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우리도 준비돼 있다" 北에 다시 공 넘긴 美···유인책엔 함구

北에 제시할 유인책 언급 無...조기 대화재개 불투명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가운데)이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왼쪽),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한·미 북핵 담당 실무자들의 대면을 통한 대북 메시지는 대화 촉구였다. 바이든 행정부의 기존 대북정책인 '조율되고 실용적인 접근' 기조가 다시 한번 강조됐을 뿐 구체적인 전략이나 유인책은 공개되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화·대결'이라는 첫 대외메시지를 내놓고 미국에 공을 넘긴 가운데,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도 "우리도 둘 다 준비가 돼 있다"고 화답하며 또다시 북측에 공을 넘긴 셈이다. 

당분간 양측이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을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남·북·미가 대화 테이블에 앉기까지 지루한 줄다기리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공을 넘겨 받은 북한은 오는 8월 예정된 한·미연합훈련 기간까지 바이든 정부의 대화 제의에 침묵하면서 시간을 벌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한·미훈련을 계기로 대결 모드를 고수할 수도 있어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를 통해 미국 정부가 제시할 유인책 여부에 대북정책의 성과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성 김 "평양으로부터 대화의 답 기다려" 

김 대표는 21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열고 "우리는 여전히 평양으로부터 대화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며 "김 위원장의 대화 (언급이) 곧 긍정적 답변을 얻을 것임을 의미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난달 대북특별대표 임명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특히 이날 북핵 수석들의 회동은 김 위원장이 지난 18일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며 바이든 정부에 첫 대미 메시지를 보낸 직후 열리면서 주목됐다. 

김 대표는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이 합의한 대로 의미있는 남북 대화와 협력, 관여를 지지한다"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외교와 대화로 추구하겠다는 한·미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기존 입장을 강조했다. 

한·미 협의 후 노 본부장과 김 대표는 일본의 북핵수석 대표인 후나코시 다케히로(船越健裕)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함께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열고 3국간 협조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3국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측의 대북정책 검토 과정에서 긴밀한 공조가 이뤄진 것을 평가하고, 북한과의 조속한 대화 재개를 위한 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
 
◆"한국, 전향적 유인책 제시했을 것...문제는 미·일 수용 정도"

언론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한·미·일 3국 북핵 수석대표 협의에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유도할 유인책도 심도 깊게 논의됐을 것으로 분석된다.

노 본부장은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가 끝난 뒤 진행된 약식 기자회견에서 "남북, 북·미 간 기존 합의를 바탕으로 북한과의 대화와 관여를 어떻게 추진할지에 대해 중점 협의했다"며 "한·미 간 협의 내용을 모두 공개할 순 없지만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정착이라는 공동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외교와 대화를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겠다는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어떻게든 북한을 도발 아닌 협상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방안이 논의됐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3국 중에서 한국이 가장 전향적으로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방안을 제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남북합작사업의 제재 면제나 한·미연합훈련 축소 등을 언급했을 것"이라고 예상하며, "그것이 어떤 수준이냐에 따라 미국과 일본이 수용하는 정도가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적대시정책 철회' 요구한 北 VS '조건 없이' 언급한 美

다만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앉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그동안 대화의 선결 조건으로 제시한 '적대시정책 철회' 요구에 대해 미국 측이 '조건 없이'로 맞받으면서 사실상 북·미 대화 조기 재개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김 대표는 한·미·일 북핵수석대표 협의 모두발언에서 "우리의 '잘 조율되고 실용적인 (대북) 접근법'은 북한과의 외교에 열려 있다"면서도 "북한이 우리의 지원과 언제 어디서든 전제 조건 없이 만나자는 우리 제안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길 계속 희망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노동당 8차 대회에서 "새로운 조·미(북·미) 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데 있다"며 '강대강·선대선'이라는 원칙을 발표한 바 있다. 미국 측이 북한이 조건을 걸지 않고 비핵화를 위한 대화 테이블에 나설 경우 협상을 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거듭 강조하면서 당분간 양측의 기싸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김 대표는 "우리는 북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계속 이행할 것"이라며 "모든 유엔 회원국들, 특히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에 북한이 국제사회에 가하는 위협에 대처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북한과 대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긴 했지만, 제재 이행을 통한 압박도 동시에 강조한 셈이다.