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중독(中讀)] 25년간 6개 반도체 기업 세운 중국 ‘다이 삼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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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예지 기자
입력 2021-1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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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이웨이민, 다이웨이진, 다이웨이리 삼남매

  • 마벨그룹, 베리실리콘 등 세우고 반도체 업계서 '승승장구'

다이웨이민 베리실리콘 회장 [사진=펑파이신문 갈무리]

중국 반도체 업계에는 ‘최강 삼남매’가 있다. 이들은 1995년 반도체 시장에 뛰어든 후 모두 6개의 반도체 기업을 설립했다. 그중 하나는 현재 글로벌 반도체 기업 7위인 마벨(Marvell)이며, 한 곳은 중국 반도체IP 첫 번째 상장사인 아이위안구펀(芯原股份, 베리실리콘·Veri silicon)이다. 중국과 글로벌 시장을 넘나들며 반도체 시장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다이(戴) 삼남매’를 소개한다.
 
버클리공대 출신의 '반도체 삼남매'
다이 삼남매 중 첫째는 다이웨이민(戴偉民)이다. 그는 1956년 상하이 푸둥에 위치한 한 병원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위대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그의 할아버지가 붙여줬다. 그가 태어난 후 3년 뒤인 1959년 둘째 다이웨이진(戴偉進)이 태어났다. ‘위대한 발전’이라는 의미다. 막내는 삼남매 중 유일한 여자로 ‘위대한 지위’라는 이름의 다이웨이리(戴偉立)다. 이들 이름의 의미는 훗날 실제 이들의 상황과 비슷해 재미있다는 이유로 잘 알려져 있다.
 
다이 삼남매가 모두 태어났을 때, 다이 가족은 당시 중국에서는 굉장히 독특한 상태였다. 이들의 할아버지와 삼촌은 이른 시기 미국에 이민을 간 상태였고, 다이 삼남매의 부모는 상하이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다이 삼남매가 학창시절 미국으로 이주 및 유학을 하게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
 
1980년 당시 대학생이었던 웨이민과 웨이진을 제외한 다이 가족은 모두 미국으로 이주했다. 고등학생이었던 웨이리는 학업에 열중한 뒤 미국 버클리공대에 입학했다. 웨이리의 추천으로 웨이민과 웨이진도 버클리공대 컴퓨터공학과에서 함께 공부할 수 있었는데, 이때부터 반도체에 대한 삼남매의 역사가 시작된 셈이다.
 
다만 졸업 직후 삼남매의 길은 다소 엇갈렸다. 장남인 웨이민은 석사 졸업 후 박사학위까지 취득하면서 1996년 산타크루즈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자리에 올랐다. 둘째 웨이진은 석사를 마친 후 일을 시작했고, 웨이리는 대학 졸업 즉시 창업에 뛰어들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삼남매의 성격 차이를 볼 수 있다고 해석한다. 웨이민은 신중한 한편, 막내는 더 도전적이라는 것이다.

다이웨이리 마벨그룹 공동창업자 [사진=바이두 갈무리]

남편과 마벨그룹 세운 '도전정신'의 막내 다이웨이리
이런 웨이리의 도전정신은 마벨그룹 설립이라는 성과를 냈다. 마벨그룹은 웨이리와 그의 남편 저우슈원이 공동 설립했다. 저우슈원은 인도네시아 화교 출신으로 웨이리와 버클리대 재학 시절 만났다. 둘은 졸업 후 1995년 둘의 집 거실에서 사무실을 차렸는데 이 사무실이 마벨그룹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사실 마벨의 발전과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이미 파나소닉, IBM,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등 반도체 강자들의 경쟁이 치열했던 탓에 업계에서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따라 저우슈원과 웨이리는 당시 업계에서 새롭게 성장하고 있던 단결정 실리콘 관련 기술에 주력했고 결과는 주효했다. 마벨은 설립 불과 4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도시바와 삼성 등 글로벌 브랜드들의 협력사로 명성을 얻게 됐다.
 
이런 성장세에 힘입어 웨이리와 저우슈원은 사업을 확장했다. 휴대전화 반도체 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마벨을 글로벌기업으로까지 성장시켰다. 특히 2010년 스마트폰이 휴대전화 시장의 대세가 되기 직전 중국 휴대전화 칩 시장에 진출하며 눈부신 성적을 거뒀다.
 
한때 마벨이 출시한 3G 반도체 솔루션은 시장점유율 90%를 차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시장 경쟁 심화로 2014년 마벨의 휴대전화 반도체 사업 수익이 크게 감소했다. 결국 2015년 9월 마벨은 휴대전화 반도체 사업을 대폭 축소한 뒤 이듬해 웨이리와 저우슈원은 마벨의 모든 지위에서 물러나게 됐다.
 
다만 웨이리는 여전히 반도체 업계에서 도전정신을 발휘 중이다. 웨이리 부부는 올해 드림빅세미컨덕터(Dream Big Semiconductor)라는 새로운 반도체 기업을 설립했고, 최근 반도체 업계의 화두인 DPU(데이터처리장치) 시장에 발을 들였다.
 
다이웨이민·웨이진 힘 모은 '베리실리콘'은 성장 중
웨이리만큼은 아니지만 웨이진과 웨이민도 반도체 업계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일단 맏형 웨이민이 박사 학위 과정을 밟는 동안 둘째인 웨이진은 실리콘펄스펙티브를 설립했다. 응용프로그램별 집적회로 설계용 도구 제품을 제조하는 업체다.
 
이 회사는 빠른 성장세를 거두면서 2001년 당시 세계 최대 EDA(설계 자동화 툴) 업체인 미국 케이던스에 5억 달러에 인수됐고, 이후 웨이진은 케이던스에서 일하게 됐다.
 
2007년 웨이진은 케이던스에서의 경험을 살려 자신 두 번째 회사를 설립했다. GPU(그래픽처리장치) IP 업체인 비반테 테크놀러지다. 주로 자동차 전장, 보안 모니터링, 사물인터넷 등 분야에서 사용됐는데, 2012년 화웨이의 하이실리콘 일부 프로세서에서도 비반테의 GPU IP가 사용됐다.
 
웨이진이 케이던스에서 일하는 동안 웨이민은 교수 자리를 내려놓고 2001년 중국으로 돌아가 베리실리콘을 설립했다. 베리실리콘은 반도체 IP를 주력으로 만드는 업체다.
 
웨이진과 웨이민 모두 반도체 IP 분야에서 일하면서 두 사람의 사업 궤적이 많이 겹쳤다. 결국 2015년 베리실리콘이 5762만8500달러(약 680억원)로 비반테를 인수했고 2016년 1월 두 회사가 합쳐진 새로운 회사가 탄생했다.
 
이 인수 후 베리실리콘은 GPU IP의 단점을 보완했고, 웨이진은 베리실리콘 이사 및 부사장에 임명됐다.
 
36커는 “현재 두 사람이 함께 일하고 있는 베리실리콘은 여전히 적자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는 높은 연구개발(R&D) 투자 비중 때문”이라며 “게다가 손실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평가했다. 실제 올해 상반기 베리실리콘의 적자는 4564만5000위안(약 84억원)에 불과했지만, R&D 투자 비용은 무려 2억7400만 위안에 달했다.
 
베리실리콘은 지난해 8월 상하이증시 커촹반에 상장한 후 현재 시총이 386억6300만 위안에 달한다.
 
36커는 “다이 삼남매가 약 25년간 반도체 업계에 몸담아 왔지만 업계 상황이 최근 변화가 크기 때문에, 세 사람 모두 향후 기술, 인재 확보 등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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