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업 머니무브] 고령화·자산증식 니즈에 신탁업에 뭉칫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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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모 기자
입력 2021-07-1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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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박모씨는 올해 초 은퇴 후 신탁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자녀들이 결혼으로 독립하자 그간 가족들과 살던 큰 아파트를 매각한 뒤 작은 집으로 이주하며 남은 차익과 퇴직금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 고민이 됐기 때문이다. 자산증식과 더불어 사후에도 자산을 자녀들에게 균등하게 나눠줄 수 있는 유언대용신탁이 있다는 말에 조건이 좋은 곳이 어디인지 찾아보고 있다.

국내 신탁시장 규모가 1000조원을 돌파한 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자산의 관리 및 증식과 사후 상속을 염두에 둔 스마트한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눈에 받고 있어서다.
 
신탁산업 급팽창

1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은행, 증권, 보험, 부동산전업신탁사의 총 수탁고는 1095조2032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1018조4576억원) 대비 7.53%(76조7456억원)가 증가했다. 작년 12월말 기준(1039조702억원) 대비로는 5.40%(56조1330억원)가 늘었다. 10년 전인 2011년 말(415조7702억원)과 비교하면 163.41%(679조4330억원)가 증가했다.

신탁시장은 2017년 말 775조원에서 2018년 말 873조원, 2019년 말 969조원으로 확대된 바 있으며 지난해 말에는 1000조원을 돌파하는 등 증가하는 추세다. 신탁시장이 497조3711억원(2013년 12월말 기준)으로 500조원 규모에서 1000조원으로 2배 성장하는 데 약 7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특히 지난 4월에는 1108조5694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100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점유율 규모로 따져보면 단연 1등은 은행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신탁업 점유율은 은행이 45.9%로 가장 높고 △부동산신탁회사(27.2%) △증권(25.3%) △보험(1.6%) 순이다.

은행권이 신탁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판매 채널이 절대적으로 넓기 때문이다. 통상 신탁은 영업점 및 PB센터를 방문한 고객을 대상으로 판매되는데, 지난 3월 기준 시중은행의 영업점수는 3500여개로 증권사 전체를 합친 영업점(830)보다 4배 이상 많다. 접근성이 뛰어난 은행 영업망을 통해 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는 고객들이 몰리면서 자연스레 신탁 규모가 커졌다는 게 은행권 설명이다.

이는 비이자이익 확대에 주력하고 있는 은행의 이해와도 맞아떨어진다. 대출 규제 강화에 따라 이자수익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늘릴 수 없는 데다 잇단 사모펀드 사태로 비이자수익 확대가 어려운 탓에 은행 입장에서는 신탁상품이 새로운 먹거리인 셈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신탁상품 판매 채널이 증권사보다 넓은 데다, 고객 수도 많아 신탁 영업에서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취급되는 상품은 비슷하지만, 신탁상품을 찾는 고객 상당수가 예금보다 높고 직접 투자보다는 낮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안정지향형으로 은행 고객군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고령화 시대 적합 상품
신탁은 고객들이 맡긴 돈을 주식과 채권·부동산 등에 투자하고 관리 및 처분까지 맡아주는 자산 관리 서비스다.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신탁을 찾는 고객이 늘어나는 추세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고령자의 인지상태가 양호할 때 효과적인 자산관리가 가능하도록 수탁재산 범위를 확대하고 후견지원신탁 등과 같은 전문 신탁사가 진입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특히 금융위는 고령자가 보유한 주택에 계속 거주하면서 매월 일정 연금을 수령 가능하게 하며, 치매보험 등 고령자 관련 보험에 가입 시 보험료를 할인하는 등의 관련 상품을 개발·공급한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신탁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가 시작된 일본에서 크게 성장했다.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신탁 금융상품을 이용한 노후설계’ 보고서를 보면 일본 신탁시장의 수탁고는 2010년 767조3000억엔에서 지난 2019년 1263조1000억엔으로 우리나라 돈으로 1경원이 넘는다. 10년 만에 1.5배가 성장했다.

반면 우리나라 신탁시장의 수탁고는 이제 1000조원을 돌파한 만큼 성장성은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박정희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기대여명 연장에 따라 부모와 자식이 모두 노인이 되는 노노(老老)시대에 고령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자산을 설계해야 한다”며 “이러한 고령화 추세는 일본과 비슷한 구조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신탁업 발전 위해서는?

일본의 신탁산업 확대 배경에는 수탁재산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는 포괄신탁을 중심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2004년 신탁업법 개정을 통해 수탁가능재산의 제한을 없애고 미국 등과 같이 포괄주의 방식으로 수탁범위를 변경한 바 있다. 포괄신탁은 금전이나 부동산 등 다양한 재산을 하나의 상품으로 설정하는 신탁으로 2019년 기준 일본 신탁시장 수탁고의 약 53.2%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장기적 관점의 자산관리 서비스가 아닌 특정금전신탁의 경우 일회성 금융상품처럼 거래되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포괄주의와 반대로 우리나라는 열거주의 방식으로 수탁할 수 있는 재산이 금전, 증권, 금전채권, 동산, 부동산 등 7종으로 제한돼 있어 시장 확대를 가로막고 있었다.

다만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신탁업법’ 제정 등을 통해 신탁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신탁 산업의 성장에 대한 기대감도 더욱 높아진 상태다. 개선되는 내용은 수탁가능재산을 부채, 영업권, 담보권, 보험금청구권 등으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여기에 지난달 18일 금융위원회가 ‘신탁업 종합재산관리 기능 강화’ 방안을 통해 노후 자산관리 니즈에 맞춰 신탁업의 종합재산관리 기능을 강화하고, 고령층 특화상품 개발을 촉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신탁재산 범위를 확대하고, 다양한 구조를 허용해 신탁시장을 노년들의 종합재산관리제도로 개편하는 게 목적”이라고 밝혔다.

노령화와 치매 등 중증 환자들이 빠르게 늘고 있는 만큼, 신탁산업에 대한 인식 제고에 금융업계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정희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의 빠른 고령화 속도와 치매인구 수의 급속한 증가, 핵가족화 등에 따른 고령자의 치매 및 장기간병 문제가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로 볼 수 없어 가구 의존적 형태의 대응은 더 이상 불가능한 현실”이라며 “금융업계는 본인의 필요에 따라 자산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미성년자나 후견인에게 적절한 방식의 신탁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노후설계가 가능하다는 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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