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네시스, 미국 시장에서 빅5로 전격 부상 채비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동서울대 교수

오랜 기간 우리 수출상품은 해외시장에서 품질과 가격의 접점에서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했다. 후발주자의 서러움을 감내해야 했던 시간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이런 처지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하고 있다. 잘하면 2등 혹은 3등은 할 수 있지만 1등, 즉 시장 선도자의 위치에 서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음을 통감하면서 절망하기도 했다. 우리보다 한발 앞선 일본 상품이 우리 발목을 잡았다. 선진국 소비자의 브랜드 중시 혹은 상품에 대한 편견 또한 작용했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우리보다 더 후발주자인 중국의 거센 추격으로 현재 서 있는 자리도 위태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세계 1등 브랜드 혹은 상품을 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뿌듯한지는 국내에선 잘 감지 못해도 해외 나가서 실감하게 되는 경우를 적잖게 경험한다.

20여 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전자 제품은 일본 주자들의 아성에 밀려 선진국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심지어 우리 소비자들도 일본 가전 제품에 매료되어 TV, 냉장고, 오디오, 전기밥솥, 비디오카메라 등을 구매하려고 극성을 부린 적도 있었다. 해외 매장의 진열된 서열을 보더라도 일본산은 늘 정중앙에 위치하여 수요자의 눈길을 끌고 있었던 반면 한국산은 항상 뒤편 후미진 구석에 자리하고 있어 큰 격차를 인정해야만 했다. 이랬던 상황이 1990년대 말부터 급반전되기 시작했다. 난공불락과 같은 일본산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한국산이 대신하고 있다. 파괴적 혁신으로 현실 안주를 고수한 일본 기업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일본이 더는 가전 부문에서만큼은 우리 적수가 되지 못한다. 실로 격세지감이다.

전자는 일본의 벽을 넘었지만, 자동차는 여전히 일본과의 틈새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전자보다 자동차에서 일본 브랜드가 구축하고 있는 아성이 훨씬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선진국 시장은 물론이고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시장에서도 일본차의 위력은 아직도 건재하다. 특히 미국 시장은 새로 출시된 차량의 테스트 마켓으로 이들의 평가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대체로 중고차 가격의 시세에 따라 신차 소비 성향이 결정된다. 미국 소비자들은 일본차의 수명을 20년 내로 보지만 한국산은 10년 내외로 평가한다. 이로 인해 한국차는 내구성에서 저평가를 받으면서 중저가 차량으로 대접을 받는다. 시장의 인식을 일시에 반전시키는 것이 정말 어렵다. 중국이나 유럽 시장에서도 거의 대동소이하다.

현대차가 기존 저가 이미지를 탈피해 고급 차종으로의 변신을 위해 의욕적으로 내세운 차가 ‘제네시스’다. 2009년 미국에 상륙하여 ‘준고급차(Near luxury car)’로 포지셔닝하는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 BMW3 시리즈, 렉서스ES 등 시장 강자와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디자인이나 성능의 획기적으로 개선되면서 고급차로 대우받을 수도 있다는 계기가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부침을 거듭하였지만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하지는 못했다. 중국 시장에서도 2012년 중·일 ‘댜오위다오(일본명 : 센카쿠)’ 영유권 분쟁에 따른 일본차 불매 운동 확산으로 한국차가 반짝 재미를 봤다. 그 후 2년도 채 못돼 일본차가 실지를 회복하였고, 사드 보복으로 시장이 완전히 뒤집혔다. 당시 현대·기아차의 오판은 진행 중이다.

미래차 시장의 대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는 지금이 타이밍, 놓치면 영원한 패배자로 전락

최근 기대할만한 희소식이 들린다. 한국차가 미국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뉴스다. 올해 들어 제네시스 판매량이 신기록 질주를 하고 있다. 작년 코로나19로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고급차 시장에서 제네시스가 꼴찌를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렉서스, BMW, 벤츠 등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제네시스가 넥서스보다 더 비싸게 팔리는 이변까지 생겨났다. 이러한 반전에는 지난 2월 차량 전복 사고를 당한 타이거 우즈의 운전 차종이 GV80이었던 것도 한몫했다. 대형 사고임에도 다리만 상처를 입었고, 차량 내부 파손은 거의 없었다. 신형 전기차 모델인 제네시스 GV70도 크게 호응을 받으면서 가세하고 있다. 이 추세라면 도요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혼다를 제치고 미국 시장 점유율 빅5를 차지할 가능성이 커졌다.

시장의 단편적인 현상만 보고 전체 혹은 장래 상황을 지레짐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그렇지만 일본차의 철옹성을 넘을 수 없다는 비관이나 포기로 일관하는 것도 금물이다. 언젠가는 역전의 타이밍이 올 수 있으며, 그 시간을 놓치면 또 다른 30년이나 혹은 영원한 낙오자라는 누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미래차로 시장의 대전환이 시작되고 있는 지금이 최적기다. 강자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시장의 물결에 올라타야 한다. 현대차가 내년부터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 GV70 생산을 개시, 본격적인 전기차 시장에 들어갈 채비다. SUV나 제네시스 시리즈로 점차 현지 생산을 확대할 계획이다.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다만 국내 노조의 반발이 걸림돌이다. 큰 승부를 위한 타협이 불가피하다.

이 시점에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실제로 시장에서 더 많이 팔리는 차는 전기차가 아닌 하이브리드차(전기모터와 엔진을 병합시킨 차)다. 중국만 제외하고 미국이나 유럽, 한국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경우는 하이브리드차 30%, 전기차 10% 비율로 차이 난다. 과도기에는 친환경차에 대한 소비자 인식에 혼선을 줄 수 있다. 배터리 기술, 인프라 부족 등을 이유로 선뜻 전기차 구매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로 인해 향후 최소 10년 이상은 하이브리드차가 더 주목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 부문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경쟁은 치열하다. 결국은 다양한 포트폴리오 싸움이지만 이를 백업하는 신기술 생태계 구축에서 승부가 날 수 있다. 내연기관 차에서 덧씌워진 오명을 씻고 다크호스로 부상할 때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학교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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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22 JAN 5-8 LAS VEG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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