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디자인 베끼면 번 만큼 배상해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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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철 기자
입력 2021-06-2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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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특허청]


#포장재 제조‧도소매 업체 A사는 수년간의 연구개발(R&D) 끝에 재료비를 낮추고 완충효과가 우수한 완충패드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A사는 판로를 넓히기 위해 신제품 샘플을 한 중견기업에 보냈다. 그런데 A사의 경쟁사였던 B사가 샘플을 보낸 중견기업에 유사한 성능의 제품을 납품하기로 계약한 사실을 알게 됐다. B사가 A사의 특허와 디자인을 베껴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중견기업에 납품하기로 한 것이다. A사는 B사의 판매물품을 1만3600개로 추산하고 1억7000만원을 청구했다. 법원은 B사가 A사의 지식재산을 침해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A사의 생산 가능 수량이 1200개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액을 1500만원만 인정했다. 청구금액의 8.8%에 불과하다.

#C씨는 온라인마켓에 특정 기능이 추가된 고기구이판이 판매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개발해 특허까지 받은 제품과 디자인‧기능 등이 거의 같았기 때문이다. D사가 E공업사에 C씨의 제품과 유사한 제품을 제작해 달라고 의뢰한 뒤, 이를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다. C씨는 D사의 판매량이 2만2000개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2억2700만원을 청구했다. 법원은 C씨에게 손해가 발생한 사실을 인정했으나, C씨의 생산가능 수량이 2200개라고 판단해 청구금액의 10.1%인 2200만원만 인정했다.


앞으로 상표나 디자인 등 지식재산을 침해하면 정당한 권리자의 생산능력을 초과하는 범위라도 손해배상을 해줘야 한다.

지금까지 상표‧디자인의 권리를 가진 A기업의 생산능력이 10이라면, A기업의 상표‧디자인을 베낀 B기업은 최대 10까지만 손해배상을 해주면 됐다. 생산설비가 부족한 영세기업은 자신의 기술을 빼앗아 이익을 챙긴 기업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0을 넘더라도 A기업이 당연히 받아야 했던 합리적인 이익까지 더 배상받을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특허청은 권리자의 생산능력을 넘어서는 침해행위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상표법’, ‘디자인보호법’,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이 23일 시행된다고 밝혔다.

개정법은 기존 배상받을 수 있던 범위에 더해 권리자의 생산능력을 넘어서는 침해‧탈취행위에 대해서도 사용허락 계약을 통해 당연히 받아야 했던 이익(합리적 실시료)까지 더 배상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간 근본적으로 권리자의 생산능력을 초과한 범위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이런 한계로 선도기업은 혁신적인 아이디어‧기술을 개발해도 후발기업이 정상적인 사용계약을 체결하기보다 이를 무단 탈취하거나 베껴 쓰는 상황이 다수 발생했다.

생산설비 등이 부족한 영세기업은 다른 기업이 자사 기술을 탈취하거나 베껴서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되더라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개선된 손해배상액 산정방식’은 지난해 12월 특허법에 먼저 도입됐고, 이번 개정 법률이 시행됨에 따라 저작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식재산에 대해 동일한 손해배상액 산정기준을 적용할 수 있게 됐다.

특허청은 이번 시행되는 손해배상 산정제도와 ‘3배 배상제도’가 결합되면 고의적인 지식재산 침해행위로부터 권리자를 더욱 강력하게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허청 관계자는 “과거 지식재산을 침해하는 기업이 소송에 걸리더라도 손해배상액이 적어서 일각에선 ‘침해하는 게 이익’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며 “하지만, 앞으로는 지식재산 침해 시 번 것보다 더 많이 배상해야 할 수 있다”고 했다.

특허청은 또 베껴 쓰기보다는 제값 주고 사용하는 문화가 정착돼 중소‧벤처기업의 기술혁신을 통한 성장은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정연우 특허청 산업재산보호협력국장은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증거수집제도를 하루빨리 도입해 기술 탈취‧베끼기가 만연했던 업계 관행을 개선하고 혁신의 결과물이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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