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뭐할까] ‘엄선에 엄선’ 일생에 두 번 보기 힘든 박수근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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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민 기자
입력 2021-11-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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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래 첫 박수근 개인전

  • 한국적·토속적 미감 대표작가 박수근과 그의 시대 재조명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시 전경.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일생에 두 번 보기 힘든 전시입니다. 박수근의 초기작부터 말년작까지 대표작들을 엄선했고, 감정 시스템도 여러 번 거쳤습니다. 소장자들이 수십 년 만에 공개하는 작품도 있습니다.”

‘국민화가’ 박수근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관 이래 첫 개인전을 갖는다.

박수근의 작품 세계와 그가 살았던 시절을 함께 담은 전시는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의 말처럼 일생에 두 번 보기 힘든 기념비적인 전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박수근의 예술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을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과 공동주최하여 11일부터 2022년 3월 1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한다. 역대 최다인 유화, 수채화, 드로잉, 삽화 등 총 174점이 전시됐다. 유화 7점과 삽화 12점은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 담당자인 김예진 학예연구사는 “‘가장 한국적인 서양화가’로 평가받는 박수근은 전후(戰後) 시대상을 기록한 한국화를 통해 당대의 평범한 삶의 가치를 전했다”라고 짚었다.

참혹한 시대를 견뎌낸 한 화가의 삶을 느낄 수 있는 전시다. 박수근(1914~1965)은 보통학교만 졸업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하여 조선미술전람회와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와 같은 관전을 통해 화가로 데뷔했다.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서구의 추상미술이 급격히 유입되어 화단을 풍미했지만, 박수근은 시종일관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단순한 구도와 거칠거칠한 질감으로 표현한 그림을 고수했다.

박수근은 창신동 집에서 명동 PX, 을지로의 반도화랑을 오가며 목도한 거리의 풍경, 이웃들의 모습을 화폭에 주로 담았다. 동시에, 동시대 서양미술의 흐름에도 관심을 가지며 공간, 형태, 질감, 색감 등의 회화요소를 가다듬어 나갔고, 자신의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모던한 회화 형식과 화법을 구축했다.

일체의 배경을 제거하고 간략한 직선으로 형태를 단순화하고 거칠게 표면을 마감한 그의 회화는 ‘조선시대 도자기’, ‘창호지’, ‘초가집의 흙벽’, ‘사찰의 돌조각’ 등을 연상시키는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미감을 보여준다. 현재 국내 20종의 미술 교과서에서 박수근을 가르치고 있어 한국인이라면 필수교육만으로도 박수근을 알고 그림도 익숙하다.

이번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에서는 그간 ‘선한 화가’,‘신실한 화가’, ‘이웃을 사랑한 화가’,‘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등의 수식어로만 제한되던 박수근을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기획했다.

우선 박수근이 살았던 전후 시대상에 주목하였고, 당시 화단의 파벌주의로 인한 냉대나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불우한 화가였다는 고정관념을 벗겨내고 박수근의 성취를 조망한다.

또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으로 시행된 박수근전작도록 발간사업을 통해 새롭게 발굴된 자료들과 연구성과를 토대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박수근의 활동을 소개한다.

전쟁 전 도청 서기와 미술교사를 지냈던 박수근은 전쟁 후에는 미군부대 내 PX에서 싸구려 초상화를 그렸고 그곳에서 소설가 박완서를 만났다. 미군부대는 박수근이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온갖 수모를 견뎌내야 했던 곳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작품을 아끼는 후원자들을 만나게 해준 곳이기도 했다.

박수근은 해방 후 최초의 상업화랑인 반도화랑에서도 외국인들에게 먼저 주목받았고, ‘동서미술전(Art in Asia and the West)’(샌프란시스코미술관, 1957), ‘한국현대회화전(Contemporary Korean Paintings)’(뉴욕 월드하우스 갤러리, 1958) 등을 통해 한국 중견작가들과 함께 해외에 소개되었다. 참혹한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고단한 이웃의 생활을 담담하게 표현한 박수근을 통해 전후 1950~60년대 한국의 시대상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김복순, 박수근화백의 일생기, 1977~1978년 [사진=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제공]


전시는 박수근의 시대를 읽기 위해 ‘독학’, ‘전후(戰後) 화단’, ‘서민’, ‘한국미’ 4가지 키워드를 제안하며, 1부 <밀레를 사랑한 소년>, 2부 <미군과 전람회>, 3부 <창신동 사람들>, 4부 <봄을 기다리는 나목>으로 구성된다.

1부 <밀레를 사랑한 소년>은 ‘밀레와 같이 훌륭한 화가’가 되고 싶었던 소년 박수근이 화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10대 시절의 수채화부터 1950년대 유화까지 그의 초기 작품들을 선보인다.

박수근이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 참고했던 화집, 미술 잡지, 그림엽서 등의 자료들은 그가 다양한 미술 정보를 섭렵하며 화풍을 완성하게 된 과정과 박수근 예술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박수근의 부인 김복순 여사가 기록한 전기(傳記)인 ‘박수근 화백의 일생기’는 뜻깊은 자료다.

2부 <미군과 전람회>에서는 한국전쟁 후 재개된 제2회 국전에서의 특선 수상작부터 그가 참여한 주요 전람회 출품작들을 전시한다. 그리고 박수근의 미군 PX 초상화가 시절과 용산미군부대(SAC) 도서실에서 열린 박수근 개인전(1962)을 소개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박완서의 소설 <나목>을 매개로 박수근이 견뎌낸 참혹한 시대를 공감하고, 2부에서 소개되는 그의 대표작 ‘나무와 두 여인’을 새롭게 감상해 보기를 제안한다.

김 학예연구사는 “박수근이 판매를 위해 그린 그림과 전람회를 위해 그린 그림은 구분해야 한다”라며 “정말 어렵게 대여한 작품들이다”라고 귀띔했다.

나무와 두 여인, 1962, 캔버스에 유채, 130x89cm [사진=리움미술관 제공]


박수근이 살았던 시대로의 여행은 흥미로웠다. 3부 <창신동 사람들>은 박수근이 정착한 창신동을 중심으로 가족, 이웃, 시장의 상인 등 그가 날마다 마주친 풍경을 담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최근 박수근전작도록사업을 통해 조사된 유화 2점이 공개된다.

아울러, 박수근의 그림과 함께 당시 시대상을 담은 한영수의 사진이 전시되어, 역사상 가장 가난했던 1950~60년대를 살았던 한국인을 따스한 시선과 모던한 감각으로 표현한 예술가의 미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과 사진이 하나처럼 느껴졌다. 

4부 <봄을 기다리는 나목>은 박수근이 완성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찾아본다. 박수근이 평생 즐겨 그린 소재는 여성과 나무이다. 그의 그림에서 고단한 노동을 하는 여성과 잎사귀를 다 떨군 나목은 ‘추운’시대를 맨몸으로 견뎌낸 한국인의 자화상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박수근의 그림이 인기리에 매매된 반도화랑과 그의 그림을 수집한 외국인들을 소개하며 이들이 박수근 작품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이것이 어떻게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여 폭넓은 공감을 얻어냈는지 살펴본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의 끝에서 만난 전시는 겨울이 아닌 봄을 느끼게 했다. 박수근을 대표하는 아이를 업고 있는 소녀의 표정은 의연했고, 희망차고, 포근했다.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전했다.

전시장 끝에 있는 박수근이 1961년 1월 19일 ‘경향신문’에 쓴 ‘겨울을 뛰어넘어’라는 글은 지금의 우리를 50년간 기다린 ‘나목’처럼 느껴졌다.

“나는 워낙 추위를 타선지 겨울이 지긋지긋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겨울도 채 오기 전에 봄 꿈을 꾸는 적이 종종 있습니다. 이만하면 얼마나 추위를 두려워하는가 짐작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계절의 추위도 큰 걱정이려니와 그보다도 진짜 추위는 나 자신이 느끼는 정신적 추위입니다. 세월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그러면 사람도 늙어가는 것이려니 생각할 때 오늘까지 내가 이루어놓은 일이 무엇인가 더럭 겁도 납니다. 하지만 겨울을 껑충 뛰어넘어 봄을 생각하는 내 가슴에는 벌써 오월의 태양이 작열합니다.”
 

고목과 여인, 1960년대 전반, 캔버스에 유채, 45x38cm [사진=리움미술관 제공]


 

판잣집, 1950년대 후반, 종이에 유채, 20.4x26.6cm [사진=성신여대 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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