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생존 어려워도 출혈경쟁···LCC, 공급 우선 '세이의 법칙'과 결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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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 기자
입력 2021-12-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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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주경제DB]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출혈경쟁으로 버티고 있었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해 상반기 만난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국내 저비용항공사(LCC)의 영업 전략을 혹평했다. 당시 LCC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실적이 급격히 악화된 탓에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 등 정부 지원을 간절히 바라고 있던 차였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전 LCC에 대해 그저 공급을 늘려놓기만 하면 어디에선가 수요가 나타날 것처럼 영업을 해왔다고 꼬집었다. 코로나19 사태처럼 수요가 급격히 사라져버리면 스스로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지적은 경제학 역사에서 한 획을 그었던 '세이의 법칙'의 사례를 감안해보면 보편적 원칙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것으로 잘 알려진 세이의 법칙은 프랑스의 경제학자 장 바티스트 세이가 1803년 출간한 저서 '정치경제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세이는 공급의 총량이 수요의 총량을 결정하기 때문에, 공급과 수요는 항상 일치한다고 봤다.

이전보다 공급이 많아진다 하더라도 대규모 공급을 통해 상품·서비스의 가격이 저렴해진다면 그에 알맞은 수요가 나타난다는 시각이다. 이는 과잉생산은 있을 수 없다는 고전경제학의 핵심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제국주의 열강은 세이의 법칙에 기반한 경제 사상에 경도돼 끊임없이 팽창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1929년 미국에서 발생한 대공황은 세이의 법칙이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6년 저서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을 통해 경제학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케인스는 경제 위기의 원인을 수요에서 찾았다. 케인스에 따르면 전체 수요가 공급을 결정한다. 수요 부족으로 생산자가 생산을 줄이고, 임금 하락을 가져와 또 다른 수요 부족 현상을 일으켜 실업과 물가 하락의 악순환인 디플레이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세이의 법칙과 반대라고 할 수 있는 케인즈의 '유효수요론'은 현재 세계 경제학의 주요 흐름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국내 LCC는 그야말로 세이의 법칙에 따라 영업을 해왔다. 국내 7개 주요 LCC는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출혈 경쟁을 통해 항공권 공급량을 늘리는 데 힘써왔다. 항공권 가격이 저렴해지면 어디에선가 비행기를 타길 원하는 고객이 나타날 것이라는 신앙에 가까운 확신이 유지돼 왔기 때문이다.

물론 항공업계에서는 세이의 법칙이 유효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9년 전체 항공 여객은 1억2336만6608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8년 1억1752만5898명보다 5%나 늘어난 규모다. 이 기간 항공권이 너무나 저렴해진 탓에 서울에서 부산에 가기 위해 KTX보다 LCC를 이용하는 고객이 나타날 정도였다.

문제는 세이의 법칙이 LCC의 경영 안정을 보장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객이 가장 많았던 2019년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에어부산 등 대부분 LCC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매출원가가 매출액의 90%를 넘을 정도로 출혈 경쟁을 벌인 결과 손해만 남게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최근 2년 동안 코로나19 사태로 계속해서 나타날 것 같았던 수요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LCC는 여전히 적자를 감수하고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같은 대형항공사(FSC)가 화물 운송으로 전환해 흑자를 내고 있는 것과 큰 차이다.

물론 지금의 출혈 경쟁의 책임을 오롯이 LCC에게만 지울 수는 없다. 2019년 말 7개였던 LCC 숫자는 내년에는 9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 코로나19 영향에 따른 적자 기조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에어프레미아와 에어로케이가 운항을 허가한 탓이다. 이를 감안하면 세이의 법칙을 신봉한 것은 LCC가 아니라 정부였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생존 한계에 직면한 LCC가 회생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혁신에 성공해야 한다. 1만원대 항공권을 내놓아 출혈 경쟁에 집중하기보다는 코로나19와 유사한 심각한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을 안정적 재무구조와 영업 전략을 마련하는 데 신경을 써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코로나19 영향 하에서도 LCC가 세이의 법칙과 출혈 경쟁에서 벗어나 다시 날아오를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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