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조기 여름방학…매일 반찬이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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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조 기자
입력 2021-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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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도권 4단계, 학교 전면 원격수업 시작

  • "많이 익숙해졌지만 반찬 걱정은 여전"

12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효원고등학교에서 교사가 원격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이 또한 지나가리라." 워킹맘 A씨는 2학기 전면 등교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지난달 등교 확대 소식에 누가 뭐라고 하든 기뻐했다. 이런 A씨에게 여름방학을 며칠 앞두고 12일부터 시작된 두 아이의 전면 원격수업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출근 전 아침밥만 준비하면 됐는데 여름방학과 맞물려 삼시 세끼를 챙겨야 하는 시기가 예정보다 빨리 도래했다.

지난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시끄러웠던 시기에 많은 이들을 웃음 짓게 한 영상이 있다. 바로 영국 공영방송 BBC에서 한국에 거주하는 로버트 켈리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원격으로 진행한 인터뷰 영상이다.

의자에 앉은 켈리 교수 등 뒤로 벽에 걸린 세계지도와 책장, 가지런히 놓인 책들이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리고 한 여자아이가 춤을 추며 들어온다. 뒤이어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는 듯한 아기가 보행기를 타고 등장한다. 방송 사고인가 싶은 순간 엄마가 나타나 아이들을 재빠르게 데리고 나간다. 교수실인 줄 알았던 공간이 집이었던 것. 유쾌하고 귀여운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켈리 교수와 그 아내는 순간 얼마나 당황했을까. 지난해 코로나19로 재택근무·원격수업을 하는 우리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혼란을 겪었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난 18개월간 훈련된 탓에 이제는 갑작스러운 거리두기 4단계 격상에도 당황하지 않고 집에서 컴퓨터를 켠다. 회의하거나 수업을 듣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전업주부 B씨도 이날 아침 눈을 뜨며 초등학생 자녀가 학교에 가지 않는 현실을 자각했다. 그렇다. 원치 않던 감옥살이가 더 일찍 시작됐다. 아이 아침밥을 차려주고 청소를 하려는데 무기력감이 몰려왔다.

그래도 서둘러야 한다. 아이가 거실 책상에 자리 잡고, 원격수업을 시작하는 동시에 모든 소음은 차단된다. 남편 C씨도 이번 주 중 이틀은 재택근무를 한단다. 물론 집안 내 모든 움직임은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C씨는 "통화나 회의는 무조건 안방에서 해요. 아이 수업 중엔 찍 소리도 낼 수 없죠. 그래도 지난해보다 안정됐고, 아이도 그새 컸다고 덜 떠들고 잘 따라 해요"라고 말했다.

역시 제일 힘든 건 아이들이다. 한창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 게 좋을 때 유흥업소 등에서 코로나19를 확산하는 어른들 때문에 또다시 집에 있게 됐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한 고등학생은 "우리는 마스크 쓰고 힘들게 공부하는데 어른들 때문에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앞둔 고3 등 특수한 상황에 놓인 학생 일부는 예외다.

아이들을 나무랄 수 없음을 잘 안다. 간식까지 준비해놓고 출근한 A씨는 사무실에서 집 안에 설치한 폐쇄회로(CC)TV를 통해 아이들이 수업을 제대로 듣고 있는지 확인한 다음에야 한숨 돌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집에 가서 밑반찬을 더 만들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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