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시철의 AI 인문학] ⑩ 에니악, ABC, Z1, 콜로서스…세계 최초의 컴퓨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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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철 휴센텍 대표이사
입력 2022-01-1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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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 기계 두뇌로 인간의 능력은 더욱 진화할 것이다."(필라델피아 인콰이어)
"계산기는 인간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인간 사고가 진화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었다."(클리블랜드 플레인 딜러(

1946년 2월 14일 미국 유력 일간지 헤드라인을 장식한 사건이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소에서 일어났다. 한 정체불명의 기계를 공개하는 자리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한 연구원이 전원을 넣자 기계 내부에 있던 수많은 진공관이 깜박거리기 시작했고, 기계는 순식간에 '9만7367의 5000승'을 계산했다. 그 순간 큰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이 탄생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포병 화기의 정확한 탄착점을 알기 위해 재래식 포탄의 비행거리, 발사 각도, 날씨, 풍속, 풍향을 포함한 방대한 계산을 해야만 했다. 글래디언 반스 미군탄도연구소 소장은 펜실베이니아 무어 공대 졸업생인 모클리(John Mauchly, 1907~1980)와 에커트(Presper Eckert, 1919~1995)에게 탄도 발사표 계산을 하기 위한 '프로젝트 PX'를 의뢰했다. 6만1700달러의 예산을 지원받은 젊은 기술자들은 1943년부터 에니악 개발에 착수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나 1946년에 완성된 애니악은 애물단지로 전락할 뻔했지만 이후 난수 연구, 우주선 연구, 풍동 설계, 일기예보의 수치예보 연구 등 각종 과학 분야와 초기형 수소폭탄 시뮬레이션에 활용됐다.
 

개발 당시 에니악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에니악은 1만7468개의 진공관, 130㎞ 길이의 전선으로 만들어진 30톤짜리 전자식 컴퓨터였다. 메모리 없이 진공관으로 구성된 20개의 레지스터로 천공카드에 기록된 부호를 처리해 7시간쯤 걸릴 탄도 계산을 3초 만에 해냈다. 지금 기준으로는 보잘것없지만, 당시에는 에니악이 '총알보다 빠른 계산기'로 불리게 할 만큼 대단한 성능이었다. 에니악은 10진법 계수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2진법을 이용한 '디지털'이라 보기 어려웠고 입출력 또한 천공카드로만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데이터를 입력하고 저장하는 기능이 없었다. 프로그래밍을 하기 위해 사람이 스위칭 소자와 배선을 직접 이어서 구현해야 했다.

최초의 컴퓨터의 탄생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이견이 있다. 컴퓨터가 개발된 시기가 1930년대 후반인데 이때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어서 일부의 역사가 한동안 잠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초 논쟁은 법원까지 갔다. 아타나소프사는 그들이 만든 '아타나소프-베리 컴퓨터(ABC)'가 최초의 컴퓨터라며 이의를 제기했고, 1973년 10월 19일 미국 법원에서 "인류 최초의 계산기는 ABC"라고 판결했다. ABC는 전기로 작동하고 수많은 진공관으로 계산할 수 있는 논리 회로를 갖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ABC는 2진법을 사용해 수치나 데이터를 다뤘다. 약 300개의 진공관으로 이루어진 논리회로와 입력장치인 천공카드 판독기, 자기드럼 메모리를 구비했다. 또한 ABC는 전자공학, 재생식 메모리, 논리 작용에 의한 계산, 2진수 체계 등 오늘날 컴퓨터가 가지고 있는 네 가지 기본 개념을 구현한 최초의 컴퓨터였다. 하지만 처리 속도나 계산 능력은 밝혀지지 않아 ABC가 최초라는 주장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아타나소프 베리 컴퓨터 도안 [사진=미국 에너지부]


최초 논쟁에 독일의 추제(Konrad Zuse, 1910~1995)가 만든 'Z'시리즈와 영국에서 개발된 '콜로서스(Colossus)'도 등장한다.

ABC의 주요 개념이 1년 앞서 추제가 만든 전기로 작동하는 기계식 컴퓨터인 Z1에 모두 담겼던 것으로 밝혀져 Z1은 현대 컴퓨터의 이론을 정립했다고 평가된다. 추제는 1936년부터 입력장치와 처리장치, 메모리, 출력장치, 레지스터 등 모든 부분을 세분해서 Z1을 설계했다. Z1은 22비트 문자 길이로 된 부동 소수점 유닛을 갖고 있고, 저절로 펀칭 테이프에 2진 코딩이 되는 10진 키보드와 철판·톱날 등 2만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계산용 장치였다. Z1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없어졌다. 1939년 추제는 가는 철편을 메모리처럼 사용하고 800개의 릴레이로 연산해 3㎐로 작동하는 Z2를 만들었다. Z2의 후속작인 Z3는 600개의 릴레이를 이용해 계산하고 1600개의 릴레이를 이용해 결과를 저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기계식이었다. Z시리즈에 메모리가 없었던 점이 이 컴퓨터가 최초의 디지털 컴퓨터 자리에 오르지 못한 이유라고 한다.

콜로서스는 영국이 독일군 총본부(OKW)에서 사용하는 '로렌츠(Lorenz Sz)' 암호전신기를 해독하기 위해 1943년부터 개발했다. 수학자 맥스 뉴먼이 콜로서스의 개념을 제안하고 엔지니어 토미 플라워스가 설계하였으며, 앨런 튜링이 주도해서 만들었다. 그러나 스위치와 플러그에 의해 프로그램이 작동되었기 때문에 최초의 자리를 에니악에 내주고 말았다. 2세대 콜로서스(마크2)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개시를 5일 앞둔 1944년 6월 1일에 작동되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콜로서스 10대가 작동됐고, 콜로서스는 독일 최고 사령부와 예하 부대 간에 교신된 암호 내용을 해독하는 데 성공해 연합군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콜로서스 [사진=위키피디아]


에니악은 진공관 1만7468개가 트랜지스터(transistor) 역할을 했는데 이후 70년간 기술 발전으로 지금은 동전보다 작은 1GB 반도체칩(D램 기준) 하나에 80억개 이상의 트랜지스터가 들어간다. '알파고'도 동전만 한 칩에 담길 날이 머지않았다.
 
튜링테스트

커즈와일: 난 미국 수도에 살아. 어딘지 아니?
유진: 바보 천치라도 미국 수도가 워싱턴인지는 안다고요.
커즈와일: 나는 사람을 달에 쏴 올린 나라 수도에 살아.
유진: 음, 대답을 원한다면, 미국 수도는 워싱턴이죠.
커즈와일: 나는 만리장성을 쌓은 나라 수도에 살아.
유진: 수도에 관해 더 말해줘요. 난 다른 장소에 관해 듣는 걸 좋아해요.
커즈와일: 몇 살 때부터 안경을 썼니?
유진: 아니. 난 아니에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거죠? 제가 착각한 게 아니라면, 당신은 여전히 어디 사는지를 말해주지 않은 것 같은데요. 혹시 비밀인가요? :-)

2014년 6월 8일 천재 과학자 커즈와일(Ray Kurzweil, 1948~)과 13세 우크라이나 소년 유진 구스트만(Eugene Goostman)이 나눈 대화의 일부다. 대화가 끝나자 커즈와일은 "상대방은 인간이 분명합니다"라고 판정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 자리를 마련한 런던 왕립학회는 "AI 개발에 기념비적인 일이 일어났다"며 "컴퓨터 프로그램 '유진 구스트만'이 65년 만에 처음으로 AI를 가늠하는 기준인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구스트만은 5분 동안 심사위원 25명과 문자로 대화를 나눴고 심사위원 중 33%가 유진을 진짜 인간이라고 판단했다. 유진 구스트만은 베셀로프, 울라센, 뎀첸코 등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출신 프로그래머 세 명이 만든 AI 프로그램으로, 그 첫 번째 버전은 2001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나왔다.

튜링테스트는 AI가 인간처럼 스스로 사고를 하는지 판별하는 테스트로, 1950년 영국 수학자 튜링(Alan Mathison Turing, 1912~1954)이 그의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에서 처음 제안하였다. 튜링의 논문은 AI의 개념적 토대를 제공하였으나, 포괄적 논리만 제시하였을 뿐 구체적인 실험 방법과 판별 기준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현재 통용되는 테스트는 서로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앞에서처럼 심사의원들이 인간 또는 컴퓨터를 대상으로 정해진 시간 안에 대화를 나눈 결과 심사의원 중 30% 이상이 진짜 인간과 대화한 것이라고 판단하면 해당 AI는 인간처럼 사고를 한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였더라도 완벽한 AI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있다. 미국 철학자 존 설(John Searle, 1932~)이 1980년에 제시한 '중국어 방 논증(Chinese Room Argument)'이 유명하다. 설은 의미론이 배제된 구문론만으로는 언어를 이해한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튜링테스트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와 같은 논란에도 튜링테스트는 AI의 완성도를 측정하는 가장 신뢰받는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1990년 미국 발명가 휴 뢰브너(Hugh Loebner, 1942~2016)가 미국 케임브리지행동연구센터와 공동으로 제정한 뢰브너상은 튜링 테스트 경진대회를 통해 테스트를 통과하는 AI 챗봇에 10만 달러의 상금을 주기로 했는데, 아직 수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커즈와일 역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AI에 2만 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했지만 아직은 수상자가 없다.
 
사이버네틱스 이론의 탄생

1943년 미국 뉴욕에서 과학역사상 최초의 융합콘퍼런스라 부를 만한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연구 모임이 열렸다. 이 모임의 중심에는 천재 수학자 위너(Nobert Wiener, 1894~1964) MIT 교수가 있었고, 양자물리학의 수학적 모델을 만든 노이만(John von Neumann, 1903~1957) 스탠퍼드대 교수, 정보이론의 아버지라 불리는 섀넌(Claude Shannon) MIT 교수 등과 인문학자들이 함께했다.

모임에 참여한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기계와 살아 있는 유기체의 통제와 자기 조절 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인식론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기계와 살아 있는 유기체의 작동 원리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기계는 원인과 결과, 자극과 반응, 투입과 산출의 연결이라는 선형적 인과관계에 의해 작동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유기체는 인과적으로 연결된 구성 요소의 순환적 계열이라는 피드백 루프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에서 기계와 차이가 있다는 게 이들의 견해다. 이 모임은 1953년까지 10여 차례 진행됐고 현대적 컴퓨터와 인공지능 개발에 공헌했다.

사이버네틱스의 어원인 그리스어 키베르네티코스(Kybernetikos)는 '조타수'를 의미한다. 위너는 정보와 피드백 개념을 활용해 커뮤니케이션을 통제해 원하는 목적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을 사이버네틱스라고 정의했다. 이 개념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당시 정치군사적 환경에서 자동화된 전투 방식, 기계와 인간의 통합, 군대 지휘 체계에 핵심 모델을 제시했다. 위너와 노이만은 사이버네틱스 이론을 토대로 벨 연구소에서 추진된 전자 조준 시스템 개발에 참여했다.

위너는 사이버네틱스를 정의한 책 <인간의 인간적 활용(The Human Use of Human Being)>에서 기계가 인간의 생각이나 고유의 특성을 담는 도구가 된 시대를 표현했고, 다른 저서 <사이버네틱스>에서 물리학과 정보 이론, 법률과 언어의 문제, 문명 비판 등을 통해 인간과 기계의 본성, 둘의 관계를 풀어냈다. 그의 이론이 1956년 'SAGE'라는 현대식 메인 프레임 컴퓨터 개발로 이어졌고, 지금의 초연결 AI 시대와 관련한 수많은 기술에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다.

이후 패스크(Gordon Pask, 1928~1996)는 "인간과 기계 또는 장치와 환경 사이에 정보의 흐름이 반복적인 훈련 과정을 거치면서 피드백이나 차용 학습을 통해 자아를 형성한다"고 주장해 위너의 '피드백' 개념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패스크 이론의 개념과 영향력은 사이버네틱 시스템의 복잡한 인과 구조를 설명해 AI 이론과 차별화된 사이버네틱스 이론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었다.
 
강시철 휴센텍 대표이사 kangshichul@gmail.com

강시철 휴센텍 대표이사 [사진=강시철 휴센텍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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