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리포트]"中 반도체 선봉장인가, 실패한 사업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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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선 중국본부 팀장
입력 2021-07-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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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산 위기'에 몰린 칭화유니그룹 회장 자오웨이궈

  • "양치기→칭화대 수재→부동산 사업가→반도체 사령탑"

  • "돈으로 기술 사자" 반도체기업 인수에 열 올려

  • 60건의 맹목적 M&A '부메랑'···35조원 빚덩이

자오웨이궈 칭화유니그룹 회장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자오웨이궈가 없었다면 대만을 비롯한 전 세계 반도체 업계를 긴장하게 만든 칭화유니그룹도 없었을 것이다."

대만 경제잡지 ‘재신(財訊)'이 최신호에서 자오웨이궈(趙偉國) 칭화유니(紫光, 중국명·쯔광)그룹 회장에 내린 평가다. 지난 9일 칭화유니그룹이 파산구조조정을 신청했다는 소식이 나온 직후다.

중국 반도체 선봉장으로 불린 칭화유니그룹을 10년 넘게 진두지휘하며 국내외 반도체 기업을 공격적으로 사들인 자오웨이궈에겐 ‘반도체 광인(狂人)’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무리하게 빚을 내면서 결국 칭화유니를 파산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라는 오명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양치기→칭화대 수재→부동산 사업가→반도체 사령탑"

칭화유니는 한때 중국 '반도체 굴기'의 상징이었다. 우리나라는 물론 대만 반도체 업계도 칭화유니의 고속성장세를 예의주시했다.

‘칭화대학교 주식회사’인 칭화홀딩스 산하 국유기업이었던 칭화유니는 2010년까지만 해도 한방음료를 제조하는 보잘것없는 국유기업이었다. 다 망해가던 칭화유니에 '구원투수'로 등판한 게 자오웨이궈다.

'푸얼다이(富二代·재벌2세)'도, '관얼다이(官二代·고위관료 자녀)'도 아닌 신장웨이우얼 지역 양치기 소년 출신 자오가 칭화유니 회장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사실 칭화대와의 ‘인연’이 크게 작용한 덕분이다. 

지식인이었던 그의 부모는 과거 마오쩌둥 시절 정신개조를 위해 서부 신장웨이우얼 지역 외딴 시골에 하방(下放)됐다. 양치기를 하며 그곳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자오웨이궈는 악조건 속에서도 학업에 열중해 중국 명문인 칭화대 전자공학과 학사, 석사까지 마쳤다. 졸업 후 칭화유니 그룹에 배치된 그는 2000년 칭화홀딩스 산하 첫 반도체 기업인 퉁팡마이크로전자(同方微電子) 창업에도 동참했다.

하지만 국유기업이 적성에 맞지 않았던 그는 얼마후 사표를 던지고 직접 젠쿤(健坤)그룹이라는 투자사를 차렸다. 고향인 신장 지역으로 달려간 그는 부동산·광산에 투자해 떼돈을 벌었다. 당시 중국 경제의 고속성장 속 석탄·철강 등 원자재 시장 열기가 달아오르고 부동산이 폭등하던 시기였다. 훗날 자오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달랑 100만 위안 들고 신장에 갔는데, 돌아올 때는 45억 위안을 손에 쥐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사업가로서 기질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2010년 칭화유니그룹이 경영난에 처하자, 경영진들은 머릿속에 자오웨이궈 이름 석 자를 떠올렸다. 한때 그룹에 몸담았다가 사업가로 변신한 그를 회사를 살릴 적임자라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자오는 젠쿤그룹을 동원해 칭화유니에 투자해 지분 49%를 확보하며 경영권을 손에 쥐었다.
 
"돈으로 기술 사자" 반도체기업 인수에 열 올려

반도체와 전혀 무관했던 칭화유니는 자오의 지휘 아래 반도체 사업으로 주력 사업을 완전히 바꾸기로 한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보유한 반도체 기술은 전무했다. 기초 기술부터 육성해 상업화하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게 뻔했다. 자오는 일단 반도체 기업을 인수하면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사업가다운 판단이었다. 

그가 첫 인수 타깃으로 삼은 건 미국 반도체 기업 스프레드트럼이다. 2013년 17억8000만 달러를 투자해 사들였다. 이때부터 칭화유니의 '반도체 기업 쇼핑'이 전개됐다. 이듬해에는 9억700만 달러를 투자해 미국 반도체기업 RDA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도 집어삼켰다. 오늘날 화웨이 산하 하이실리콘에 이어 중국 2대 모바일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로 자리매김한 유니SOC(紫光展銳)는 바로 자오가 스프레드트럼과 RDA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를 통합해 탄생시킨 것이다.

칭화유니는 이어 2015년 25억 달러를 투자해 휴렛팩커드 자회사 H3C 지분 51%도 인수했다. 스프레드트럼, RDA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H3C, 이들 3개 반도체 기업을 줄줄이 인수하는 데 들인 자금만 50억 달러에 달했다. 

실패의 쓴맛도 봤다. 미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인수 시도는 미국 정부의 제재로 수포로 돌아갔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TSMC 인수도 시도했지만, 또 고배를 마셨다.

그래도 메모리반도체를 만들겠단 꿈은 버리지 않았다. 그리곤  2016년 창장메모리(YMTC)를 설립해 메모리반도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칭화유니가 지분 51.04%를 투자한 YMTC는 우한, 청두, 난징에 각각 반도체 공장을 설립했다. 투자액만 총 700억 위안이 넘었다. 

그의 최종 목표는 삼성전자가 되는 것이었다. 2017년 4월 닛케이아시안리뷰와의 인터뷰에서 "10년 안에 세계 5대 메모리반도체 기업이 되겠다"고 장담했다. 

칭화유니가 반도체 사업을 확장하던 시기는 시진핑 중국 지도부가 본격적으로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공언하던 때였다.  2014년부터 중국은 1000억 위안대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을 설립하는 등 반도체 산업에 자금을 퍼부었다.

게다가 칭화대학교 산하 회사라는 후광도 작용해 칭화유니는 국책은행에서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저리로 대출받을 수 있었다. 사실상 칭화유니는 중국 정부가 '반도체 굴기'의 선봉장으로 적극 미는 대표 기업이었다.
 

2018년 칭화유니그룹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에게 자오웨이궈 회장이 반도체 칩 제조와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중국 CCTV 뉴스 갈무리]

 
◆ 60건의 맹목적 M&A '부메랑'···35조원 빚덩이

칭화유니그룹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중국 현지 경제잡지 재경천하주간의 잠정 집계에 따르면 2010년부터 칭화유니의 인수합병(M&A) 건수만 60건이 넘는다. 하지만 공격적 인수합병은 거액의 부채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7년간 총부채는 46억4700만 위안에서 2000억 위안(약 35조원)으로 44배 늘었다. 2016년부터 5년 연속 적자 행진도 이어갔다.

2017~2020년 상반기까지 칭화유니 연결재무제표를 살펴보면 자산부채율은 각각 62.09%, 73.42%, 73.46%, 68.41%로, 자산 대비 부채 비중이 높다. 수년간 빚에 의존해 회사가 굴러갔음을 알 수 있다.

2018년부터 칭화유니는 전략적 투자자를 유치하는 방식으로 수 차례 구조조정을 추진했으나, 좀처럼 빚더미에 앉은 회사에 투자하려는 기업은 없었다. 결국 칭화유니는 핵심 계열사인 유니SOC와 유니스플렌도어(紫光股份) 지분을 내다팔아 자금 마련에 나섰다.

그럼에도 지난해 10월 결국 첫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지며 부채 위기의 블랙홀에 빠졌다. 이후 올 상반기까지 칭화유니는 모두 6차례에 걸쳐 디폴트를 선언했다. 총 디폴트 액수만 70억 위안에 육박한다. 올해 말까지 13억 위안 채권 상환 만기도 앞두고 있다. 지난달 중국 신용평가사 중청신은 칭화유니 신용등급을 ‘C’까지 하향 조정했다. 결국 자체적으로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돼 지난 19일 파산 구조조정 절차에 돌입했다. 

자오웨이궈는 칭화유니를 파산 위기로 몰고갔다는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사실 그는 칭화유니에 '빚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던 2018년부터 잇달아 주요 계열사 이사, 회장직에서 차례로 물러났다.

지나친 야심이 빚어낸 참담한 결과라고 반성하는 태도도 보였다. 그는 당시 “최근 많은 기업에서 문제가 터진 건 야심이 지나쳐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운은 당연히 따를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사실 우리의 능력은 그렇게 위대하지 않고, 운도 그렇게 좋지 않다. 스스로 야심을 신중히 관리해야 한다”고 자책했다. 
 
◆ "'구리'를 '순금'으로" '야심찬 사업가'의 몰락인가
자오웨이궈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원래 '구리덩어리'였던 칭화유니는 오늘날 겉에 금을 입혀 '도금 제품'이 됐다. 앞으론 '순금'으로 변하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구리에 도금을 하면 '가짜 금'일 뿐 순금이 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핵심기술은 돈으로도 살 수 없다는 걸 자오는 간과한 셈이다. 

중국 21세기경제보는 "자오의 주도 아래 칭화유니는 여러 반도체 기업을 인수해 중국 반도체 산업 전체 수준을 높이고 중국 반도체 산업 구도를 어느 정도 바꾼 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칭화대의 자체적 과학기술 연구개발 성공으로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냉정히 평가했다. 

칭화유니의 파산은 사실상 중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광폭 지원 속 맹목적 투자를 퍼부으며 '게임의 법칙'을 무시한 결과라고도 지적했다. 

판허린 중난재경정법대 디지털경제연구소 원장도 “칭화유니는 투자를 광범위하게 하다 보니, 어느 한 기술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지 못했다”며 칭화대학교와의 산·학·연 협력을 통해 기술개발 투자에 집중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칭화유니가 그간 투자한 기업을 살펴보면 반도체뿐만 아니라 관광(중신여유), 금융(서부증권), 교육(쉐다교육), 건설장비(진타이) 등 다방면에 걸쳐 있는 게 사실이다.

안광융 중국인수합병협회(CMAA) 전문위원은 "칭화유니가 파산 구조조정에 직면한 것은 사실상 대내외 환경으로 초래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중국 반도체 인재와 기술력을 하루아침에 육성하기 어려운 데다가, 미국 등 선진국의 중국 반도체 산업 제재가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물론 칭화유니 기업의 내부 리스크 관리 전략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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