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우크라 사태와 한반도에 드리우는 '이중 냉전구도' 먹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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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호주, 미얀마 대사)
입력 2022-02-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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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우크라이나 상황이 러시아의 군사 행동 개시로 전쟁 양상으로 급변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미국 대 소련의 패권 갈등 구도인 구 냉전의 부활을 목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세계에서 마지막 잔존하는 냉전의 현장인 한반도의 평화에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북한은 새해 들어 7번이나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기술적으로 정전 상태인 한반도에서 언제든지 전쟁이 재발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한반도와 한민족은 억울하게도  2차 대전 후 형성된 구냉전질서의 최대 희생자가 되었다. 우리는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이나 패전국도 아닌데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던 한반도는 열강들에 의해 무단히 분단되었다. 그 이후 미·소 대리전 성격인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휴전 이후에도 한반도는 양 진영 대결의 최전선이 되어 양측이 대치하면서 잊을 만하면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다. 그리고 지난 30년간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계속하여 한반도는 언제든지 전쟁이 터질 수 있는 전 세계의 화약고처럼 여겨지고 있다. 1990년 전후 구 소련의 몰락과 함께 전 세계의 냉전구도가 해체되면서 공산 진영이었던 중유럽 국가들이 대거 자유국가가 되었고 미국과 전쟁을 했던 베트남도 미국과 수교를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 냉전의 억압적인 구도는 한반도에만 유일하게 아직도 남아 있다.
 
작금 한반도 주변에는 새로운 냉전구도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과거 냉전은 미국과 소련 간의 대결이었다면 이번 냉전은 미국과 중국 간의 대결로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의 2018년 허드슨연구소 연설에서 중국과 사실상 신냉전의 도래를 선언했다. 그리고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세계가 신냉전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다가올 신냉전은 이념만의 대결도 아니고 미·중 간만의 대결도 아닌 자유진영과 권위주의 진영 간의 대결이라는 더 광범위한 범위에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 냉전은 미국이 쇠락하는 틈을 타 진행되고 있어 그 향방을 가늠하기도 힘들다. 구 냉전은 2차 세계대전과 핵폭탄의 참상이 인류의 뇌리에 박혀 강력한 심리적 빗장 역할을 했기에 열전으로 비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신냉전은 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면 한반도에는 또다시 한·미·일과 북·중·러의 양 진영 대결구도가 강하게 자리를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구 냉전과 신냉전의 이중적 대결구도가 동시에 한반도를 짓누를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즉 이념 경쟁과 패권 경쟁의 양대 축이 한반도를 또 한 번의 열전 발화 지점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외부 요인으로 생긴 구 냉전의 대결구도 말고도 한국전쟁 중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기억으로 인해 내부적으로 형성된 적대감과 불신은 한반도에 분단의 장벽을 아직도 높이 쌓아두고 있다. 이런 민족 내부의 적대감은 한반도 외부에서 다시 형성되기 시작하고 있는 새로운 냉전구도에 불쏘시개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외부에서 형성되는 신냉전 구도가 한반도에 가져올 분리 원심력은 우리 민족 내부의 단합 구심력보다 점차 거세진다면 한반도의 분단은 더 고착화될 것이고 평화적인 통일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구 냉전의 대결구도가 벗겨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반도에 신냉전이라는 또 다른 억압 구조가 더해져 우리 민족은 우리 뜻과는 상관없이 또 한 번 대리전의 희생양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구 냉전 시대에 대리전·제한전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목적을 위해 벌어지곤 했다. 첫째 상대 세력의 국력을 필요 없는 곳에 소진시키기 위한 목적, 둘째 자기 진영의 세력권을 확장하려는 목적, 셋째 상대 진영의 관심을 다른 지역으로 분산시켜 딴 목적을 달성하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으로 사용되었다. 지금 한반도 주변 상황은 신냉전이 가속화되면 이런 세 가지 요건을 다 충족시킬 만한 상태가 될 수 있다. 한반도는 중국과 러시아의 인접 지역으로 자신들의 세력권을 확장시키는 데 필요한 요충지다. 그리고 권위주의 진영은 자유진영의 결속력을 시험하고 국력을 소진시키기 위해 한반도에서 제한전을 수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양 진영 간 전면전을 치러야 할 만큼 중요한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켜 상대 진영이 이에 관심을 집중할 때 딴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 게다가 남북한 간 군사적 대치는 성냥만 갖다 대면 발화할 위험에 처해 있다. 이런 이중 냉전 대결구도의 동력(dynamics)에 우리가 휩쓸려 들어갈 때 우리 민족의 진로는 암담해질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 입장에서는 위의 3가지 목적 중 앞의 2개가 해당된다. 중국 입장에서는 세 번째 목적에 부합하기에 러시아의 입장을 두둔하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자국이 서방으로 가까워지면 서방국들이 자국의 안전을 보장해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국제법과 서방국은 멀리 있고 러시아는 바로 코앞에서 군사력으로 압박하고 있다. 양 진영 간에 외교적 해법을 못 찾으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서쪽 영토 일부를 2014년 크림반도를 장악하듯이 다시 뺏을 가능성이 높다. 강국 인접국의 국방력이 이웃 강국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정도로 강하고 이웃 강국이 전쟁을 시작하였을 때 인접국이 결사적으로 항전하여 강국에도 상당한 군사적·외교적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할 때 이웃 강국은 인접국을 건드리지 못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우크라이나는 과거 핵무장을 포기한 것을 통탄하고 이제 핵재무장을 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비추어 보면 새로 대두하는 신냉전 구도에 대한 통찰 없이 한반도 정세를 남에게 의탁하려는 자세는 위험하다. 우리 스스로가 강해지고 우리 내부의 약점을 먼저 없애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이중 냉전구도가 자리 잡는 것을 우리가 그냥 방관할 수는 없다. 방관의 대가는 한반도에 또 다른 전쟁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반도에 쌓인 냉전구도, 먼저 민족 간 대결구도를 하루속히 해소하여 남북한이 외부 세력의 대결구도에 다시 한반도가 엮여 들어가지 않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 대리전이 발발하면 이번에는 몇백만 명이 아니고 핵무기로 인하여 그 몇 배가 희생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먹구름이 몰려와 비가 쏟아지기 전에 오래 널어둔 빨래를 걷어야 한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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