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소리만 요란한 '김건희 7시간 45분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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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입력 2022-01-1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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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MBC 시사 프로그램 <스트레이트>를 시청한 뒤 든 생각은 대략 다섯 가지다. 첫째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통념을 다시 확인한 것. 둘째 오히려 ‘김건희 리스크’를 털고 가는데 MBC가 판을 깔아주지 않았나하는 반전. 셋째 <서울의 소리>도 언론으로 인정해야 하는지와 인정 한다면 취재윤리에 대해 다시 생각할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 넷째 선거판에서 후보 부인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게 가능한지. 끝으로 MBC는 공영방송으로서 공적 역할에 부합했느냐다. 어쨌든 ‘알권리’와 ‘권언유착’을 놓고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김건희 7시간 45분 통화녹음 공개’는 싱거운 쇼로 일단락됐다는 게 냉정한 평가다.

MBC가 국민의힘 반발을 무릅쓰고 방송을 할 수 있었던 건 재판부가 김건희 측이 제기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 중 일부만 인용하면서다. 재판부는 사적 통화 내용을 몰래 녹음한 정치공작이라는 국민의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김건희씨는 유력 대선 후보 부인으로서 공적 인물이며 보도 내용 또한 공익적 목적에 부합한다”고 결정했다. 나아가 “MBC가 통화녹음을 취득한 과정은 불법이 아니며 통신비밀보호법 대상 또한 아니다”고 판결했다. 방송은 정치적 공방이 과열되고 법원 판단이 개입하면서 국민적 관심을 받으며 화제가 됐다. 어떤 내용이 담겼느냐에 따라 휘발성을 예상하는 분위기도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통화녹음 내용은 일상적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 상대 후보를 비판해달라는 부탁, 캠프에 들어와 도와주면 경제적 혜택을 주겠다는 제안은 선거에 관계된 이들이라면 누구나 주고받을 수 있는 말이다. 또 “조국의 적은 민주당 내부에 있었다. 적은 항상 안에 있다. 문재인이 윤석열을 대선 후보로 키웠다”는 발언도 특정한 정치적 견해라기보다 통상적이다. 더구나 후보 부인이라면 용인되는 수준이다. 오히려 문제가 된다면 부적절한 미투 발언이다. 김건희는 “보수는 잘 챙겨주니 안 터진다. 그런데 진보는 제대로 못해 문제를 만든다. 안희정을 불쌍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여성으로서, 나아가 당선되면 영부인이 될 사람으로서 부적절하며 왜곡된 여성관이 아닐 수 없다.

통화녹음은 또 김건희를 둘러싼 ‘쥴리’ 의혹과 ‘검사 동거설’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김건희는 “계속해서 (쥴리 의혹)보도가 나가면 더 좋다. 사실과 다른데도 오보를 거듭하고 있다. 나는 시끄러운 곳을 싫어해 혼자 있는 걸 즐긴다. 결국 그 기자는 감옥에 가게 될 것이다”며 제기된 의혹에 대해 자신감을 보였다. 또 검사 동거설과 관련해선 “어떤 부모가 자기 딸을 유부남에게 팔아넘기느냐. 우리 엄마는 돈도 많은데 그럴 이유가 없다”며 듣기에 따라 꽤 설득력 있는 해명을 내놓았다. 정리하자면 알권리와 공익적 목적이 제대로 달성됐는지 솔직히 의문이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면 MBC는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 흠집 내기라는 야당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재판부 결정 때문에 보도하지 못한 부분에 공적 관심사가 담겨 있을 수는 있다. MBC는 이날 김건희씨 측에서 반론을 제기해 온다면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추가 보도를 통해 공익적 목적에 부합하는 내용이 알려진다면 다행이겠지만 이날 방송만으로는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는 비판은 면하기 어려울 듯싶다. 후보 부인은 철저한 검증 대상이라는 당위를 감안하더라도 한참 못 미쳤다는 건 중론이다. 국민들은 가뜩이나 역대 최대 비호감 대선에서 정치적 혐오감만 더한 건 아닌지 의아해한다. 이제라도 네거티브 선거를 중단하고 어떻게 국가를 이끌어나갈지 정책 선거로 전환을 기대했던 국민들에게 MBC 보도는 실망스러웠다.

인터넷 매체 <서울의 소리> 또한 언론으로써 공적 기능에 충실했는지 비판에 직면했다.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공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비판은 지배적이다. <서울의 소리>는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김건희씨와 52차례에 걸쳐 통화했다고 밝혔다. 첫 통화에서 <서울의 소리> 기자는 소속사와 신분을 분명히 밝혔다. 신분을 속이고 취재를 했다는 김건희씨 측 주장은 맞지 않다. 그럼에도 <서울의 소리> 해명은 궁색하다. 녹취 사실을 고지를 하지 않은 채 장기간 녹음한 건 아무리 취재 목적이라 해도 지나쳤다. 무려 52차례, 7시간 45분이다. 이 정도면 취재를 빙자한 스토커이자 정치적 의도를 염두에 둔 보험 성격이 짙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욱이 지난 6개월 동안 자사 매체를 통해 보도할 수 있었음에도 외면하다 선거에 임박해 MBC에 제공한 건 순수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취재 방향도 오락가락했다. <서울의 소리>는 2019년 7월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 당시에는 윤석열 편에서 <뉴스타파>를 공격했다. 그런데 국민의힘 후보가 되자 이번에는 윤석열을 공격하기 위해 부인 김건희씨를 대상으로 삼았다. 스스로 정파성 시비를 자초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14일 방송을 허용한 법원 결정에 대해 “공익성을 인정한 판단”이라며 반겼다. 그러면서 “김건희씨 세계관과 언론관을 검증할 수 있는 핵심 발언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알맹이 없는 방송이었다는 비판을 새겨야 한다. 김건희씨가 공적 인물인 건 분명하다. 또 유력 대선 후보 부인이라는 점에서 국가 위상과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공적 목적을 빙자해 취재와 보도라는 칼을 함부로 남용하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언론이 ‘기레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길은 정파성을 뛰어넘은 균형감에 있다.

이번 MBC <스트레이트> 방송은 국민들에게 두 가지 고민을 안겼다. 첫째는 장기간 통화 내용을 녹음해 다른 언론사에 넘긴 취재 행태와, 또 내용 또한 공익적 목적에 못 미쳤다는 점에서 MBC와 <서울의 소리>가 언론으로서 제 역할에 충실 했는지 근원적인 질문이다. 언론 정상화와 신뢰 향상은 간단치 않은 숙제로 남았다. 다른 하나는 김건희씨가 사회적 감수성은 물론이고 지적, 인문학적 수준에서도 한참 못 미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것이다. 영부인 역할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지 고민이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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