 가사가 아니라 조선시대 문학의 최고봉을 성취했다. 담양은 예향(藝鄕)이다. 문학 가는 길에 음악이 빠질 수 없으니 담양이 서편제의 풍류도 이끌었다. 대나무로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공예품을 만들었다. 담양의 삶과 토양이 곧 담양의 문화다. 담양은 의향(義鄕)이다. 대나무처럼 푸르고 곧게 살아왔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의병으로 나서 자신들의 모든 것을 바쳤다. 《예향 문향 의향 대나무숲 담양을 거닐다》는 담양에서 천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자랑스러운 역사문화의 기록이다. 
 

대나무는 담양사람들의 삶이고 문화였다. [사진=담양군 제공]


담양(潭陽)이란 이름 속에는 환경친화적인 슬로시티의 이미지가 담겨 있다. 담양을 글자 그대로 풀이해보면 맑은 물이 넘쳐흐르니 담(潭)이요, 따뜻한 햇살이 온 누리를 비추니 양(陽)이다. 노령산맥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을 이루고 곳곳에 담(潭)을 만들어 너른 들과 대숲에 물을 공급한다. 위도가 남쪽이어서 볕이 따사롭다. 이런 천혜의 조건에 백제시대 이래로 담양인의 창의력과 공력이 합쳐져 오늘의 담양이 만들어졌다. 백제 때는 추자혜(秋子兮)라 불렀고, 통일신라 때는 추성(秋成)이라고 하다가 고려 성종(995년) 때는 담주(潭州)로 개칭했다. 고려 현종 때인 1018년에 비로소 담양이 됐다. 담양 곳곳엔 ‘천년 담양’이란 문구가 붙어 있다. 담양이란 지명이 생긴 지 1000년이 되던 2018년, 담양군은 그 천년을 기억하고 앞으로의 천년을 설계하기 위해 ‘천년 담양’을 선포했다.
담과 양은 궁합이 잘 맞는다. 담양의 역사와 문화의 폭과 깊이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표현이다. 영산강 주변에 살던 선인들이 1000년 뒤를 내다보고 작명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담양이 상징하는 느림과 행복 그리고 환경은 오늘날 지구 정신이 됐다. 담양을 오가면서 “천년 담양” “천년 담양”을 자주 되뇌어 보았다. 쭉 뻗은 대나무도 떠오르고, 수백 년 세월을 견딘 관방제림도 생각났다.
담양에서 우리가 한 시도는 다른 지자체로 옮겨가서도 계속 이어갈 지역학이라고 생각한다. 지역학과 기행문학을 합성해 정보와 읽는 재미를 함께 제공하는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역사문화 진경산책> 1권(남양주)을 제작한 노하우가 쌓여 진경산책 2권(담양)이 더 알차고 미끈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진경산책의 진화는 3권, 4권, 5권으로 이어질 것이다.
담양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대나무다. 4회에 걸쳐 대나무의 역사와 경제 그리고 미래를 짚어봤다. 이번 2권에서는 요리 문화도 함께 소개했다. 1권에서는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다. 담양은 요리가 발달한 고장이다. 그만큼 물산이 풍부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에 요리가 발달할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동시에 선출하는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면서 한국의 지차체들은 중앙의 임명권자를 바라보는 정치가 아니라 주민의 마음을 얻으려는 행정을 하기 시작했다. 담양을 돌아보면서 지방자치의 성공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사진 기자를 대동하지 않고 필자 두 사람이 대부분의 장면을 스마트 폰으로 촬영했다. 스마트 폰으로 영화도 촬영하는 세상이다. 촬영의 전문성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주제를 잘 알고 있는 필자들이 사진의 구도를 잡는 데는 더 유리한 점도 있다. 비용이 많이 드는 항공사진이나 장비가 필요한 드론 사진 등은 지자체가 기왕 촬영한 사진을 빌려 썼다.
현장을 답사하고 글을 쓰면서 담양의 역사와 문화와 생태를 만나는 일은 시종 즐거웠다. 어설프게 알고 있었던 가사문학과 누정 원림, 대나무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있게 알게 되었다. 한적하기도 하고 역동적이기도 하다. 전통적이기도 하고 이국적인 곳도 있다. 옛것도 있지만 근대의 것, 요즘 것도 있다. 담양 곳곳엔 묘한 매력이 있다. 潭陽到處有勝景(담양도처유승경)!
담양의 매력 중에서도 담빛예술창고의 대나무 파이프오르간 연주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담빛예술창고는 옛 양곡창고를 리노베이션해 조성한 문화예술 공간이다. 이곳에 담양의 이미지를 살려 대나무 파이프르간을 제작해 설치했고 매주 주말 연주회를 갖는다. 주말이 되면 연주회가 열리는 담빛예술창고 카페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담양에서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만날 수 있다니, 그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신선한 충격이었다. 근대의 흔적인 양곡창고에서, 조선시대 관방제림을 바라보며,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니…. 참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지금도 주말 오후가 되면 담양의 대나무 파이프오르간 연주가 떠오른다. 그 대나무 파이프오르간 연주회가 오랜 세월 이어져 담양의 명품 문화로도 자리 잡길 기대한다.
 
최형식 최대규 곽영길 김하중 임철순 도움
 
<역사문화 진경산책> 2(담양)의 결실이 나오기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최형식 담양군수가 아니었으면 이 책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재경 광주전남 향우회장을 맡아 남도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최대규 뉴파워프리즈마 회장의 기여도 단비가 되었다. 아주경제 지면과 인터넷 공간을 제공한 곽영길 아주경제 회장에게도 감사드린다. 담양 출신인 김하중 변호사(전 국회입법조사처장)가 외지인인 필자들을 담양과 연결해주어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특히 고문(古文)에 밝은 임철순 데일리임팩트 주필(전 한국일보 주필)이 원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감수를 하며 필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짚어줘 콘텐츠의 완결성이 더욱 높아졌다. 그 외에 답사 및 연재 과정에서 도움을 준 수많은 분들의 명단은 이 책의 별도 지면에 옮겼다.   
 <공저자 황호택, 이광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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